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냐?"
"밀감 먹고 있어"
"또 밀감이냐? 너는 맨날 그것만 먹고 밀감 처녀가 따로 없구먼."
식당을 하시는 엄마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먹는 것 하나는 푸지게 먹었다. 우유는 매일 4개씩 받았고, 과일은 항상 박스로 사셨다. 우유 4개 중 3개는 남동생이 먹었고, 과일은 얼마 가지 않아 바닥을 보였다. 그래서일까? 남동생의 키는 180cm가량 되고, 나는 피부만 곱다.
고등학교 3학년 졸업할 때쯤이었다. 당시 천리안과 나우누리라는 통신망을 통해 온라인 세계에 접속을 했다. 내가 주로 사용했던 통신망은 나우누리였다. 컴퓨터를 켜고 네모난 나우누리 아이콘을 더블클릭하여 접속하면 "삐~ 삐리리~ 삐~" 소리가 나면서 연결되었다. 그때 나는 소리는 마치 현실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오묘한 느낌이었다. 그 느낌은 레이디 버그가 변신할 때처럼 마치 나도 다른 모습으로 가면을 쓰는 듯한 기분이었다.
전산부 활동을 한답시고 매일 아침 다른 친구들보다 1시간 일찍 학교에 갔다. 학교에 가면 먼저 전산실과 컴퓨터실 청소를 하고, 타자연습을 했는데, 당시 타수는 700타 이상이 나왔었다. 현실에서는 말도 느리고, 말수도 적은 내가, 채팅방에서는 빠른 손놀림으로 대화를 했고, 독수리 타법으로 이야기하는 상대를 만나면 그의 대답을 듣고 천천히 생각한 후 글을 써도 느린 편이 아니었다. 온라인 세계의 나의 모습은 현실 세계와 달리 빠릿하고, 활달했다.
메인 화면에는 다양한 모임의 커뮤니티와(지금의 네이버나 다음 카페와 같은), 남녀노소 구분 없이 채팅을 할 수 있는 채팅방이 있었다. 1대 다수의 만남보다는 1 대 1의 만남이 지금도 편한데 그런 성격의 영향 때문이었을까? 카페 활동보다는 채팅이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단톡방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1 대 1 대화가 편하다. 채팅방에 주르륵 올라가는 글 속에서 누구의 말에 대답을 해줘야 할지, 대답을 해주지 않으면 누군가는 서운해하지 않을지, 내가 쓴 글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지, 혹은 사오정처럼 다른 소리를 하고 있진 않은지 신경 쓰다 보면 글 쓸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였다. 그런 나에게 1 대 1 채팅 만남은 오롯이 나일 수 있었다. 나에게 밀감 처녀라고 별명 붙여준 친구는 고3 때 온라인 채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뭐 하냐"
"밀감 먹고 있어!"
"또 밀감이냐?"
"너무 많이 먹어서 이제는 손도 노래졌어. 분명 한 상자가 있었는데 지금 절반도 안 남았어!."
" 너는 맨날 그것만 먹고 밀감 처녀가 따로 없구먼. 넌 앞으로 밀감 처녀라고 불러야겠다."
그가 붙여준 별명 덕분에 내가 밀감을 많이 먹는다는 것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미주알고주알 나의 이야기를 꺼내놓으면 나에게 관심 있는 상대는 나의 이야기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관심사를 콕 찝어준다. 상대와 이야기하는 것은 나를 드러내는 행위인데 나는 나의 취부를 감추기 위해 현실세계에서 회피하여 가상세계로 빠져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