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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pera Aug 22. 2023

스마트폰으로 쓴 규슈 기행기 1

2015.04.19~04.22까지 일본 규슈 여행을 스마트폰(갤럭시 노트1)으로 기록한 여행기입니다. 묵은 기행기를 쓰는 것은 지난 것들에 대한 회귀 본능 그리움도 있지만, 지난 일을 현재의 삶에 투영해 보고 앞으로의 삶을 그려볼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당시의 끄적거림이나 상세한 기록이 고산등반 중 아쉬운 한 모금의 맑은 산소 같은 역할을 했었는지도 모릅니다. 떨어진 한알의 낱알도 주워 담는 마음으로, 묵은쌀로 지어봅니다.




2015.04.19

 아침부터 비가 제법 온다. 바람도 불어 시골은 괜찮을지 걱정스럽다. 바쁜 아이들을 대신해 강아지들을 봐주시기 위해 아버지께서 내려오셨다. 승리는 까칠하게 굴고 보리는 아버지 옆에 붙어 알랑거린다. 아버지께서 건강하셔서 강아지들을 봐주시니 이렇게 다녀올 수 있는 거다. 아버지는 외손녀 보듯 잘 돌봐 주신다. 그러고 보니 로리에게 참 미안했다. 출장 다닐 때마다 애견호텔에 자주 맡겼는데, 어느 땐가 찾으러 호텔로 갔는데, 호텔 정문 쪽 유리 케이스에 장식품처럼 앉아 있다 나를 보고 울부짖던 로리를 보고 마음이 미어지는듯했었다. 퍼그라 생김새가 귀엽고 아이가 얌전해 그쪽에 놔뒀는지 모르지만, 따져봐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사람 아이 맡기듯 잘 봐달라고 선물까지 하며 부탁까지 했는데...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워 그 이후로는 애견 호텔에 절대로 맡기지 않는다. 물론 지금까지 강아지들은 식구들이 짬을 내서라도 맡도록 하고 있다.


 부산에서 저녁 배를 타고 가는 일정이라 12시에 부산으로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실는다. 여행 때마다 스스로에게 각성시키듯 어떤 계기를 품지만, 이번에는 결심을 실천하는 여행 되길 바라본다. 두 가지만 생각하자. 해야 할 것들을 구체화시키고 올해 실행 가능한 목표를 재 점검하는 것으로...


 오후 4시 부산 도착, 휴게소를 한 번밖에 들르지 않아 빨리 왔다. 언제 승선할지 모르지만, 아마도  기다려야 할 듯하다. 아침에 아버지께서도 배 타고 대마도를 한번 오시고 싶었다는 말씀을 하셔서, 모시고 왔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도 들었지만 동료들과 가는 여행이라 아무래도 힘들다 싶었다. 올 가을에라도 한번 모시고 다녀올까 생각해 본다. 오후 6시 반에 승선하니, 결국 길에서 하루를 보내는 꼴이다.


 약국에선 물약과 알약으로 된 멀미약을 판다. 배 터미널 약사는 멀미약 판매로 돈을 많이 버는 것 같다. 마치 이런 맛에 약사를 하려는가 싶도록 대부분 사야 하니, 예외가 없다. 그가 주는 멀미약을 먹어야 한다. 나는 알약만 샀다. 물약을 사지 않았다. 거의 협박에 가까운 표현으로 "두 가지 다 먹지 않고 나중에 멀미했다고 딴 말하지 말라"라고 말한다. 이리저리 볼 것도 없고 두 시간 반 동안을 보내려니 시간이 아깝다.


 하기야 이것도 여행의 한 과정이다. 배를 타고 멀리 가는 건 처음이니 멀미공포증 있는 내가 멀미약 먹지 않고도 오늘 밤바다 보면서 잘 가게 되기를 바라보지만... 멀미약에 쓰인 주의 사항 문구를 자세히 읽어 본다면 보면 누구라도 멀미약 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을 거다. 줄이 줄어든다.

