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애와 사소한 의견 충돌로 부녀 사이에 싸늘한 냉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벌써 2개월 째다.
굳이 이유를 밝히자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서로의 자존심만 세우다 보니 남보다 못한 사이처럼 살고 있다. 다음 주에는 가족여행을 가기로 예약을 잡아 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서 가족이란 이름으로 함께 여행까지 간다는 건 너무 가식적이고 불편할 것만 같다.
마침, 어제는 함께 차를 타고 갈 일이 생겼다. 그 자리에서 아빠인 내가, 사과를 했다.
"네 입장을 생각하지도 않고 내 입장만 얘기해서 미안해."
딸은 웃으며 넘기는 듯했지만 이내 말투가 부드러워지고 엄마와의 대화도 경쾌해졌다.
아빠이고 어른인 입장에서 먼저 사과를 하는 것은 무척 고민되고 망설여지는 일이다. 그리고 문제의 발단도 그 이유를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양쪽 모두에게 잘못이 있었다. 아빠로서, 어른 입장에서 딸애를 훈계할 수도 있는 상황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잘못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딸에게 사과했다.
하루가 지난 오늘, 스스로 생각해 보건대 너무 잘한 일이고 자존심을 떠나 어른스럽게 행동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성인이지만 아빠도 인간인지라 분명 실수할 수도 있다. 실수가 있다면 사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가족이라면 서로의 자존심을 세우는 일보다는 잘못을 사과하고 받아주는 것도 쉽게 하는 사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화해하기로 했다가 그 약속이 깨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양측 모두 용서하려는 마음의 준비는 하고 왔으나 용서받을 준비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찰스 윌리엄-
이번 일을 통해 부모 자식을 넘어 인간관계에서 용서를 청하는 일과 용서하는 마음에 대해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아무리 친하고 오래된 친구사이에서도 어느 순간 멀어지는 때가 오기도 한다.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감정의 골을 만들고 어느 순간 터져버리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어쩌면 너무 친한 사이여서 그때그때 말하고 풀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었을까. 그냥 무심히 넘겨 버리고 한쪽에서는 속으로 삭혀버리고 마는 그런 경우 말이다. 우리 사이에 뭐 그런 것 가지고 그러나 하면서.
하지만, 친한 사이일수록 용서하고 용서받는 것이 자연스러워야 하지 않을까.
관계가 틀어지는 순간은,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고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찰스 윌리엄의 말처럼 용서를 할 마음은 있으나 용서받을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용서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용서를 해줄 때처럼 선뜻 나서지 못하고 주저주저하게 된다. 이렇게 고민만 하다가 용서받기를 멈춰버리멸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맞이하고 소중한 사람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좋은 관계가 오래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