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옆 향나무 뒤쪽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앵두나무에는 빨간 앵두가 버겁도록 많이 달린다. 귀퉁이에 있어 거름 한번 제대로 준 적 없지만, 작은 몸뚱이에 어찌 그리 조랑조랑 맺히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제 몸이 부대낄 정도로 많이 달리니 앵두 크기가 작은 것이 많다. 그래도 이 앵두나무는 시골로 내려오며 처음 심은 관록 있는 녀석이라 묘하게 정이 든 나무다.
평생 처음으로 땅을 밟고 살게 된 기쁨에 작은 소나무 네 그루와, 앵두나무, 호두나무, 감나무를 심었는데 호두나무는 여러 해 전에 죽어 뽑아버렸고, 감나무는 재작년엔 제법 달려 맛을 보여주더니 작년엔 온통 벌레가 꼬여 몸뚱이만 남기고 홀랑 베어버렸다. 가을이면 빨갛게 익어가는 정겨운 열매로만 생각했는데 열매를 제대로 맺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와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기적으로 농약도 주며...
마당 생명들에게 약 치는 것이 싫어, 관상수 위주의 꽃나무를 키웠지만, 웬걸, 살다 보니 꽃나무에도 벌레가 많이 꼬인다. 환경의 변화로 인간세상에도 새로운 병들이 생기는 것처럼, 식물의 세계도 다르지 않다. 해마다 꼬이는 벌레도 각양각색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약을 치지 않고 버티고 있다. 주변 이웃들을 보면 거름도 많이 주고 약도 쳐주며 관리해, 유실수가 제 능력을 십 분 발휘하는 것 같다만, 아직까지 우리 마당 식물들에겐 약치유는 하지 않았다. 올여름은 유난히 덥다 하니, 벌레가 얼마나 더 꼬일진 모르지만 그건 그때 가봐 결정할 일이다.
상황이 녹록지 않았어도 굳세게 버티어 온 앵두나무기에 작년에 뽑아버리려다, 대신 가지치기를 했다. 올해는 작은 몸이 더 날렵해져 버렸지만, 꽃도 폈고 자세히 보니 자그마한 앵두가 파랗게 맺혀있다. 아직까지 붉은빛이 돌지도 않지만, 올해도 분명히 제 몫을 해 줄 기특하고 고마운 아이들이다.
빨갛게 잘 익은 앵두는 따는 재미도 먹는 재미도 있다. 알알이 달려있는 앵두는 하나씩 손길을 줘야만 딸 수 있다. 한 줌 따선 수돗가로 가, 헹궈 한입에 털어 넣은 후 오물거리며 씨앗을 뱉는다. 제 몸만 한 씨를 품고 있다. 마당 곳곳에 있는 꽃 하나 나무 잎하나, 풀 하나에 이르기까지 표현할 수 없는 신비가 가득한 자연 속 생명의 향연이지만, 손가락 한마디보다 작은 몸뚱이 속에 제 덩치만 한 씨앗을 품고 익어가는 것을 보면 숙연해지기도 한다.
누구로 흉내내기 어려운 생명의 신비와 위대함에...
앵두도 분명한 과일이지만, 다른 여러 과일나무에 비해 발전? 진보? 하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으리라. 먼저는 경제적인 가치가 적기 때문일 것이다. 사과 복숭아 등의 과실수처럼 부가가치가 있었다면 벌써 종자개량을 했겠지만, 그렇지 않고 늘 한결같은 데는 돈이 안 되는 과실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체리에 밀리고 만 것일까?
주전부리 부족했던 시절의 추억을 생각하며 한 움큼 입에 털어 넣었던 앵두는, 지금도 그렇게 제 개성을 지켜가고 있다. 경제성과는 이미 담을 쌓은 마당생활이기에 당연히 그 개성은 존중받는다.
가지를 많이 쳐내 올해는 앵두가 적게 달리겠지만, 그래도 앵두는 제 몫을 다해 줄 것이다.
우리 집엔 또 다른 앵두도 있다. 이 앵두는 알알이 맺히는 생산성 있는 앵두가 아니라, 사방팔방 온 마당을 휘젓고 다니는 길냥이 앵두다. 작년 2월 지금은 떠나버린 삼색이가 낳은 다섯 마리 중의 한 녀석이다.
제일 부실했고 눈도 시원찮아 아기 때 안약을 달고 살았다. 오른쪽 눈을 크게 뜨지 못해 제쳐 올려보고서야 안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어린 아기냥이들의 이름을 지어 줄 때, 이 녀석을 왜 앵두라 부르게 되었는지...
아마도 너무 작고 약해 살까 싶어서? 굳세게 살아 나가는 앵두나무처럼 되라고 앵두로 지었는지 모르겠다.
냥이 앵두는 아직까지 오른쪽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한다. 아기냥이 시절엔 눈약을 계속 넣어 줬는데, 낫지도 않고 이제는 그냥 두고 본다. 식구들을 보면서 가끔씩 제 기분 좋을 때는 양쪽을 올려 뜨는데, 눈 안은 멀쩡한 것 같다. 한쪽 눈을 가지고도 앵두는 집냥이처럼 집 잘 지키고 온 마당 구석구석, 동네까지 누비면서 지낸다.
우리 길냥이들은 근친상간으로 태어나 어딘가 한 군데씩은 부실하다. 다른 고양이들은 길고 화려한 꼬리를 달고 있는데, 우리 냥이들은 유독 꼬리가 뭉툭하고 말려있어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고양이들이 그렇다"라고 나와있었다. 우리 집의 길냥이 네 녀석들의 꼬리는 모두 그렇다. 거기에 앵두는 한쪽 눈까지 시원찮으니 영락없는 부실이다. 그래도 제 난바 후회하지 않고 충실하게 삶을 즐기는 것 같다.
이른 저녁을 잘 먹고 나서 테크에 편히 드러누워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저녁 하늘아래 솔바람 쐬고 있는 모습을, 부엌 창으로 바라보면 "너야말로 안빈낙도하는 "냥 선비"의 모습 그대로구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저를 보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여유롭게 드러누워 쉬는 앵두의 욕심 없고 평안한 에너지가 전달되어 온다.
자연 세상에서는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요즘 장미가 제철이다. 지금을 위해 태어난 듯, 아침이면 여기저기서 방긋 웃으며 그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고 있다. 커다란 함박꽃 같은 화려한 녀석이 있는가 하면, 한쪽엔 그보다 쳐져 보이는 작은 아이들도 많다. 색도 더 진한 아이가 있으면, 조금 모자라고 빠져 보이는 것들도 있다.
어제 아침에 화들짝 피어 반가웠는데, 옆에 보면 벌써 데드헤딩을 기다리는 녀석들도 많다. 한 그루의 나무, 한 송이의 꽃에도 같은 모습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매일이 새로운 모습으로 펼쳐지는 것이 마당 있는 집의 풍경이다.
앵두나무는 조금 쳐지고 빠져 보이는 아이다. 열매로도, 꽃으로도 그러하다. 길냥이 앵두도 흰둥이들에 비해선 외모도 빠지고 한쪽으로 보는 세상에 어설퍼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그렇기에 마당의 두 앵두는 모자란 매력으로 정을 주고 강인한 생명력을 나눠주는 좋은 친구가 아닐까 싶다.
앵두와 별이, 별이 역시 몽둥이 꼬리다.
뜨거운 계절이 문을 두드리고 있는 요즘 정원의 소식도 올려봅니다.
올해는 꽃을 보여주마, 단단히 결심하고 부지런히 꽃대를 올려가는 램즈이어
여름을 몰고 오는 나리꽃이 절정인 정원의 한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