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연수를 향한 거창한 포부
애초에 운전면허도 남들보다 늦게 땄다.
운전면허를 따려면 운전학원을 다녀야 하는데 몇십만 원이 드는 강의료가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무면허로 나이 들다가 10년 전쯤 운전면허증을 따긴 땄다. 운전면허 시험이 아주 쉬운 시기였고, 합격이라고 하면서도 강사는 "이 상태로 운전하면 안 됩니다"라고 당부했다. 사실 자동차를 소유한 상태도 아니어서 면허를 땄지만 연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운전면허증은 들고 다니지 않는 지갑 안에 자리했다.
몇 년 후, 지금의 남편, 당시 남자친구였던 그가 운전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같이 한적한 곳으로 가서 내가 운전을 해봤는데 아주 과감한 속도와 무빙을 보여주자 그는 질겁하며 앞으로 운전은 자기가 할 테니 나 보고는 운전을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다. 마음 한 켠으로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게임을 못 하는 편이다. 내가 게임을 잘했다면 공부를 훨씬 못 했을 것이다. 그나마 즐겨하는 게임은 RPG 게임 종류인데 이것도 전투 실력은 형편없어서 웬만하면 혼자서만 하는 퀘스트 위주로 움직인다. 파티를 이뤄야 하는 퀘스트는 시도하지 않는다. 20대 때 시도했다가 욕을 엄청 많이 들었다. 게임을 하다 보면 당황하는 순간이 있다. 뭔가 내가 생각한 대로 움직여야 하는데 못 움직였거나, 엄청난 적들이 달려들 때. 그때 내 딴에는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하는 키보드 조작, 마우스 조작이 무슨 사술을 부린 건지 갑자기 화면에 이상한 창들이 바바바박 뜨면서 나를 더 당황시켰다. 이런 경험을 몇 번 겪으면서 나는 응급상황에서 차분히 대처를 잘 못할 거라고 스스로를 지레짐작했다. 어쩌면 벽에 가둔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으로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40이 다 되도록. 가까운 곳은 걸어서 가고 먼 곳은 긴 시간을 들여 버스, 기차를 타고 다니는 생활을 해왔다.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느냐.
대학원을 가려고 했다. 공부를 더 해보고 싶었다. 남편이 돈을 버니까, 이 정도면 애도 없는 우리 부부의 금전 상황에 무리가 갈 정도가 아니니까 나는 공부를 해보겠다고 했다. 남편도 해보라고 했고, 나는 대학원 입학 준비를 작년 3,4분기 계속해왔다. 그런데, 금리가 올랐다.
대학원 입학 면접을 치고 와서 남편에게 썩 잘 보지는 못했지만, 영 못 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남편은 전세대출이자가 어마어마하게 올라서 한 달에 내야 하는 돈이 이번달부터 140만 원이라고 했다. 한숨을 쉬었다.
나는 철없이 학생이 되고 싶었다.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
내 진료 행위에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 직업을 바꾸고 싶어 했고, 가정 경제에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 학생이 되려 했고, 내가 일으킬 수 있는 혹시나 모를 사고에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일을 다시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가까운 곳에서 직장을 구하기는 너무 어렵다. 범위를 넓히고 넓혀야 가능한데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1시간, 2시간 거리의 직장은 꺼려진다. 운전을 하면 출퇴근 시간이 훨씬 절약되고 출퇴근에 들어가는 에너지도 감소하니까 나을 것 같다. 그래, 운전을 배우자. 더는 책임을 회피하지 말자. 사고를 항상 조심하되 혹시 사고를 당하거나 일으키면 스스로 뒷감당을 하자. 그게 성인이 하는 일이다.
운전연수에 관해 검색하고 지역에서 개인적으로 운전연수를 하는 분께 전화해서 어떤 식으로 하는지, 비용은 어떠한지, 물었다. 비교적 큰 지출이라 남편과 상의 후 진행한다는 점에서, 아직 오롯이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인의 성상을 갖추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지출은 같이 사는 사람에게 말은 하고 써야 하는 게 맞는 일이다.
나이 40이 가까워서야 비로소 '책임을 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참 늦게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