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인 일우가 몽골 탐방대에 합류하기로 했다. 제주도 산악연맹에서 주관하고 제주도에서 지원을 해주는 프로그램인데 제주도의 중고등학생 12명 정도를 지원받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나도 아이들과 다녀와 봤는데 좋더라고."
"체력적으로 힘들거나 위험하지는 않나요?"
"여학생들도 오니까 적당히 걷고 적당히 차 타고 위험할 일은 없어."
"업무 때문에 같이 가는 건 힘들 것 같고 큰 아이에게 말이나 해볼게요."
"휴대폰 안 터진다는 얘긴 미리 하지 마. 그 얘기 들으면 안 갈게 뻔하니까."
직장 선배의 추천에 일우에게 조심스레 제안을 했다. 그런데 웬일? 예상 밖으로 일우는 오케이를 했다. 혹시나 싶어, 휴대폰도 안 되는 곳이 많아 게임은커녕 통화도 잘 못하고 꽤 많이 걸어야 할 거라는 얘기까지 했는데도 흔쾌히 간다고 한다. 생각건대, 일우에겐 보름 가량 학교도 학원도 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온 게 아닌가 싶었다. 물론, 천체 물리학자를 꿈꾸고 있는 일우는 넓은 들판 위 밤하늘에 펼쳐진 별들을 보고 싶은 이유를 가장 큰 동기로 내세웠다.
막상, 일우가 몽골에 가겠다고 하자 나와 아내는 그제야 덜컥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특히, 아내의 걱정이 심했다. 그래도 정부기관인 제주도에서 지원을 하는 것이니 별일 없을 거라며 아내의 불안을 누그러뜨렸지만, 사실 걱정이 되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단, 나중에 보내야 할 군입대를 떠올리며 미리 예행연습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젯밤, 학원에서 끝나 거의 10시 무렵에 집에 돌아온 일우의 표정이 몹시 무거웠다.
"왜,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어?"
"아뇨, 그냥 좀 피곤해서요."
"하긴 피곤하기도 하겠다."
중학생이 되면서 일우의 학원 수업은 많아지고 길어졌다. 아이가 힘들어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쓸데없는 잔소리를 멈추기로 마음먹었다. 안 그래도 학업 스트레스로 잔뜩 달아오른 아이에게 잔소리라는 기름을 부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다짐은 일우가 마루 소파에 대자로 누워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을 때면 불쑥불쑥 깨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요즘에는 '아이들의 노는 꼴을 그대로 지켜보자.'라는 다짐도 하나 추가되었다.
"아빠, 나 꿈을 바꾸려고요."
"그래? 뭘로?"
나는 내심 기대를 했다. 사실, 일우에게 말은 못 했지만 천체 물리학자 같은 노력 대비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려운 진로보다 요즘 각광받는 프로그램 개발자나 AI 전문가 같은 뭔가 트렌디하고 실용적인 꿈을 갖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천체물리학자는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요. 나중에 취미로 하려고요."
"응, 그것도 좋지."
"수학도 좀 어렵고요."
'그래서 뭘로 바꿨냐고?'
너무 뜸을 들이는 것 같아 재촉하고 싶었지만 겉으로는 일우가 이야기하기를 여유 있게 기다리는 척했다.
"고고학자가 될 거예요."
내 바람과는 많이 다른 꿈이었다. 속으로는 '그것도 그냥 취미로 하면 되는 거잖아?'라고 되묻고 싶었지만 차마 물을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