드디어 승선, 우리 배는 하나미호 일본 배이며 선장도 일본 사람이다. 가이드는 홍** 씨 대한민국 2000만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름이란다. 배 타고 웃고 즐겁게 여행하라는 소리로 들었다. 내 방은 211호, 침대는 작년 독일 출장 시 탔던 유로스타 일인실보다는 약간 크다. 샤워실도 있고.. 다만 커튼을 제쳐보니 큰 통이 가려져있고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이라 계속 열어두고 구경하긴 힘들겠다. 그래도 편안히 쉴 수 있게 되어 좋다. 멀미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쩔지 모르겠다.


 저녁은 뷔페식은 아니고 육개장이 나왔는데 잘 먹었다. C가 방으로 불러 가보니 작년 겨울에 직접 깎아 말린 반건시를 꺼내 놓는다. 정말 마른 곶감보다는 반건시가 훨씬 맛있다. 커다랗고 촉촉한 번 건시를 두 개나 먹었다. 식탐을 줄여야 하는데, 멀미 염려를 하면서도 먹는 것은 끓지를 못한다. C의 건강이 회복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같은 부위를 세 번이나 수술했다. 한국사람 삼세번이면 다 끝난다고 했으니, 세 번 수술했으니 깔끔하게 잘 회복될 것이라고 위로한다.

여러 부서 동료들이 골고루 했다. 자친 몸과 삶에 눈치 보는 마음들이 모두가 다 평안하고 쉼을 얻는 힐링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부터 그러기를 바란다. 며칠 동안이라도 일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밖을 바라보니 '서경 페리 호'라고 제주 가는 배가 보인다. 뒤로는 돌고래 사인? 이 보이는 건물 등 여러 건물도 보인다. 배가 약간씩 흔들린다.

드러누워 TV를 보고 있지만 예민한 육신은 울렁거리는 배를 느껴간다. 이보다 더 울렁거리면 멀미할 것 같아 걱정이다. 아무것도 않고 빨리 자는 게 낫겠다. 바깥을 내다보니 칠흑 같은 밤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액체 멀미약을 먹었어야 하는 건가, 차라리 좀 앉아보자.  큰 배라 요동이 없다고 장담하더니 그게 아니다. 오늘 비가 와서 파도가 심한 건가.


 바다는 그 오랜 세월 속에  인간 역사의 모든 애환을 받아들이고도 때론 집어삼키고도 여전하다. 아무 일도 없듯이 늘 새롭다. 바다는 언제나 당당하다. 바다는 언제나 나의 삶에 있었다. 물론 섬에서 태어나 늘 바다를 보며 바다에서 놀고 산 어린 시절 탓도 있을지 모르지만, 바다는 내 지난 삶을 고스란히 보고 먹고도 아무것도 모르는 듯 심연 속에 가둬둔다. 그리고 어떤 일이 펼쳐질지도 모르지만 때론 무기력한 삶에 적당한 파도로 선한 자극을 준다. 바라보고 있기만 해도 그립고 좋은 친구 같다.



2015.04.20

 5시 반에 기상. 바다는 파란 여명을 쑴 꾸는듯하다. 빗방울도 잦아들고, 바닥에 깔린 엔진 소리만 아니면 가는지도 모를 만큼 조용하다. 비가 내리지 않아 갑판을 한 바퀴 돌아본다. 신기하게 비린내가 나질 않는다. 깨끗이 청소해 그런가.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항구에서는 바닷냄새라 불리는 비린내가 많이 나는데 다녀본 여러 항구도시에선 그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혹자는 깨끗이 청소했기 때문이라는데 눈에 보이는 항구모습은 그래 보이지 않았지만 냄새는 적었다. 때론 바닷가에 왔으니 비린내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합리화도 시켰지만 유독 우리 항구에선 냄새가 강해 의문점도 품었었다. 요샌 어떤지 모르겠다. 항구도 못 가본 지도 몇 해 된 듯하다.


