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발리 여행기인데 그동안 너무 집안 얘기와 개인 적인 이야기만 한 것 같아 오늘은 발리 여행기라는 타이틀에 맞는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일단 발리는 다음과 같이 거대한 가오리의 모습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자루가 짧은 돌도끼일 수도 있겠다.
북쪽 가오리의 머리 부분에는 바투르 화산이 있으며 지금도 기분 나쁠 때에는 몇십 년마다 한 번씩 인간세상에 화를 터뜨리 듯 용암을 분출한다. 그러한 까닭에 이곳은 아직도 개발이 덜 된 청정지역이다. 아마도 바투르 산 역시 그러한 의도로 화산을 분출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주변으로 인간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이곳에서 보는 일출은 한라산 백록담에서 보는 그것만큼 신비롭고 장엄하기로 유명하다.
북동쪽 가오리의 오른쪽 머리 부분에는 블루라군, 이른바 요즘 뉴진스의 하니가 일본에서 리메이크해서 부른 노래의 제목 푸른 산호초 군락이 있다. 이곳은 물이 맑기로 유명해 수심 5미터 아래까지도 환하게 보인다. 그런 까닭에 스노클링을 하기 좋은 지역으로 유명하다.
가오리의 머리끝, 그러니까 몸통이 시작되는 부분에는 한 달 살기 성지인 우붓이 위치해 있다. 이곳은 깊은 정글 속에서 위치해 있어 오랜 세월 동안 발리의 아래 지역과는 다른 문화를 유지해 왔다. 작은 규모지만 현재에도 왕궁이 있으며 지금도 이 지역이 관광과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때문에 이 지역의 교통은 그야말로 교통지옥인 발리에서도 헬 오브 헬이다. 도시 시내 중심은 그토록 번잡하지만 또 조금만 걸어 나오면 온통 논밭이 펼쳐지는 호젓한 풍경과 원숭이들이 자유롭게 살고 있는 몽키포레스트 등 여러 가지 색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이제는 가운데 몸통 부분을 이야기할까 한다. 몸통에는 발리의 관문 덴파사르 공항이 위치한 덴파사르 주가 위치해 있고 발리에서 제일 유명한 지역인 쿠따, 스미냑, 짱구, 사누르 등이 몸통의 곳곳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은 워낙에 다른 여행서에서도 많이 다루고 있는 지역이므로 여기서는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짱구를 제외한 세 지역이 모두 관광지로서 개발된 반면 짱구는 개발이 진행되면서 그 확장된 영역에 자연스럽게 포함된 지역이므로 현재 개발이 가장 핫한 지역이다. 내가 한 달이 넘게 머물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곳을 보면, 10년 전 한창 개발의 열기에 몸살을 앓던 제주의 애월읍이나 조천읍 같은 곳이 떠올라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하다. 파괴하기는 쉬우나 복원하기는 어려운 것이 자연이라는 것이 지금의 제주 현실이 보여주고 있는 까닭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가오리의 꼬리 부분을 설명하겠다. 사실 이곳은 내가 아직까지 가보지 못한 지역이기도 하다. 아마 다음 주나 다다음주 정도에는 가지 않을까 싶다. 지난번 우붓으로 훌쩍 떠났던 것처럼 내가 머물고 있는 이곳이 문득 일상으로 느껴질 때 다시 홀가분하게 떠나볼까 한다.
어쨌든 이곳에는 서핑의 성지로 유명한 빠당빠당 비치와 신비로운 바위 사원인 울루와뚜 사원, 제주도의 중문과 같은 고급 휴양지로 개발된 누사두아 등 비교적 근래에 개발된 지역이 많은 곳이다. 중심지인 짱구 등과는 다르게 도로도 잘 정비가 되어 있어 비교적 교통 체증도 적다고 한다.
그 외로 제주도의 3배나 되는 큰 크기의 섬인 만큼 몇 개의 작은 가오리, 즉 부속 도서들을 가지고 있는 섬이다.
쿠따비치에서 나를 가르치고 있는 나의 서핑 선생님인 린은 한국사람인 여자친구를 만나 제주도 중문에서 3개월 살았던 경험이 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말을 했다.
"난, 제주도가 참 좋더라. 여기 발리는 항상 똑같은 온도와 날씨인데 제주도는 4계절의 변화가 있어 지루하지가 않아. 겨울에는 눈이 내리고 봄에는 꽃이 피고..."
제주도의 현실이 싫어 도망친 나에게 그의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최근 들어 더욱 혹독해진 계절의 변화는 우리를 몹시 힘들게 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이곳 발리의 날씨는 덥긴 하지만, 항상 30도 언저리를 유지한다. 더군다나 습도도 낮은 까닭에 햇볕이 너무 따가우면 그저 그늘을 찾아 잠시 쉬면 금방 더위를 식힐 수 있다.
화산활동을 제외한 홍수나 태풍도 없는 지역이기 때문에 특별히 자연재해로 인한 농작물 피해도 없다. 그런 까닭에 이곳은 마음만 먹으면 일 년에 세 번이나 벼농사를 할 수 있다. 옆 논에서는 추수를 하는데 바로 옆 논에서는 모내기를 하는 진기한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에 비하면 나의 고향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1년에 한 번 수확하기도 힘든 벼농사를 거의 매년 찾아오는 불청객인 태풍이 하루 밤 사이에 앗아가는 곳이 아닌가?
또 매년 장마철에는 몰아치는 장마로 도시 곳곳이 물에 잠기고 산사태를 일으키는 곳이 아닌가?
자연이 그러하면 함께 살고 있는 이웃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지구에서 센 놈들은 모두 우리 주위에 모여 우리를 호시탐탐 견제하고 있고 같은 뱃속에서 나온 우리의 동족은 틈만 나면 우리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 환경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든 악조건을 뚫고서도 우리가 세계 속에 우뚝 일어섰다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 특히, 음식문화와 K팝, K드라마 등은 이곳 인도네시아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곳 넷플릭스 순위에서 한국 드라마는 항상 1, 2등을 다툰다.
같은 시기 잘 나갔던 일본의 드라마와 J팝은 자국 내의 소비만으로도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유지가능했던 까닭에 결국 세계의 트렌드로부터 멀어져 지금은 고립된 생태의 대표 격인 갈라파고스 섬과 같은 처지로 전락되어 버렸다.
결국, 내수시장이 좁아 세계의 트렌드에 맞춰 환골 탈태한 우리의 문화 산업은 커다란 성공을 거두고 우물 속 하늘에 만족한 일본은 우물 속에 갇혀 버리고 만 것이다. 고난은 우리를 힘들게도 하지만 우리를 강하게도 만든다는 방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