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다양한 색과 빛 향기의 향연으로 올 한 해를 아름답게 펼쳐줬던 마당 생명의 흔적들을 거두었습니다.
깨져버린 육신의 흔적이 아쉬워 마지막 순간까지 바스러지는 낙엽과 떠날 수 없다며 마른 몸뚱이로라도 매달려 있는 수국 아이들. 아직도 제 향기를 풍기며 무성한 군락을 자랑하던 라벤더를 베어냅니다.
혹자는 여름이 지난 가을날의 정원. 겨울을 앞둔 그 모습이 어쩌면 정원의 본질이라고도 합니다.
속살이 감추임 없이 드러나기 때문일까요.
그래도 낙망치 않고 색깔 있는 희망과 나날의 정기로 풍성했던 정원은, 어느새 오브제만이 지켜주는 쇠락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다시 오는 계절을 준비합니다
마당의 생명들은 시간의 흐름을 감내하기 위한 준비를 목숨 바쳐하고 있습니다.
올해의 육신이 떠났을 뿐입니다.
혹독한 겨울이 떠나갈 즈음 고개 들고 인사할 생명의 씨앗들을 잉태하기 위해 육신을 해탈했을 뿐입니다.
지나 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아직도 헤쳐 나오자 못하고 있다면, 시간이 오기 전에 깨달았다 해도 당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한다면 작은 위로라도 될까요.
확실한 것은 누구라도 뭐라 말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그랬어도 그냥 지금처럼 이었을지 모르겠다는.."이라는 다소 무책임한 응답만을 볼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지금이라도 깨달았다면 앞으로의 날들은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무료한 기대감을 두려워할 뿐...
아니, 좀 더 거창하게 표현한다면 이렇게 지나가는 것이 인류라는 역사의 한 톱니바퀴의 일원에게 주어지는 당연한 운명 혹은 주어진 사명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는...
아무튼 그 모든 사연들을 뒤로하고,
오늘도 주어졌습니다
쟁취했다고는 감히 표현할 순 없지만, 열심히 후회는 하지 않도록 순간을 살아가라는 선물을 두 손에 가득 들고선.
정원친구는 칼바람을 품고서도 부드럽게 속삭입니다.
친구여!
시간이 흘러감에 따른 두려움과 무기력함을 겪고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했던 얘기는 결코 헛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고 겪어 온 역사라 공감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진즉 깨닫지 못했는지는 당신도 아쉬운 사실입니다만, 그게 우리네 생명 있는 것들의 삶이요, 사라져 갈 운명을 안고 태어난 생명들의 숙명입니다
그럼에도
친구여!
당신의 오늘은 어떤지요?
어떠한 꿈과 희망의 돛대를 세우고 오늘이라는 망망대해를 항해하시려는 지요.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지요.
시간은 붙잡을 수 없는 생명이지만, 그러기에 오늘을 만날 수 있는 순간을 선물 받은 당신이기에 이미 승리자입니다.
세상근심 벗 삼아 따사로운 햇살아래서 아침을 즐기고 있는 길냥이들의 모습에서 작은 위안을 얻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본다면 추할 수밖에 없는 이즈음의 정경情景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솔직한 따사로움이 뭉글뭉글 움트고 올라오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랄 수밖에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