 간단한 아침식사 후 배안의 면세점을 구경했다. 바닷가라 그런지 복어 기념품이 많다. 복어 껍질로 만든 장식품이 인상적이다. "니혼고노 데스까?" '아니 내가 어딜 봐서 일본 사람 같아 보이냐?' 하려다, 유럽에 가면 일본인이냐는 소리도 많이 들었으니, 고만고만해 너무나 동양인처럼 생겼나 보다.


 이른 아침 배는 시모노세키항에 도착해 버스로 이동한다. 첫 일정은 간린코 호수를 품은 봄이 살아있는 유후인이다. 천연 화산 호수가 있고, 일본 여성들이 가장 여행하고 싶어 하는 곳이며 최근에는 한국인을 상대로 홍보 마케팅을 많이 해 한국어로 된 상점도 많은 곳이며 아기자기하게 볼 것도 많으며 예쁜 곳이다. 유명한 음식은 크로켓과 롤케이크이라는데 전통 일본 일본답지는 않다.


 시모노세키 간몬교는 일본 4대 섬인 혼슈 야마구치현과 규수를 잇는 다리로 간몬해협의 1067미터의 해저터널인 간몬터널의 혼잡을 나눌 목적으로 1978년 개통한 현수교다. 어쩐지 부산의 영도다리를 추억케 하는 다리다. 일본 열 도는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라 다리를 놓는 기술이 오래전부터 발달해 온 듯하다. 부산 영도에 있는 영도대교 (부산대교)는 일제 강점시절인 1931년 지은 도개교로 우리나라 유일의 도개교로 아직도 한 번씩 역할을 하고 있다.


 단체 여행을 할 때면 느끼는 점이지만 가이드는 아무나 못하는 거다. 지역의 역사와 개인철학을 사람들의 공감을 얻도록 잘 버무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할 수 있다. 현지에 사는 분들도 있지만, 유학 와서 공부하다 가이드로 직업을 전환해서 사는 분들도 많다. 타국에서 사는 것이 '어찌 쉽기만 하랴마'는 돌아올 수 없는 형편에 있는 분들의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예전에는 직업으로 하시는 분이나 부업으로 분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코로나를 겪으면서 많이 달라져 예전 같지는 않다고 한다. 물론 그만두시는 분들도 많고... 세상이 달라졌으니 변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단체여행비도 많이 오른 것을 보면 살기가 더 힘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2023년 08월 18)


 차 타고 가는 내내 높고 커다란 나무들이 울창하게 숲을 채우고 있었다. 숲은 대부분 삼나무 숲이었다. 우리나라에선 보기 드문 풍경으로 마치 북유럽의 삼림을 보는 느낌이었다. 일본은 인공림이 자연림보다 4배나 많다고 한다. 세계대전에서 폭망 한 후 부지런히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현재보다는 미래에 가치를 두고 하는 일이다. 나라가 초토 화 되었음에도 미래를 생각할 수 있었던 믿음과 용기는 칭찬하고 싶었다.


 호주나 남미의 열대 숲은 하늘에서 내려준 축복이라 할 수 있지만, 섬나라 일본의 빽빽한 산림이 저들 스스로 개간하여 심은 나무들로 우거진 것이라니 머리가 띵한 느낌이 든다.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국토의 60% 이상이 산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도 조림 사업을 부지런히 해야 하지 않을까. 예전에는 식목일날 나무도 심었는데 요즘은 식목일의 개념조차 퇴색되어 가는 것 같아 아쉽다.


 삼나무는 학명에도 있듯이 Cryptomeria japonica D.Don. 일본 원산의 상록수다. 높고 곧게 올라가 삼나무숲은 보기에도 멋지다. 잘 자라기 때문에 조림사업으로 심고 방풍림으로도 많이 심는다. 제주도의 귤밭방풍림으로 심기도 한다. 일본에 나무가 풍부한 이유는 경제림으로 정책적으로 조림 사업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무를 베어낸 곳엔 계획 조림을 한다. 일본의 일본 삼나무와 편백나무, 그리고 대나무를 팔면 일본 국민들이 아무 일도 안 해도 10년은 먹고 산다고 하니 나무가 얼마나 많은지 상상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비해 자원도 풍부한 나라지만, 미래를 위해 열심히 저축한 셈이다.


