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들과 아침 산책 중이다. 집 가까이에 물길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산책길이 있다는 것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당첨된 로또 같은 축복이라고 걸을 때마다 생각한다. 물론 옆으로는 차가 쌩쌩 달린다. 나도 저렇게 달릴까? 생각하면서 시골길 달릴 때는 속도를 조금 줄이면 좋겠다는 여유도 가져보며 걷는다. 단풍 나뭇잎 사이로 가을 아침햇살이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강물 한편으로는 막 뿌려진 은가루가 바람 타고 사방으로 흩날리며 반짝거린다. 강아지와 나는 몽환 속에 동화의 나라에서 막 나온 여행자처럼 자연에 심취해 걷는지 나는지 가고 있는데, 익숙한 냄새가
"와장창!" 꿈길을 깨버린다.
자주 맡았던 아주 익숙한 냄새인데, 무슨 냄새일까?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의 주인을 찾는다.
아! 배고플 때 반가운 익숙한 냄새!
라면, 바로 라면 냄새였다. 저기 옆 숲 속에서 누군가가 강가에서 낚시를 하고 아침으로 라면을 삶아 먹고 있는 것이다. 부엌에서 끓일 때 나는 냄새와, 아침햇살 내려쬐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꽃향기와 나뭇잎 향기로 채워져야 할 숲 속에서 퍼지는 라면 냄새가 격이 달라 보이는 건 왜일까. 자연의 풍광과는 그리 어울리진 않는다. 얼마나 강한지 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라면 냄새는 고공으로 퍼져 나무와 숲의 모든 냄새 위에 군림하고 말았다.
강렬한 라면 냄새는 다시금 "라면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고 싶게 만들었다.
라면이야말로 배고팠던 시절, 서민들의 식생활에 큰 도움을 줬던 고마운 식품이었다. 요즘도 배고플 때면 라면 한 젓가락이 간절히 생각날 때도 있고,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땐 한 끼 식사로 대신하기도 한다. 힘들었던 시절에 함께했던 라면 만드는 회사들은 경제 발전과 더불어 성장하여, 내로라하는 유수의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고가의 물건을 파는 대기업에 비하면 비싸야 천 원, 아니 그 이하의 가격의 식품으로 수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라면을 팔았을까. 어쩌면 라면이나 식품을 만들어 파는 회사는 다른 모든 기업과 달리 흔적을 남기지 않지만, 먹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삶과 생활을 영위하게 하는 에너지를 주는 것이니 고마움을 달리 표현할 수 없다.
이렇게 고마운 라면이긴 하지만, 라면에 대한 호불호는 늘 갈린다. 여러 건강상의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냄새로만 맡는 라면의 느낌은 또 다르다. 만약에 라면을 먹지 못하고 냄새로만 맡는다면 어떨까.
배고플 때 한 젓가락이라도 빨리 먹고 싶었던 끓는 라면은 맛있는 냄새였지만, 배부를 때 맡게 되는 라면 냄새는 또 다른 느낌이다. 냄새로만 친다면 라면은 단연 일등이다. 어디에서 조리를 하던, 어떤 요리든 라면이 들어가면 그 냄새는 다른 냄새보다 우위에 있다. 라면 먹을 땐 몰라도 환기시켜보면 라면 냄새가 얼마나 강한지는 알 것이다. 누구와도 어울리기 힘들고, 어울리기 싫어하는 독보적인 존재다.
라면의 태생을 보면 이해가 된다. 라면은 21세기 가공식품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1870년대부터 돼지고기 국물 등에 면과 조미 양념을 넣어 먹는 요리가 있었다. 이것이 전신이 되어 닛산식품의 창업자인 안도 모모후쿠가 대량생산이 가능한 방법으로 개발, 생산한 것이 라면이다. 2차 대전 후 패망한 일본에게 라면은 일종의 구황식물과 같았고, 1960~70년대 가난했던 우리나라에서도 라면은 가난을 이기는 훌륭한 먹거리로 함께 한 중요한 식품이었다. 라면은 면을 반죽하여 성형한 후, 롤러를 거쳐 면발을 형성하고 절단기를 걸쳐 자르고 증숙 시킨 후 튀겨내고, 기름을 털어낸 다음 냉각, 건조하여 포장하는 단계를 거친다. 라면이 좋지 않다고 주장하는 몇 가지는 먼저 대부분 기름에 튀겨 열량이 너무 높다는 점. 두 번째는 맛을 내기 위한 조미 수프에 많은 종류의 첨가물과 부원료를 사용하는 것, 마지막으로 나트륨 함량이 너무 높다는 점일 것이다.
