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20년 만에 만난 친구 1

by 옥상평상



이곳 발리에서 20년 만에 친구를 만났다. 그와 나는 수도권에 위치한 같은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함께 진학을 하면서 친하게 된 친구였다.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는 알 순 없으나, 나는 그를 만난 지 30년이 훌쩍 넘은 이 시간까지도 그를 개성이 강하고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지만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을 생각하는 선한 친구로 기억하고 있다.



그는 현재 이 나라의 수도인 자카르타에서 살며 20년 동안 현지인들과 사업을 하고 있다. 그를 만난 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단 웃음부터 나온다. 뭐 지금에야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추억이지만 그때는 꼭 즐겁지만은 않았던 추억이다.



고등학교 입학 첫날이었다. 중학교 때까지도 한 번 지각을 않던 나였는데 그날은 무슨 일인지 지각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때는 원치 않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는 실망감과 새로운 생활에 대한 중압감에 밤잠을 설쳐 지각한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비교적 가까웠던 중학교에 비하여 현저히 먼 고등학교에 배정된 탓이 가장 컸었던 것 같다.



어쨌든 언덕배기에 위치한 학교인지라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자마자 무거운 가방을 들쳐 매고 그대로 달려야만 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으나, 지금 그런 것 따위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안 그래도 학교의 선생들에 대한 소문이 극악 무도하다고 퍼져 있었기에 첫날부터 몽둥이로 두들겨 맞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시간 내에 도착해야만 했다. 결국, 5분 정도를 늦고야 말았다.



그래도 5분 정도니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낡고 오래된 교실의 미닫이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갔다. 60개가 넘는 까까머리 뒤통수들이 겁을 먹은 채 교단을 향해 부동자세로 앉아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었다.



"퍽! 퍽! 퍽!"



적막을 뚫고 내 귀로 들려오는 둔탁한 타격음, 교단에서 담임이 한 아이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쥔 대걸레 자루로 힘껏 내리치고 있었다.



'아, 젠장..'



나는 일이 잘못되었음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넌 뭐야? 이 새끼야. 이것들이 겁대가리도 없이 첫날부터 지각해?"



담임이 그를 때리다 말고 눈을 부라리며 내게 소리쳤다.



'뭐야 고작 5분 늦은 거잖아요.'



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내 입에선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왔다.



"죄, 죄송합니다."



살기 위해서였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처럼 학교건 사회건 크고 작은 폭력이 난무했던 80년 대에, 그것도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선생에게 대드는 일 같은 건 그저 목을 내놓는 행위이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초장에 학생들을 제압하려고 단단히 마음먹은 담임이었다. 일단 이 상황을 모면해야 했다.



"너, 이 새끼 이리나와!"



교실 뒤편과 교단까지의 거리가 그렇게나 길었던 것을 나는 그제야 알게 되었다. 사형장에 가는 사형수의 심정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야, 넌 몇 대까지 맞았어?"



담임이 맞고 있는 아이의 엉덩이에 대고 소리쳤다.



"......"



엎드려뻗쳐하고 있는 아이의 입에서 들리지도 않을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다 맞긴 뭘 다 맞아. 넌 좀 더 맞아야겠다!!"



"퍽, 퍽, 퍽!"



"으윽!!!"



아이의 입에서 급기야 신음소리가 나왔다.



"다음!!!"



담임이 나를 몽둥이로 지목하고 있었다.



"아, 내 차례구나."



그 친구는 엉덩이를 부여잡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미안한 듯 내게 자리를 양보했다.



"너, 허리에 단단히 힘줘. 괜히 힘 빼거나 피하다가는 허리 나간다."



'허리 나갈게 걱정되면 그냥 안 때리면 되잖아요.'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퍽!!!!!"



내 엉덩이를 통해 둔탁한 소리와 함께 통증이 전해졌다. 그런데 웬걸?



'이거 맞을 만 한데...'



내가 신음도 안 내고 자세도 흐트러지지 않자 담임이 연달아 몇 대를 더 내리쳤다. 그런데 걱정했던 것보다 그다지 아프지가 않았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에서 한 체육선생이 마구 휘두르던 곡궹이 자루로 이미 충분히 단련되어 있던 엉덩이여서 그런 건지도 몰랐다. 에게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다.



'이깟 대걸레 자루 정도야."



그렇게 나는 미동도 없이 20대가량을 그대로 맞았다.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고 그 정도에서 담임도 그만둘 줄 알았다. 하지만, 담임도 오기가 생겼는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 새끼, 이거 반항하네?"



'뭘, 반항이야, 지가 허리 다친다고 가만히 있으라고 해놓고서.'



내 속에서도 오기와 분노가 발동하고 있었다.



결국, 담임은 50대를 채우고서야 몽둥이를 내려놨다. 나는 엉덩이가 몹시 부은 게 느껴졌지만, 그다지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흐트러지지 않고 신음소리도 내지 않은 채 담임의 공격을 전부 받아냈다는 사실에 묘한 승리감과 희열마저 느꼈다.



"너, 뭐야? 너 깡패야?"



담임의 그 말에 실소가 나올 뻔했지만, 여기서 웃었다가는 교무실에 끌려가 선생들에게 돌림빵을 당할 수도 있었다.



"너희 둘 다 수업받을 자격 없어. 다 나가있어!!"



그렇게 그 친구와 나는 나란히 복도에 서 있게 되었다.



"야, 너는 몇 대 맞았냐?"



내가 물었다.



"응, 한 스무 대 맞았나? 너도 아픈 티 좀 내지 그랬냐? 뭐 한다고 그걸 다 맞고 있냐?"



녀석은 나보다 한 수 위였다.



이곳 발리까지 이어지는 친구와 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