 일전에 호주를 방문했을 때 큰 공장에서 연료로 벙커시유를 사용하지 않고 석탄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풍부한 천연자원은 미래에서 빌려온 것이기에 자신들은 마음대로 쓸 수가 없다고 했다. 개발할 수 있는 것도 일부러 개발하지 않고 감춰둔다고나 할까...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서

보이는 곳마다,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어 보이는 곳마다 개발에 열을 올리는 우리는 후손을 위해 뭘 저축을 해야 할지, 미래를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이제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역 간의 이익에 너무 신경을 써서 지역마다 비슷한 관광개발로 이어지는 모습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일본은 신도, 불교, 기독교 등 국교가 정해져 있지 않은 다종교의 나라다. 일본 신도는 자연과 만물에 정령이 있다고 의미를 두는 원시신앙인 애니미즘(Animism)과 특정한 사물에 의미를 두고 신격화하는 토테미즘(Totemism) 사상이 혼재하고 있다. 등록되어 있는 잡신만도 1750개라고 하니 얼마나 많은 신들이 그들의 삶에 함께 존재하고 있는지 말해준다. 어느 집이나 상점에서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고양이 인형은 재물과 복을 가져다준다는 고양이신 마네키다. 나라는 부자지만, 국민은 가난하다는 소박한 일본인들의 삶은 그들의 신앙과 생활의 의 곳곳에서도 묻어난다. 유한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신은 벗이요 이웃이요 가족처럼 여겨져 보이는 무엇으로든 형상화시켰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새롭게 들은 이야기, 일본은 딱히 국화(國花)가 없는 나라라 한다. 당연히 일본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벚꽃이 아닐까 싶었는데, 황실에서 사용하는 국화를 국화로 여기고 있을 뿐... 황실가문의 상징에서 사용하는 모든 문장, 훈장, 심지어 여권, 국회의원의 배지 및 대부분의 장식에 국화 문장을 쓰고 있다. 영국의 국화가 장미인 것이 30여 년 동안 왕권쟁탈전으로 유명했던 장미전쟁에서 승리한 랭카스 가문의 헨리 7세가 왕위를 차지하면서 영국의 국화가 장미로 된 것처럼 언젠가는 일본 국화도 국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벚꽃은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전해 진 것이라고 한다. 사무라이가 집 앞마당에 심었는데.. 한 열흘 만개하다가 확 져버리니 마치 한순간에 사라져 가는 자신들, 사무라이 같다고 많이 심었다고 한다. "꽃은 벚꽃이요 사람은 무사"라는 일본 속담이 있는 것처럼 한 번에 화려하게 피었다가 지는 벚꽃의 특성이 주군을 위해 사는 사무라이의 삶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서일까.

여러 해 전 도쿄 우에노 공원에서 점심시간에 커다란 벚꽃 나무아래 젊은 직장인들이 모여 도시락을 먹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았다. 요즘에야 우리도 공원에서 자 혹은 둘이서 포장해 온 음식을 먹는 모습에 익숙하지만, 그때는 식당에서만 밥을 먹을 수 있는 줄 알았던 때라 지는 꽃잎을 보며 가는 봄을 한껏 누리는 모습이 하루하루 소박하게 즐기며 사는 것을 삶이라 여기는 일본인들의 생활정서 같아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저녁이 돼서야 벳부 온천 쪽으로 왔다. 군데군데 유황 연기를 뽑아내고 그 김으로 익힌 계란, 고구마 옥수수를 먹고 40도는 족히 됨 듯한 온천물로 족욕을 20분 정도 했더니 온몸의 피로가 다 풀리는 것 같았다.


 온천이 큰 호텔에서 짐을 풀고 저녁은 과식하고 만다. 품위라곤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먹지 않았나 싶다. 다행히도 일본 음식은 우리들에게 잘 맞는 편이다.

