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면 강변으로 놓인 데크길 산책을 간다. 요사이 다리 쪽에 공사가 한창이라 땅 파는 기계소리에 압축기 모터 돌아가는 소리까지, 다니는 사람도 없이 한적하고 좋았던 산책길이 요란하기 그지없다. 보리는 소리에 워낙 예민해, 요 며칠은 동네길로 산책하곤 했는데 오늘은 어떻게 데크길로 나와 버렸다. 아침부터 돌아가는 압축기 모터(?) 소리가 길 건너까지 유난히 요란하다. 매미는 어떻게 가을이 오는 것을 직감하는지 마치 오늘이라도 생을 마감할 것처럼 울어댄다. 기계 소음 속에 알알이 박혀버리기라도 하듯 "맴맴" 찍어내리는 생존의 울음소리가 요란하고 처절하게 울려 퍼진다.
하늘은 이미 가을이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 따사로운 햇볕이 그동안 미안하기라도 했는지 모든 것을 익어가게 만든다. 따다 남은 옥수숫대 앞에 들깻잎이 팔랑거리고 있다. 들깨밭 사진을 찍는다. 강아지 하네스 줄을 잡고 걸어가면서도 머릿속엔 들깨가 들어왔다. 우리들이 정답게 부르는 "깻잎"은 사실 "들깻잎"이다. 한민족에게 들깨란 어떤 존재일까, 상추가 먼저일까 들깨가 먼저일까를 가늠키 어려울 정도로 동무같이 정답고 이웃사촌 같은 존재 아닐까. 물론 참깨도 있다. 참기름도 우리 역사와 함께한 한국의 전통적인 맛을 내는 고소한 진심이다. 하지만, 들깨는 그 잎을 통칭해 "깻잎"이 될 정도로 기름을 짜는 깨의 역할을 넘어서 "깻잎"만으로도 너무 소중한 식재료가 되어 버렸다. 들깨는 여름의 뜨거움도 가을의 관심도 상관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색깔대로 산다. 아무 데나 모종을 앉혀도 거부감이 없다. 제법 높은 산밭에서 농사짓는 분이 들깨 농사만 짓는다는데, 다른 것을 심으면 멧돼지나 고라니들이 다 파먹고 밭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데 들깨는 냄새 때문인지 들짐승들이 파헤치지를 않는다고 한다. 역시 들깨는 한민족의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
들깨(학명 : Perilla frutescens / 영어 perilla 혹은 Korean perilla)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재배해온 기록이 있는 오래된 우리 식물이다. 물론 동남아와 인도 등지에서도 재배하긴 하지만, 우리처럼 다양하게 사랑받지는 않는 듯하다. 채마밭의 들깨는 단골손님 같은 가족이다. 모종 몇 그루만 심어놓으면 달포가 지나 싹이 나고 싱싱하게 잘 자란다. 우리 한국사람들에게야 무엇보다 쌈 싸 먹는데 빠질 수 없는 상추와 쌍벽을 이루는 "쌈의 동반자" 아니겠는가. 유독 우리나라 한국사람들이 들깻잎을 좋아하는 이유는 마늘을 좋아하는 이유와 같지 않을까. 사실 들깻잎은 독특한 향이 강한 방향성 채소라, 호불호가 있긴 하다만 싫어하는 사람은 아직 못 본 것 같다. 마늘과 더불어 어쩌면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를 물씬 풍기는 채소 아닐까 싶다. 근래에 들어 다른 나라에서도 들깻잎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일본에서는 우리나라 들깻잎의 방향성 물질인 로즈마린산에 대한 기능성 표시(눈의 불쾌감을 완화시켜줄 수 있음)를 허용해 일본 사람들에게도 K-Food의 선두주자로 사랑받는 식품으로 성장 중이다. 우리의 "깻잎"이 세계 시장에서 서양의 "허브"류 못지않은 관심과 인정을 받을 날을 기대해본다.
