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차 안에서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옛 노래가 흘러나온다. 살짝 씁쓸한 웃음이 머금어지며, 공감 가는 것은 왜일까? 처절한 바보처럼 산 것은 아니더라도, 그리 산 면도 없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서일까?
저 멀리 도로옆 강이 보인다.
비상등을 켜고 강가 한적한 곳으로 차를 세운다.
평소엔 지긋하게 바라봐주던 윤슬조차, 날 선 고기비늘처럼 바쁘게 움직이며 뭔가 찾기라도 하듯 헤매는 햇살 뜨거운 날, 땡볕에 세운 차에서 시원한 에어컨을 틀며 잠시 여유를 부려본다.
공회전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바보처럼 살았군요"노래 탓이라 할 순 없지만 바로 지금 차를 세우고, 뭔가를 쓰고 싶었다.
오늘은 마침 장날이었다.
아침 관수를 하다 문득, 뜨거운 햇살아래서도 제 존재를 과감히 펼쳐나가는 덩굴장미가 기특해 지줏대를 보강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고 튼튼한 고춧대(둥근 지주봉)를 사러 장에 나왔다.
장에 나와 본 지도 오래되어 구경도 할 겸 왔지만, 날이 너무 더워 가을장처럼 사람들이 북적이진 않았다. 농약사에 들러 원하는 지줏대를 사서 차에 실은 후, 가격도 친절한 M커피숍에서 아이스라테 한잔을 주문한 뒤, 기다릴 겸 시장통으로 가 한 바퀴 둘러봤다. 장날 시장 구경을 나온 여행객들을 제외하면,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대부분 지긋한 어르신 들이다. 우리나라 시골 마을 어디나 대부분 비슷한 풍경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미래이기도 하고...
5천 원을 주고 오이 10개를 산 후 (올해 텃밭 농사는 토마토를 제외하곤 건진 것이 없었다), 커피숍으로 왔다. 원하는 물건도 사고, 아이스라테도 마시니 소소한 행복으로 아침기분까지 상쾌했다.
돌아오는 길에 반짝이는 윤슬들의 합창이 한창인 강가를 만나니 갑자기 차를 세우고, 마음을 읽고 싶어진 것이다.
브런치를 시작한 지도 4년이 훌쩍 넘었다.
잘 쓰지도 못하지만, 열정이 있었기에 열심히 썼다. 브런치는 내게 작가로서의 감춰진 역량을 발휘하게 한 터전이라기보다는, 쓰고 싶었던 욕구를 발산하게 해 준 터전이었다. 그러니 훨씬 고맙고 양분 깊은 땅이었던 것이다. 브런치 작가님들 대부분 그동안 품고 있던 각자의 "무언가"가 있었기에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열정과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정말 우연한 기회에 브런치를 만났고 시작하게 되었다.
브런치의 고마움을 작가분들은 잘 알 것이다. 나도 그 고마운 혜택을 입은 사람 중 하나다. 많은 분들이 졸작을 읽고 구독하고 사랑해 주신다. 애당초 나의 글쓰기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를 주는 것이 목표였고, 목적이었다. 글도 제법 모여 부크크에서 책도 냈다.
찾는 이가 많던 적든 상관없이 무엇에 홀린 듯이 쓰고 그렸고 글을 품고 살았다. 매진하고 계발해야, 성장하는 것임에도 그 부분에선 부족했다 싶다.
이웃 작가님들이 구독자수도 늘고 출간 의뢰의 감사함을 표현하는 글들을 올릴 때도, 일편단심 민들레처럼 별 변동 없는 나의 브런치는 부럽기도 했지만 꿋꿋했다. 마치 머무를 수 없는 순간들이 아쉽기라도 하듯, 늘 제 자리에서 자리만 지키고 있는 브런치작가였던 것 같았다.
그러다 올해는 여러 일이 겹쳐지며 글도 제대로 못쓰는 형편이 되었다. 능력 있는 글쟁이도 아닌 사람이 출석도 제대로 못하니, 성적이 떨어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며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었는데, 잠시 쉬어가는 마당에서 또 다른 여유를 만나게 되었다. 시간도 흐르고 작가로서의 능력은 크게 성장하지 못했을지 몰라도, 글을 쓰면서 용기를 얻고 위로받으며 자라고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윤슬이 조용하게 움직일 때나, 햇살아래 살아있는 한 마리 물고기 되어 강을 온통 헤집어 놓을 때나, 언제라도 강은 받아주고 담아내고 있었던 것처럼, 그동안 글을 쓰며 되돌아보았던 편린들이 속 깊은 곳에서는 한 번씩 정화된 삶으로 다시 시작하고 에너지를 분출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글은 기다려 주지 않지, 않는다. 언제나 기다려 준다. 그 어떤 존재가 나만을 위해 오롯이 존재해 주겠는가?
오직 글친구만이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품어준다.
그리 생각하니 주저앉아 있던 용기가 다시 꿈틀거린다. 공회전이 정말 미안해질 때쯤, 아이스라테를 한잔 마신 후, 차로로 진입한다.
우리 마을에선 새롭게 마을을 정비하느라, 도로변 수 십 년 된 벚나무들을 모두 베어냈다. 아름드리 안기도 힘든 몸뚱이의 벚나무들은 해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워 사람들을 불러 모았던 멋진 나무였지만, 하루아침에 세상을 등진, 그저 터럭진 존재로만 남게 된 것이다.
길가에 늘어선 그루터기들을 보니 마음이 아리다.
이 그루터기들은 누가 더 굵었었는지 자랑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지난날 살아있을 때 활짝 꽃 피웠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고 행복했던 추억만 가지고 갔을 것이다.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꽃을 보고 행복해하는 것처럼 쓰는 자신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고 읽는 누군가에게 잠시라도 용기와 위로를 줄 수 있다면, 조금 부족한 글이라도 제 몫을 하지 않을까 싶다. 혹 나와 같은 당신이 있다면, 언제라도 기다려주고 힘이 되어 줄 글쓰기 친구를 다시 찾기 바란다.
폭염은 사람에게만 괴로운 것이 아니다. 마당 정원의 온갖 화목(花木)들도 괴롭긴 마찬가지다. 이른 아침의 관수는 생명줄과도 같다. 수국은 관수가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 듯, 뜨거운 날씨에도 크고 영롱한 꽃을 한창한창 피운다.
얼마나 고마운가!
배롱나무도 장미도 모든 화목들이 고맙기는 마찬가지다. 내세우지 않고 제자리에서, 봐주던 봐주지 않던, 언제나 지키고 기다리며 제 몫을 묵묵히 해내는 정원의 식구들도 글쓰기와 같다.
폭염 속에서도 시원한 용기와 가을을 기대케 하는 벗들이 있어, 시골살이가 외롭지만은 않은 아침이다.
폭염 속에서도 씨앗을 익혀가는 모란
라임 수국이 되어버린 아나벨 수국 /
붉은 아기배롱나무와 숙근버베나
각각의 모습으로 한창인 목수국 정원
그루터기만 남은 벚나무 / 오늘 산 지줏대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