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 온 지도 어느새 한 달이 넘어간다. 이제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도 한 손으로는 장바구니를 가슴에 안고 한 손으로는 뒷손잡이를 잡은 채 여유 있게 오토바이 뒷좌석에 올라탈 수 있게 되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당시 오토바이 택시를 타는 내내 앞 좌석 라이더의 허리를 마치 여자 친구처럼 꽉 부여잡은 때랑은 비교도 안 되는 여유이다.
처음 오토바이 택시를 탔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인도와 차도를 무서운 속도로 종횡무진 누비는 발리 라이더들의 운전모습에 너무 놀라 생명의 위협마저 느끼고 있었다. 공포에 당황했던 나는 나도 모르게 허리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말았다. 오죽했으면 라이더가 불편했는지 허리를 잡지 말고 자신의 어깨를 잡든가 뒤쪽 손잡이를 잡으라고 알려줬을까?
인도네시아 사람들 치고도 작은 체구였던 그는 족히 그의 두 배나 되는 몸 크기의 내 허리 조르기 공격에 어마어마한 통증을 느꼈을 것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그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친구, 그때는 내가 너무 어렸었네..."
어쨌든 나도 이제는 바이크 뒷좌석에 앉아 마트에 두고 온 물건이 없나 가방을 뒤져보기도 하고 휴대폰 음악 재생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정도에 까지는 올랐다. 하지만, 이곳 아가씨들처럼 바이크 뒷좌석에 그것도 무릎을 가지런히 모은 채 옆으로 앉아 스마트폰 검색을 하고 화장을 하는 경지에는 도무지 이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처음 이곳에 와 호텔 방 안에서 도마뱀 친구를 만난 게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나가고 말았다. 한국의 직장에서의 시간 역시 빨리 갔지만 이곳에서 느끼는 시간의 빠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한국에서의 시간의 빠름이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게 되어 빨리 삼켜 버렸던 상황이라면 이곳에서의 그것은 어떻게든 아껴서 녹여 먹으려던 사탕이 눈 깜짝할 사이에 입 안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그런 느낌이다.
즉, 하나는 절대 붙잡고 싶지 않은 시간이란 것이면, 다른 하나는 어떻게든 붙잡고 싶은 시간이라는 차이일 것이다.
오늘 아침, 조식을 먹기 위해 호텔 수영장이 위치한 식당으로 나왔다. 파란 하늘은 화창하기 짝이 없는데 간 밤에 스콜 소나기가 또 왔는지 우리 핑크 백조 모녀의 몸에는 온통 물보석이 가득했다. 그 모습을 보고 '이곳 소나기는 참 도둑처럼 왔다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니 어쩌면 도둑이 아니라 그저 부끄러움이 많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온 둘째 날에는 소나기 소리에 잠을 설쳤는데 이제는 그런 소나기 소리 정도는 내 잠을 전혀 방해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오늘도 발리의 청명한 아침 하늘에는 형형색색의 연들이 걸려 있었다. 발리 사람들이 새벽부터 저 연들을 떠올리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어쩌면 저들은 매일 아침 자신들의 소망을 하늘에 길어 올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한국으로 갈 즈음,
저 희망의 연들 중
단 하나만이라도,
내 마음 한구석
구멍 난 공간에
걸려 있어 주기를
조용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