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크리스마스에 가톨릭 세례를 받기로 했다. 4월부터 통신 교리를 받기 시작했으니 거의 9개월 만에 받는 세례이다. 그나마 통신교리로 시작했으니 여기까지 왔지 그러지 않았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여정이었다. 때때로 생각한다. 이런 힘든 과정을 왜 선택했을까? 무신론을 넘어 거의 유물론자에 가까운 내가 평소 허점 투성이의 모순덩어리의 종교라고 무시하던 가톨릭에 몸을 담게 되다니...
올 초 마음의 병이 결국 몸으로 전이되어 심각한 신체화 증상이 일어났다. 어느정도였냐하면 아침에 눈을 떴는데 그야말로 한 걸음도 뗄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었다. 어찌어찌해서 한 걸음을 떼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발이 바닥으로 꺼지는 느낌이 들어 도저히 다음 걸음을 이어갈 수 없었다.
그 과정에서 이곳 브런치에서 알게 된 개살구 작가님과 주치의 선생님의 큰 도움을 받았지만 그중에도 제일 마음고생을 시킨 것은 아내였다. 만약 아내의 끝없는 신뢰와 든든한 지지가 없었다면 나는 아직도 그 지옥의 늪 한가운데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터였다. 그런 아내의 10년이 넘은 소원이 나와 성당에 함께 나가는 것이었다. 내게 성당을 가는 일은 아내의 깊은 은혜를 갚는 유일한 길이었다.
세례명을 정해야 했다. 검도를 취미로 하는 나는 별생각 없이 검을 든 대천사장 미카엘의 모습이 멋있어 미카엘로 세례명을 정했다. 뭐 좋아했던 배우가 미카엘의 이칭인 마이클 더글라스이기도 했고 좋아하는 정치가가 미카엘의 러시아 쪽 이칭인 미하일 고르바초프이기도 한 이유도 있었다. 미카엘이란 이름이 마음에 들었던 나는 스타벅스 사이렌 오더의 별명도 미카엘로 정했다.
"미카엘 님,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1잔 나왔습니다.'
라는 멘트를 계속 들으니 그게 정말 내 이름처럼 정겹게 느껴졌다. 미카엘이란 이름이 세례명으로 거의 굳어질 무렵 이제는 정말 세례명을 정해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일단 천사들의 대장인 미카엘로 정하고 호기심에 내 생일이 축일인 성인을 검색했다. 몇 명의 성인이 나왔다. 대부분 오래된 성화에도 그 모습이 그려진 높은 직책을 맡았던 주교나 사제들이었다. 그중에 사진이 없는 성인이 눈에 띄었다.
'성 펠릭스( SAINT FELIX)'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펠릭스와 포르투나투스(Fortunatus)는 이탈리아 비첸차(Vicenza) 출신의 형제로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통치 때 아퀼레이아(Aquileia)에서 순교하였다. 박해자들이 횃불로 그들의 옆구리를 지졌으나 하느님의 역사하심으로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끓는 기름을 덮어 씌웠다. 그래도 죽지 않고 하느님을 찬미하자 하는 수 없이 목을 잘랐다고 한다.
왠지 마음이 가는 성인이었다. 일단 사제가 아니었다는 점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나와 같은 입장이라 정이 갔고 죽음의 공포 앞에 한 없이 당당했던 그 용기가 내게 울림을 주며 매력으로 다가왔다. 한 번 그렇게 마음이 가니 미카엘이란 이름은 뭔가 허세스럽고 속물적으로 느껴졌다.
펠릭스 성인이 태어났다는 비첸차 지방을 찾아봤다.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했던 베네치아와 베로나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성인이 왠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