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마당 냥이 대장 솜이는 야생의 기질을 버리지 않는 고양이다.
마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외치다 못해 몸에 걸치고 다니는 것 같다. 누구라도 보면 갈 곳 없어 쓰레기장을 뒤지는 불쌍한 고양이로 알 것이다. 비록 마당이긴 하지만, 버젓한 제 영역 제 집도 있고, 잘난(??) 아들냥이도 둘씩이나 둔 백수 가장이라는 것을 누가 알리요...
평소엔 아기들과 집 마당에서 돌아다니고 동네 여기저기를 다닐 뿐인데 가끔 어디론가 사라져 흔적도 없는 경우가 있다. 어디엔가 여자친구라도 만들어 둔 건지, 아니면 영역 확장을 위해 노력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한 번씩 나갔다 오면 어디서 지냈는지 초라한 몰골을 하고, 길게 외박하고 들어올 땐 군데군데 상처도 나고 영락없는 거지꼴이 되어 온다. 약 발라 주고 좀 괜찮아지면 또 나가곤 한다.
작년에도 몇 번 그렇게 들락거리더니 지난 연말엔 열흘이 넘도록 들어오지 않아 "솜이는 이제 떠났나 보다" 생각하고 마음 비우려는 찰나에 놀랍게도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솜이야 어디 갔었어" 다정하게 반겼는데, 어딘가 시원찮아 보였다. 절뚝거리며 다가오는데 자세히 보니 왼쪽 앞다리가 칼로 찢긴 것처럼 벌어져 상처가 크게 나있고 다리도 부어 있었다. 눈언저리에도 상처를 입었다. 설마 고양이들 간의 싸움에서 이 정도로 상처를 입었나 할 정도로 상처가 제법 커 보였다. 그런데 그 꼴에도 "나에게는 집이 있다. 돌아갈 곳이 있고, 치료해 줄 가족이 있다"라는 당당함이 보이는 듯했다.
얼마나 아팠는지 발을 잡고 약을 발라주는데도 바둥거리긴 해도 내빼지 않고 가만히 있다. 이삼일 약을 발라주며 보니, 벌어진 상처가 생각보다 심한 것 같다. 병원 데려가 주사라도 한 대 맞혀주고 싶었지만, 예전 삼색이 생각해 보니 그래선 안될 것 같았다.
삼색이가 새끼 낳고 감기가 심해져 강제로 케이지에 넣고 병원에 데려가 치료하고 온 적이 있는데, 이후 경계심이 심해져 새끼들을 데리고 들락거리다 결국 새끼들까지 감기에 들게 되어 냥이들이 고생한 것을 봤다.
길냥이를 케이지에 넣고 병원 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데려가 진료받고 온다 하더라도 이후의 관계는 헝클어지기 십상이다.
고양이는 고양이다. 간섭받기도 속박당하기도 싫어한다. 제 입장에서만 생각하니, 저를 위한 사람의 호의였지만 고양이의 뇌리엔 무섭고 아팠던 기억으로만 각인되는 것 같다. 경계심이 높아져 이전보다 거리를 둔다.
솜이는 삼색이만큼 가깝게 다가오지도 않았던 아이라 병원엔 안 데려가고 치료해 주기로 했다. 몸이 아파서인지 다행히 나가지 않고 마당 안 저희 집에 있다. 약만 발라주긴 부족할 듯 염려되었는데, 얼마 전 샐리 이빨 염증 때문에, 한 번 먹였다 토해 중단한 약이 생각났다. 선생님이 셀리한테는 "이 항생제가 안 받나 보다"라고 먹이지 말라고 했던 생각이 났다. "아 그것도 항생제가 들었으니 먹여보자~"싶었다.
밥을 먹고 나서 제 집에 들어갔을 때 고기에 약을 비벼서 주니 잘 먹는다. 강아지들은 맛을 기막히게 알지만, 고양이들은 잘 모른다. 비린 생선맛만 아는 것 같아 사흘 약을 먹이고 연고를 발라주니 다행히도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절뚝거리는 것도 덜하고 상처도 딱지가 생기고 아물어 갔다. 며칠이면 완전히 나을 것 같았다.
상처가 제법 많이 아물고 몸이 괜찮아지면 또 나갈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에 연연하진 않고 치료한다.
솜이는 자기 태어난 바대로 살다가 갈 것이다.
들어오면 돌봐주고... 나가면 안전하게 지내기를 바라고 자연의 날아다니는 것처럼 행복하게 솜이가 살았으면 좋겠다.
마당 싱크대밑에 놔줬던 집안에서 쉬고 있다. 밖에 있어 깔끔하진 않아도 손을 넣어보면 안은 아주 훈훈한 편이다. 새로 깔아준 바닥이불도 있고... 상처 입었어도 돌아다니고, 집에 와선 회복하면 또 나가고 몇 번씩 반복되는 솜이의 삶을 보면서 도전을 떠올린다.
가출이 솜이에겐 어떤 도전이고 또 밖에서 어떻게 응전하며 지낸 것일까..,
버티고 개척하며 살아온 삶, 짧지만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도전에 응전하며 그들의 생명을 이어 왔을까.
감히 존경하는 역사의 위대한 거장 토인비의 도전과 응전을 한낱 고양이의 거친 삶에서 떠올린다면 무례한 것일까?
아니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모여 이어지는 역사 그리고 주인공은 인간뿐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 움직이는 생명과 부동의 생명까지 함께 이뤄온 역사다.
솜이도 나도 사라져 가는 역사의 일부일뿐 아닌가...
추운 계절 주는 밥 먹고 집에서 따뜻하게 지낼 수 있지만 뭐가 아쉬워, 무엇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심이라도 한 듯 살아있는 동안 도전을 멈추지 않는 솜이의 용기를 배워야 하는 것일까.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길냥이들의 운명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험부담이 있다. 하루아침에 사라진 삼색이나, 호프를 봐도 그렇다. 솜이처럼 한 번씩 나가서 투쟁(?)을 하고 상처를 입어도 냥이들의 세상에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 위험하다. 다른 곳이 위험한 것이 아니다. 저희들끼리 싸우고 난리를 치면 시간이 가면 낫게 되고 자정이 된다. 그런데 사람이 개입하게 되면 돌아올 수 없는 세상으로 떠나간다.
영원한 꽃이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그러니 사람이 무섭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무서운 사람으로 살지 않아 다행이고, 새해엔 더 고마운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좀 낫다 싶었는데 솜이는 이틀 전엔가 다시 사라졌다.
다 낫고 나가든지 하지...
추운 날씨에 몸도 온전히 않아 안쓰러웠는데, 그 몸으로도 어딘가 다녀야 했었나 보다.
그런데 사흘 만에 어디 숯검댕 숲을 비비고 다녔는지, 온몸에 검댕이를 뒤집어쓰고는 다시 들어왔다.
솜이는 고양이다.
그의 천성이 이끄는 대로 날아다니는 후회 없는 삶을 사는, 아니 후회가 뭔지 용납되지 않는 천상 고양이다.
새해 벽두부터 제 운명을 개척하고 후회 없이 받아들이는 당당하고 멋진 고양이로 살고 싶은...
그러면서 따뜻한 방구석을 찾는 사람에게 말한다.
"새해엔 말처럼은 못하더라도, 저만큼이라도 움직이며 도전해 보세요"라고...
집안에서 빤히 쳐다보는 솜이 / 다리 상처가 좀 나았다
가출하고 다시 들어온 솜이, 몰골이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