역시 일본이라 낡고 오래된 집의 조그만 땅도 놀리지 않고 이것저것 아름답게 가꾸었다.  일본에 올 때마다 느끼지만 일본 사람들은 정원을 참 잘 가꾼다. 한 평도 안 되는 대문 앞 땅에도 꽃과 나무를 심는다. 아름답게 운치 있고 가끔 서글프게 보이기도 한다.

일본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어도 이사를 안 가는 편이라고 한 가마도 지옥 온천장 아들의 말이 기억난다. 지진이 많고 천재지변이 많은 나라에 사는 사람들답게, 어차피 칩은 무너지게 마련이니 어딜 가도 큰 차이 없다는 의미, 거주하는 자신의 생각이 더 중요하다는 표현이 아닐까...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와 철학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가꾸는데서도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 마당은 넓고도 넓으니, 더 정성스럽게 가꿔야 하지 않을까 다짐도 해 본다.


벳부 역 쪽 마트에 가기 위해 저녁식사 후 나왔다. 동네가 낯설지 않다. 유럽이 몇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방문한다 해도 낯설지 않은 것은 모든 것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하루만 지나도 변해어 버리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얘들은 아직 세일라복 입고 있다. 우리의 역사와 전통은 무엇인가? 우리 부모세대와 아이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일본 기행기에 언급한 적도 있지만, 부모세대와 자식 세대에서 분명히 끓어지지 않고 이어가는 공통분모가 있다. 우선 아이들의 교복이다. 부모세대에 있던 것들이 지금 자녀세대에도 있으니, 말할 수 있는 공통주제가 있다. 어쩌면 유행과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먹고사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개인적으론 그런 점이 부럽다. 지난겨울(2022년) 교토 여행 때 방문했던 이노다 커피숍에서 나이 지긋하신 분들과 청년들이 차를 마시던 모습은 참 인상적이었다. 커피숍을 꾸미고 있는 영화 속에서나 나올 듯 한 고풍스러운 장식들이나 커피잔까지도 잘 어울리는 분위기, 그게 교토의 느낌이었다.


 에브리데이 마켓에서 이것저것 산 뒤에 나오니 벌써 어두워졌다. 호텔에서 멀지 않은 길이었길래, 골목길을 더듬어 찾아왔다. 골목길을 걸어오는데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났다. 아마 부산은 많이 바뀌었으리라. 어쩌면 예전 모습이 하나도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일본은 그대로 있다. 더군다나 여기는 변방이라 그런지 더 그렇다. 그러니 일본에  오면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골목도 우리처럼 환하지 않다. 그래도 범죄 없다고 안심하라고 하니... 나의 기억 속에 있는 예전 부산과 일본은 닮아있다. 예전엔 부산사람들이 일본을 많이 왔다 갔다 했고.. 일제 강점기부터 일본의 여러 잔재들이 부산에는 많이 남아있었다. 벚꽃 꽃피는 봄에 용두산공원에서 어머니께서 나를 안고 찍은 사진이 남아있다. 어머니의 그 모습이 또렷하게 지금 이 밤, 일본 이 골목길에서 보이니 이번 여행도 헛되진 않다.


온천하고 올라오니 시원하고 개운하다. 아까 지옥온천에서 온천수를 받아왔는데 맛이 짭짤하다. 일 생각 안 하고 온천 즐기면서 놀았는데.. 저녁 되니 슬쩍 고개를 든다. 습관이다. 종속되어 사는 습관.. 그리고 미리 생각하는 염려... 잘해야만 한다는 교육이 낳은 지병이다. 다행히도 점차 나아지고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지만...

'내일은 또다시 내일의 해가 뜰 거야' 스칼렛 오하라의 용기 어린 독백으로 피곤한 하루를 마감한다.


유후인 기린코 호수를 바라보며




p.s.  일신상의 이유로 당분간 브런치 활동을 쉬어야 할 것 같아 구독 작가님들께 아쉬움과 죄송함을 알려드립니다. 속히 찾아뵙게 되기를 스스로도 기도합니다.

~ 2023년 8월 22일 opera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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