기름은 음식의 맛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 중 하나다. 라면 맛을 좋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보존성을 높이기 위해 유탕 처리한다. 한번 튀겨서 호화시킨 면이므로 끓일 때 복원되는 과정에서 잘 불지도 않고, 꼬들꼬들하게 익어도 고소한 맛과 씹히는 맛이 살아있기 때문에 맛있는 것이다. 튀긴 음식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튀김이 맛있고, 선호되는 이유와 같다. 국수도 열량이 높지만, 라면은 국수를 튀겨낸 것이니, 당연히 열량이 더 높다.
라면은 끓여 먹는 국물음식이다. 국물음식은 간을 맞춰야 하는 탓으로 소금을 더 많이 넣는 편이라 라면 역시 나트륨 함량이 높은 편이다. 정부에서 국민건강을 위해 이미 나트륨 저감화 정책을 내놓았고, 업계에서도 소금(NaOH) 함량을 줄이고 대체염(염화칼륨 등)으로 보완하는 방법 등 다채롭게 연구 중이다. 대체염은 쓴맛이 강해 그 맛이 소금 같진 않지만 나트륨 함량을 월등히 낮출 수 있어 김치나 장류 등에도 활용 중이다.
그리고 라면 수프에는 많은 복합조미료들이 첨가되어 한 가지로 단정 지을 수 없는 맛을 창출한다. 그 특색이 라면의 맛인지도 모르지만, 여러 가지 복합조미료가 들어있다. 우리나라는 식품표시사항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까다롭게 잘 되어있다. 모두 소비자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작 가공식품을 구입할 때 소비자들은 표시사항을 잘 보지 않는다. 기업들은 식품을 만들 때 사용하는 모든 원료(주원료, 부재료)를 철저히 표시해야 하기 때문에 식품의 겉포장 지를 자세히 보면 들어간 원료와 첨가물이 적혀 있어, 원하지 않는 첨가물이나 원료가 투입된 제품은 구입하지 않을 자유가 주어져 있다. 라면은 원재료인 면은 밀가루와 소금, 기름등의 단순한 원료를 사용했지만, 간을 맞추고 맛을 내기 위해서 첨가하는 스프에는 많은 부재료들이 혼합되어 있다. 요즘 생활형 방송 프로그램 등에서도 요리할 때 라면수프 하나면 만능이라고 할 정도로 라면스프가 여러 곳에 사랑받으며 사용되고 있다. 표시된 것만도 수십 종류에다, 여러 가지 첨가물들을 섞어서 만든 복합원재료까지 센다면 족히 백가지도 넘을 수 있다.
라면은 한 사람이 만든 가공식품이 아니다. 일본에서 대량 생산으로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어쩌면 라면을 세계적인 식품으로 올려놓은 것은 우리나라가 아닐까 싶다. 우선 라면 맛이 가장 좋다는 것이 세계적으로 한국 라면의 위상을 우뚝 서게 만든 첫 번째 이유다.
여러 가지 복합 원료를 써서 국물을 맛있게 해, 끓이는 동안 면에 국물 맛이 베이게 하는 것이 라면의 비법이다. 국물 문화에 익숙한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맛있는 국물을 위한 많은 부재료 첨가물들이 스프에 들어있는 것이다. 라면을 건강하게 먹고 싶은 사람들은 나트륨 섭취를 위해 국물은 안 먹기도 한다. 스프의 양을 조절해가며 먹을 수도 있다, 또한 여러 가지 야채와 버섯, 달걀 등을 넣고 영양가를 보충하기도 한다.
라면은 "카멜레온"이다.
"만들어진 라면"이지만, 각자의 취향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라면"을 먹을 수 있다.
라면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수없이 많은 원료로 이루어진 작품이라, 가공식품의 역사만큼 오래되고 많은 사랑을 받은 식품이니, 이것이다 저것이다 한 가지로 표현하긴 어렵다. 온갖 뉴스와 변화에 시시각각으로 노출되어 사는 우리들의 삶과 더불어 나이 먹고 발전해온 라면은 이웃 같기도 하다.
라면은 현대의 구황식품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현대인의 군상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식품이기도 하다. 한 가지로 표현하지 못할 다양한 현대인의 심리처럼 수없이 많은 재료는 섞여야만 맛을 낸다. 단순하기를 원하지만 결코 단순해질 수 없는 현대인의 삶은, 쉽게 뜯어 붓기만 하는 스프 속에 들어있는 오만가지의 첨가물처럼 복잡하고 미묘한 엉켜짐이다.
맛을 내는 온갖 종류의 조미료 함축물인 스프와, 쫄깃한 면발을 위한 수없는 노력이 반죽되어 "라면"을 만들었으니 라면의 정체성을 뭐라 표현하기 어렵다.
"라면"은 그저 "라면"일뿐이다.
시대가 만들어 낸, 먹거리 세계의 스마트폰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라면은 각자의 스타일을 보태 더 맛있고 영양이 풍부한 "나~면"(나의 면緬)으로 발전하고 있듯이, 판매대의 라면도 더 보완되고 착하게 성장해 건강에도 이로운 "정~면"(情緬, 正緬)으로 쭉 이어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