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금각사

파괴하고 싶은 아름다움

by 옥상평상


중학교 3학년 때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를 읽었다. 나 역시 열등감에 심하게 시달리던 시절인지라 똑같이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주인공의 삶에 금세 몰입할 수 있었다. 말더듬이에 몸치에다 못생긴 주인공인 미조구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금각사의 아름다움에 대해 들으며 자란다. 미조구치는 선배였던 사관생도가 지니고 있던 일본도가 담긴 칼집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그것에 흠집을 내고 달아나 버리기도 한다. 또한 이웃에 살던 여성인 우이코에게 연정을 품다가 그녀에게 망신을 당하자 그녀의 죽음을 바란다. 결국, 우이코는 그의 바람대로 탈영병을 숨겨준 죄목으로 군인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게 된다.


폐병을 앓아 쇠약해진 미조구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드디어 금각사를 본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그토록 아름답다고 들었던 금각사는 미조구치가 오랫동안 꿈꿨던 것과는 다르게 군데군데 금칠이 벗겨진 낡아빠진 3층짜리 목조건물일 뿐이었다. 이윽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세상의 종말을 확신한 미조구치는 금각사를 방화하기로 결심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고 만다. 추하기 짝이 없던 미조구치가 아름다움에 다가갈 수 있던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파괴하는 것 밖에는 없었던 모양이다.


소설의 내용은 실제 금각사의 수습 승려가 방화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방화로 소실되었던 금각사는 이후 5년 뒤, 20킬로그램의 금박을 온몸에 칠한 체 이전보다 더 화려한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너무 화려해진 그 모습에 당대의 사람들은 원래의 모습이 자연스럽고 좋았다며 많은 비판을 가했다고 한다.


오랜 기간 동안 궁금했다. 소설 속에서 절대적인 아름다움으로 묘사되었던 그 금각사의 실제 모습이.


https://maps.app.goo.gl/GA9zTWhuv4DdDYQr7




방화에 의해 소실된 당시의 금각사의 모습(왼쪽) 미조구치와 방화범이 실제로 보고선 실망했던 복원전 금각사의 모습(오른쪽)( 출처: 나무위키)


드디어, 가족들과 금각사를 보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사실 내가 금각사를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전에 나 혼자 온 여행에서 이미 금각사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도 겨울이었는데 호수에 비친 금빛 찬란한 금각사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만약, 소설 속 주인공인 미조구치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실망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방화 또한 그만두지 않았을까? '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너무 화려한 모습의 금각사보다는 수수한 모습의 은각사를 더 좋아한다고 한다. 물욕에 어두운 한낱 필부여서일까? 아름다움에 대한 식견이 얕아서일까?

나는 여전히 이 금빛 찬란한 금각사의 모습이 수수한 은각사의 모습보다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금각사를 보기 전에 소설을 읽어서 더 정이 가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한 번 들렀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번 방문을 계획하면서는 그리 큰 기대를 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막상 다시 마주한 금각사는 여전히 아름다웠으며 감동적이었다. 아이들 역시 금빛 찬란한 금각사의 모습에 무척 신기해했다.


"저게 다 금이에요?"

"저거 팔면 개 비싸겠는걸?"

"저 금이 모두 얼마나 돼요?"

"20킬로그램 정도니까 네 몸무게의 3분의 1 정도 되겠네."


금각사는 총 3층 건물로 금박은 2층과 3층에만 칠해져 있다. 나는 그것이 또 마음에 들었다. 만약 건물전체에 금박이 모두 입혀져 있었다면 금각사의 모습은 지금처럼 인상적이고 무게감 있는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1층의 안정적인 목재의 어두운 색깔과 느낌은 2층과 3층의 금박을 한층 더 화려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금각사의 각 층의 구조와 양식은 모두 다르다. 금박이 없이 목조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1층은 8세기 헤이안 시대의 귀족들의 저택양식이며 2층은 그 후대의 무사계급의 주택 양식, 나머지 3층은 선종 사찰의 양식으로 각 시대와 형태를 달리하는 양식이 한 건물에 담겨있다는 점에서 특이하게 다가왔다. 이를테면 목조 건축의 시대별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이랄까?


사실 나는 호수 위에 떠 있는 금각사의 모습보다도 일렁이는 호수에 비친 금각사의 모습을 더 좋아한다. 이번에도 호수 위에 비친 금각사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고 신비로웠다. 실제로, 일우 역시 여행을 마치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을 묻자 '금각사'를 꼽았다.


녀석도 나를 닮아 물욕에 눈이 어두운 걸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