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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by opera

이른 아침 현관문을 열면 여지없이 세 녀석들이 아앙~야앙~ 거리며 아침인사를 하고 있다. 바람기 많은 솜이조차 요샌 아침인사를 거르지 않는다. 솜이는 듬직한 아비답게 더운 여름철 몇 번 며칠이고 외박을 해, "이 녀석도 어디론가 사라졌나 보다~" 할 만하면 여기저기 상처가 나서 들어오곤 했는데, 가을 들어서는 집에 얌전히 기거하고 있다.

앵두는 집 지키는 냥이고 야옹 소리를 제대로도 내지 못하는 병(?)이 있다. 벙어리는 아니지만, 야옹거리지 않고 그냥 신음소리 같은 작은 소리만 낼뿐이다. 간식도 안 먹고 오로지 사료만 열심히 먹는다. 그럼에도 살이 쪄 묵직하다. 살은 쪘지만 고양이는 고양이라 내 앞에서 커다란 나비를 잡아먹기도 했다. 어찌 보면 고양이의 특성을 가장 잘 지니고 있는 아이가 앵두다. 아기 때 젖병으로 우유 먹이고 눈약 넣어주며 보살펴줘 그런지 녀석은 나를 제 어미로 아는 듯, 곁에서 함께 걷고 보기만 하면 옆에 와선 드러눕는다.

별이는 애교도 많고 맛있는 것에 대한 식탐이 크다. 마치 실내에서 키운 냥이처럼 사람 성격을 잘 알고 다가오는 것 같다. 강아지들 주려 산 동결건조 황태칩과 간식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간식에 대한 욕심은 아비 솜이도 지지 않는다. 사료에 고기캔을 섞어주면 더 열심히 먹는 점도... 솜이와 별이는 비슷한 식성을 가지고 있지만, 앵두는 간식도 즐기지 않는 투박한 순정파다.

아무튼 세 녀석 모두 길냥이 몸매는 아닌 뚱뚱이들이다.


길냥이 하숙 몇 년째 던가?

정원 가꾸기 마음 가꾸기 그림일기의 첫 주인공이었던 깜냥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2편의 주인공이었던 삼색이는 너무도 개성 있고 사랑스러운 주인공이었는데 작년 여름에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아이들이 사라진 데는 누군가가 있었던 것 같다.

길냥이들의 수명이 몇 년 안 된다고는 하지만, 얘들은 그 몇 년조차 채우지 못한 것이다. 보살펴주기까지 했건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

깜냥이와 삼색이는 형제였는데, 아기 때 함께 지내다 자라며 새끼를 가지게 되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된 것, 아니 사실 각자의 길이라고 할 것도 없다.

삼색이는 꾸준히 집에 붙어있었고, 깜냥이는 다른 곳으로 나가버렸다. 자유롭게 가고 싶은 대로 날아가는 영혼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제 영역을 찾아 다른 곳으로 갈 수밖에 없다.


깜냥이는 어디서 새끼를 낳았는지도 모르고, 삼색이는 작년에 새끼 낳고 정원 냥이 하우스에서 키우다 떠난 것이다.

여러 해 냥이들을 거두며 다진 생각은 앞으로는 더 거두지 않으리라... 그리고 절대로 암컷 냥이들은 거두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돌봐 준다고 해도 엄마가 되는 냥이들의 삶은 너무 힘들고 가혹하다. 특히 추운 계절엔 그들의 삶이 너무 힘들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계절에도 천수를 누리기는 아주 힘들다. 열악한 환경도 그렇지만, 인간과 공존해야 하는 삶에서 그들을 원치 않는 누군가들이 때론 그들의 운명을 조절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삼색이는 그런 경우인 것 같다. 올여름 떠난 호프도...


삼색이는 낳자마자 떠난 티코와 한 달 정도 살다 간 자몽이, 그리고 호프와 별이 앵두 다섯 마리를 낳았다. 세 녀석들은 어미와 같이 잘 살았는데, 여름에 삼색이가 갑자기 사라진 뒤로도 솜이와 호프, 별이, 앵두 네 녀석은 잘 지냈는데, 올 늦여름에 호프가 가버렸다. 어느 날 어디선가 기운 없는 야옹 소리가 들려보니 구석진 곳에 있던 집에서 드러누워 있었다. 꺼내보니 뭔가 잘못 먹은 것 같았다. 이미 어쩔 도리도 없었고 물을 먹여도 잘 먹지 않고 신음해 만져주니 좋아했다. 나중에 보니 없고, 저녁엔가 다시 곁에 와, 만져주고 이틀을 기운 없이 들락거리더니 영영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하루 이틀 버티기에 회복되길 바랐는데, 결국 녀석은 이기지 못하고 영원히 쉴 곳을 찾아 떠나버리고 만 듯했다. 좀 더 오래 만져주고 쓰다듬어주지 못한 것이 내내 맘에 걸렸다.

그래도 먼 여행 떠난 것으로 생각하라는 듯, 내 눈앞에서 가진 않아 고맙다고나 할까...

동네 뒷산 어디 구석엔가 깜냥이와 삼색이 그리고 자몽이, 티코(티코와 자몽이는 눈앞에서 떠나 산에 묻어 주었다), 호프는 정말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거리낌도 없이 사람눈치 안 보고 고양이 별의 주인으로 살 것이다.

다섯 마리 중에 남은 두 녀석 별이와 앵두, 그리고 아비 솜이... 세 녀석은 제 수명 다하며 좋은 세상 오래오래 누리고 떠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한 아침이다.


찬바람 불어오는 이즈음이면 삼색이도 깜냥이도 보고 싶다. 눈앞에서 고양이별로 떠나 버린 티코, 자몽이, 올여름 호프까지 무척 보고 싶다.

붉게 물들어가는 정원의 나뭇잎들, 누렇게 떠가는 백합잎, 구석구석 아직도 진한 향기를 메리골드, 백일홍 화려한 자태 속에서 여기저기 날아다니던 아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제는 고양이별에서 온갖 모양으로 춤추며 자유롭게 유영하는 아이들이 판타지속 악상으로 바람결에 나래를 펼쳐간다.

유독 스산한 선율의 오늘 새벽바람은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나의 노래로 실려 보내는 것이야~" 말하는 듯하다.

늦은 가을을 울리는 한 편의 노래된 아이들의 합창이 어제 떠났던 아침 해를 다시 불러들인다.



앵두와 별이 그리고 솜이

임신 중인 삼색이와 솜이의 평안했던 여름

호프와 앵두 별이 삼 형제가 정답게 식사 중

삼색이가 떠난 후 솜이와 세 녀석... 제일 위에 누워있는 냥이가 올여름에 떠난 호프

아침 후 오수를 즐기는 앵두와 별이

가을마당에서 다가오는 별이와 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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