언제부턴가 밤 운전이 힘들다. 라식 부작용인가 했다. 수술한 지 20년이 지나서 그런가 보다 했다. 글 쓰느라 눈이 나빠져서 그런 거 했다. 비 오는 날엔 더 그랬다. 서서히 몸이 핸들 가까이 갔다. 어깨는 으쓱 상태로 정지다. 거북목은 일자목 상태를 유지한다. 오른쪽, 앞쪽으로 1도만 기울어도 삐끗하는 신체 음이 귓가로 들어온다. 얼마나 움츠러들었을까. 상반신은 정지된 채 얼마나 머물렀을까.
일이 년 전부터는 눈에만 문제가 생긴 게 아니다. 깜깜한 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숨도 막힌다. 옆에, 뒤에 누가 있어도 마찬가지다. 운전대를 잡고 있다 보면 서서히 심장이 뛰는 간격이 줄어든다. 펌핑하듯 계속 두들겨댄다. 경부고속도로가 아닌 길은 더 어둡다. 오가는 차량이 잠깐씩 비춰주는 라이트가 전부다. 커브길 끝도 희미하거나 보이지 않는다. 수평선이나 지평선 끝은 보이기라도 하지, 이 길은 보이지도 않는다. 상향등 센서마저 오락가락이다. 자동으로 켜지고 꺼져야 하는데 이상이 생겼나 보다. 문제를 알리는 경고등이 떴다. 휴게소까지 36km나 남았다. 운전석 창문을 열었다. 찬 바람이 정통으로 들어왔다. 바람 소리에 귀까지 나갈 판이다. 보조석 창문을 내렸다. 시골에서 맡을 수 있는, 소가 만든 냄새가 차 안을 금세 섭렵했다. '다행이다.'
뭐가 다행인 건가. 소똥 냄새가? 평소 같았으면 거북해했을 자연의 냄새가 반가울 줄이야.
어두운 도로. 불빛도 드물었다. 낮에 갈 때만 해도 차 없는 길이 좋았다. 멀리 보이는 설산을 눈에 담으러 규정 속도로 천천히 달렸다. 해가 있고 없을 뿐인데, 돌아오는 길은 스산했다. 어떻게든 불빛을 찾겠다며 2차선으로 달렸다. 앞에 있는 차와 멀어지지 않으려, 후방에서 비치는 그 빛을 놓치지 않으려 일정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내가 아는 차야.'라고 속으로 말하면서.
안동 휴게소에 내렸다. 볼일도 없는데 잠시 멈췄다. 시동을 끄고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 7시가 넘어서인지 스낵코너는 한 군데만 제외하고 문을 닫았다. 식당가로 들어갔다. 입맛 없지만, 뭐라도 씹어야 할 거 같아 편의점으로 방향을 틀었다. 구운 감자를 골랐다. 한 팩에 천 원. 카드 계산하려니 좀 그랬다. 두 개를 샀다. 점원 대신 무인계산대가 있었다. 하나는 갖다 둘까 하다가 둘 다 계산하고 나와 차에 올라탔다.
조금 전까지 오디오북으로 재테크 관련 도서를 들었다. 엄마, 주부가 종잣돈을 모으는 내용이었는데 대체로 나의 재정상태 및 습관을 고쳐야겠다는 결심만 여러 번 서게 했다. 며칠 전부터 틈틈이 들어온 책이라 휴게소에 도착하기 전에 내용이 끝났다.
다시 윌라 앱을 열었다. 박정민 배우가 쓴 『쓸만한 인간』이 추천 도서로 떴다. 김영하 작가의 『단 한 번의 삶』을 박정민 배우 목소리로 담백하게 들었기에 바로 세모 버튼을 눌렀다. 작가, 성우 모두 같은 사람이라니.
10분 전보다 도로에 차가 많아 보였다. 여기저기 불빛도 자주 보였다. 아까보다 심박수도 안정됐다. 성우 목소리도 아까보다 더 선명하게 들렸다. 나라는 사람은 본디 사람 얼굴은 잘 기억 못 하지만 음성은 잘 기억한다. 좋아하는 특유의 음성이 있다. 이 목소리도 그랬다. 차분하게 읽어주는 데 여러 번 웃음이 났다. 도입부에는 작가가 2014년에 쓴 글이 대부분이었다. 배우 지망생이던 시절, 대학에 입학 면접 볼 때, 신인으로 일할 때, 일본 여행 갔을 때, 선배한테 새해 문자를 보냈을 때 등 여러 에피소드로 넘쳤다. 글이 말처럼 들렸다. 음성지원되듯. 상황, 표정, 말투마저 상상됐다. 발상도 신선하고 특이했다. 아까와 달리 정면을 보며 여러 번 웃었다. 글 속에 내가 보여서, 내 친구가 보여서 더 그랬다. 10여 년 전에 쓴 글이 맞나 싶었다. 표현이 신선했다. 문장력도 남달랐다. 툭툭 던지는 듯한 글에는 작가의 말투이자 문체 그 자체였다. 각 글마다 작가 특유의 메시지마저 선명했다. 내가 쓰고 싶어 했던 글. 그런 책이었다.
2시간 50분을 달렸다. 어둠 속에서. 1시간 25분 동안은 덜덜거렸고, 1시간 25분은 깔깔거렸다. 조금 전까지 요동치던 심장과 답답함은 듣는 책만 바뀌었을 뿐인데, 사라졌다. 남은 네댓 시간 분량도 오며 가며 들어야겠다. 보조석에 누가 같이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