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화라는 이름으로 가려둔 마음

by 힐링튜터


오늘의 기본

P.39> 플라스틱은 좋지 않다고 하니 환경에 이로운 제품으로 바꾼다는 명목으로 소비를 합리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명목’과 ‘합리화’라는 단어에 오래 머물게 된다.

물건을 살 때뿐 아니라, 아이를 키우거나 일을 할 때,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도 나는 종종 어떤 이유를 앞세우며 나 자신을 설득하고 있었다. 그건 정말 내가 원해서 하는 선택일까, 아니면 나를 설득시키기 위한 설명일까. 이상적인 삶을 꿈꾸면서도, 정작 내 말과 행동은 그 꿈에서 멀어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이 ‘명목상 이유’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습관은 어쩌면,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을 견디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런 합리화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올바른 정보, 다른 하나는 나의 선택에 대한 확신이다.

잘못된 정보에 기대어 내린 결정은 쉽게 흔들리기 마련이다. 흔들리는 마음은 결국 또 다른 이유를 만들어내며 나를 납득시키려 한다. 그런 과정이 쌓이면, 나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 되어간다.

어릴 적 나는 외로운 아이였다.

부모님은 늘 바쁘셨고, 나는 그저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어서는, 자녀 교육에 전혀 관심이 없는 부모님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나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그 다짐 하나로 나는 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 애썼다. 유치원 시절, 숲 체험이나 놀이 위주의 교육이 창의성과 학습 능력을 키운다는 말을 그대로 믿었다.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꽤 괜찮은 엄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며 그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놀이 교육은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체험과 학습을 연결지어 가르치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그저 ‘잘 놀게 해주면 다 괜찮다’는 생각만 했고, 그 생각은 충분한 정보에 근거하지 않은 것이었다.

결국, 그 선택에 대해 나는 자신이 없었다.

책을 읽을수록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글을 쓸수록, 내가 얼마나 자주 스스로를 그럴듯하게 합리화해왔는지를 마주하게 된다.

한때는 그 모든 것이 진심인 줄 알았지만, 지나고 나서 보면 어딘가 비어 있고 흔들리는 내면이 있었다.

이제는 그 틈을 인정하려 한다.

모순 없는 삶을 사는 것은 어려울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모순을 들여다보고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한 이유보다, 나의 진짜 마음에 더 가까운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