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글을 브런치에 올린 후 자카르타에 있는 친구에게 보내줬다.
"야, 글은 재미있게 읽었는데 난 그때 너처럼 지각해서 맞은 게 아냐. 너무 오랜 일이라서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선생이 들어올 때 껌을 씹고 있어서였든가, 비딱한 자세로 서 있었든가 해서 그런 거지, 너처럼 지각해서 그런 건 아냐."
친구의 카톡을 보고 나니 수 십 년 동안 갖고 있던 나의 억울함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알고 보니 친구는 지각조차 하지 않고 20대나 맞은 것이었다. 정작 억울한 당사자는 친구였던 것이었다.
아무튼 친구와 내가 그 뒤부터 바로 친해진 것은 아니었다. 1학년 이후는 반이 갈려 다른 반이 되었던 까닭도 있었으나, 그 후로도 학교에서 운영하는 특별반에서 종종 만나기는 했으니 친해지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친해지지 못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시절 우리에게는 친구를 만드는 일보다도 더 급했던 게 각자에게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같은 고등학교 출신들이 모여 만든 모임에서 다시 만났다. 친구는 고등학교 때도 키 크고 이쁘장한 외모였지만 그 시절 친구의 외모는 '슬램덩크'에 나오는 주인공 서태웅을 닮았다는 이야기까지 제법 들을 정도였다. 뭐 매번 들은 것은 아니지만, 가뭄에 콩 나듯 만화 슬램덩크를 좋아했던 몇몇 여학생들로부터 그러한 찬사를 듣기도 했다. 물론, 나를 비롯한 남자아이들은 그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지만서도 말이다.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티브이에서 '마지막 승부'라는 농구드라마가 방영되었다. 지금은 은퇴한 여배우인 심은하를 일약 최고의 스타 자리에 올려놓은 드라마였다. 이미 그전에 만화 슬램덩크의 인기와 농구대잔치에서 이제 고교를 갓졸업한 대학생 팀인 연대나 고대의 어린 선수들이 성인들로만 구성된 실업팀을 박살 내기 시작해 전국적으로 불이 붙던 농구의 인기는 마지막 승부의 인기로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당시,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가릴 것 없이 항상 농구대 앞에는 남학생들이 공중에 떠오른 빨간 농구공을 서로에게서 빼앗느라 여념이 없었고 여학생들은 당시 인기 폭발이었던 대학 농구 스타인 이상민, 우지원, 현주엽 등의 경기를 쫓아 전국을 누비던 시기였다.
마르고 키가 컸던 친구는 운동신경도 탁월했다. 하지만, 재능이 있는 친구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그 역시 그다지 노력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왜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치르고 난 후, 한 아이가 " 밤새서 공부하느라 너무 피곤하네. 그래도 90점을 넘겼으니 다행이야."라고 말을 하면 친구는 " 훗, 나는 푹 자고도 80점 넘겼는데.."라고 말하는 스타일이었다. 한마디로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좀 재수 없는 스타일이었다. 어쩌면 친구는 외모보다 성격이 더 서태웅을 닮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친구는 농구도 그러했다. 키가 크고 날씬해 농구에 적합한 몸매였던 친구는 단 하나 슛폼이 예쁘지 않았다. 뭐 나도 그다지 좋은 슛폼은 아니었던지라 자칫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 되겠지만 그래도 당시 대학에서 농구를 전공했던 다른 친구가 그런 지적을 한 것을 보면 폼이 이상한 건 확실했다.
그 시절에야 지금처럼 사설 농구 클럽 같은 게 있던 시절이 아니니까 폼이 좀 이상한 게 당연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그 폼을 고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친구는 역시 이상했다. 나의 경우, 운동신경이 좋은 편이 아닌 까닭에 무엇을 배우든 따로 시간을 내어 개인 연습을 해야만 했기 때문에 조금만 고치면 훨씬 멋질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던 친구의 슛폼이었다.
그의 연애사도 좀 비슷한 면이 있었다. 연애에 있어서도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옆에는 항상 그를 서태웅처럼 생각하는 여자친구들이 있었다. 누구는 기를 쓰고 노력해도 모쏠을 탈출 못하는 반면 친구는 대충대충 무관심해도 멀쩡한 여학생들이 따랐다.
한 마디로 친구는 뭔가 술렁술렁 대충대충 하는 듯한데 꼭 평균 이상의 우수한 성과를 내는 묘한 재주가 있었다.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친구가 내게 한 소리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살짝 든다.
"야, 나도 내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