들깻잎은 생잎으로도 먹고, 무쳐먹고 볶아먹고, 간장이나 된장에 박아 먹는 장아찌로도 먹고, 양념해 김치처럼 담가먹기도 하고 양념을 올려 쪄먹기도 하며, 찌게나 여러 요리에 부수적으로 넣어 맛을 돋우기도 한다. 들깨송이 부각도 만들긴 힘들어도 사랑받는 식품이다. 들깨가루는 추어탕 등에 없어서는 안 될 재료이며, 미역국 등 국이나 찌게에 넣어서도 많이 먹는다. 감자와 호박을 살짝 썰어 넣고 할머니의 손반죽으로 밀어낸 칼국수로 끓이는 들깨칼국수는 그리운 추억의 음식 아닌가. 한여름 깻잎으로 식탁을 빛내주던 들깨는 가을이면 달린 들깨 열매로 건강한 기름까지 준다. 이처럼 우리 식단에 다양하게 활용되는 들깨 요리는 수없이 많고,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아 다시 찾게 되는 것이 들깻잎의 매력 아닐까 싶다.
특히 요사이 들깨가 각광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들기름 때문이기도 하다. 들기름은 올리브유를 착유하는 것처럼 압착하여 기름을 짠다. 들깨기름의 건강 효용성은 올리브유와 비교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샐러드유로 많이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 들깨기름 자체가 워낙 향이 강해 다른 채소의 맛을 잡아먹기 때문이라 여겨지나, 방향물질도 건강에는 좋은 것이라는 점이 알려지며 요즈음은 올리브유 대신에 샐러드유로도 많이 먹는다. 들깨기름은 식물성 기름 중에 오메가 3 지방산 함량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메가 3 지방산은 참치나 고등어처럼 등 푸른 생선에 많이 함유되어 있는 불포화지방산이다. 오메가-3 지방산은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을 줄이고, 피토케미컬(phytochemicals) 흡수를 촉진시키며, 혈전에 관여하는 호르몬인 프로스타글란딘의 전구물질로 이용되어 현대인의 건강 생활에 필요한 기름이다.
들깻잎에는 철분 등 무기질이 풍부하고 비타민 A, C 등이 풍부해 성인들에게도 좋은 식재료다. 특히 들깻잎에는 항균, 항염 및 항산화 활성 효과가 있으며 스트레스 해소와 기억력을 좋게 하는 로즈마린산과 가바 등의 기능성 물질도 함유되어 성인들에게 더 좋은 식품이다. 효능을 떠나서 신선한 야채이니 여러 방법으로 많이 먹으면 좋겠다. 잎으로 먹으나, 기름을 짜서 먹으나 어디 한 군데 먹지 못할 데가 없는 것이 고마운 들깨다. 예전에 외할머니께서 아침마다 생들째 한 줌씩 씹으시면서 "이렇게 아침마다 한 줌씩 씹어 먹으면 잇몸에도 좋고 건강에 좋단다" 말씀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하면 외할머니는 참으로 지혜로우신 분이셨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민간요법이었겠지만, 요즘은 그 사실이 과학적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들깨를 볶아 기름을 짜기도 했지만, 요즘은 생들깨를 볶지 않고 그대로 압착시켜 짠 들기름을 많이 선호한다. 들깨를 볶는 과정에서 생기는 산화물질을 막고, 열처리하지 않으므로 더 신선하고 깨끗한 기름을 얻을 수 있어서다. 물론 생들깨의 살짝 비린맛을 싫어한다면 볶은 들깨기름을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강변의 땡볕 아래 익어가는 들깻잎 냄새는 정말 좋다. 들깨 한 알 한 알에는 가을 들녘 깻송이를 터는 어머니의 이마에 맺힌 땀과 애정이 서려 있다. 들깨밭 옆을 지나가는데 타닥타닥 장작 타들어 가는 소리가 느껴진다. 가을을 향해 조용히 익어가고 있는 들깻잎에서, 풍기는 향기만큼 열정으로 가득 찬 들깨들이 소리를 내면서 탄탄해진다. 누렇게 익은 황금들녘에서 벼를 베어낼 때 들깨도 가을걷이를 한다. 올 가을 들깨 털 즈음엔 한 됫박 구해서 아침마다 한 줌씩 생들깨로 씹어 보리라.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영원한 젊음이 내 지친 몸과 마음에 힘을 주고 사랑받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곱씹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