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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민혜 Apr 20. 2021

꿈꾸는 아줌마

브런치를 시작한지 두 달이 되었다

나는 '다독'을 하는 편은 아니다. 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나는 '편독'을 한다.


책을 고를 때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으로 검색해서 그 작가의 책들을 주욱 읽는 식의 독서를 한다. 주 변에서 누군가 추천을 해 준다거나, 대형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책들을 읽을 경우, 그러니까 내가 잘 모르는 작가의 책을 보았을 때 생각지도 못 했던 '유레카'를 외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의 대부분 앞에 20~30분 정도를 읽다가 이내 책을 덮어 버린다. 그렇게 실망을 하고 나면 두 번 다시 그 책은 다시 펼치고 싶은 생각이 영 들지 않는다. 이건 그냥 내 취향이자, 성격이다. 


드라마를 볼 때도 나는 이런 식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드라마가 새로 시작한다고 하면 열 일 제쳐두고 본방을 사수한다. 좋아하는 작가의 드라마가 아닌데 어쩌다 우연히 접한 드라마가 너무 괜찮다고 생각된다면 바로 작가부터 검색해 본다. 처음 보는 작가라면 그의 지난 작품들도 함께 검색해 본다. 책도 그렇지만 드라마 역시 좋아하는 작가라고 해서 그의 모든 작품들이 다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어떨 때는 감동과 경탄이 끊이지 않는 걸작이 있는가 하면, 어떨 때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작품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기복 역시 그 작가만이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글'이라는 하나의 작품은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작품은 작가와 함께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작가 역시 독자와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사랑을 하고, 이별도 하며, 때로는 아프기도 하고, 나이도 들고, 가끔 슬프기도, 외롭기도 하고, 그러다가 행복할 때도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AI가 인간을 대신해 글을 쓰는 날이 올 수도 있다고 한다. 지금 그러한 연구와 시도들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AI가 쓰는 글은 '유기체'가 될 수 없다. AI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나 기복 없이 늘 한결같이 완벽한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정을 느끼지도, 나이가 들지도, 배가 고프거나 잠이 오지도 않는 AI가 그러한 모든 감정과 상황이 모두 반영되는 글들을 써낼 수는 없다.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오히려 그것을 철저하게 감추려고 노력했을지라도, 작가가 처한 상황이나 그에 따른 이러저러한 감정들은 알게 모르게 그가 쓴 글에 스며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믿고 보는 작가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매 번 그 작품들이 완벽하게 똑같이 내게 감동을 줄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내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여기는 작품도 다른 독자에게는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책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음악이든, 그것이 작품이 되고 나면 그에 대한 평가는 이제 독자(audience)의 몫이다. 




어느 날 운전을 하다가 라디오를 켰는데 마침 가수 '뮤지'와 개그우먼 '안영미'가 함께 진행하는 <두 시의 데이트>가 방송되고 있었다. 청취자와 즉석 전화 연결을 하고 퀴즈를 맞추는 코너가 진행되고 있었고, 한 여성과 전화 연결이 되었다. DJ들이 청취자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하자 그 여성은 자신을 '대기업을 다니다가 뜻 하는 바가 있어 그만 두고 현재 1년째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렇게 취업하기 어려운 시대에, 그것도 굴지의 대기업을 다니다가 자신의 꿈을 위해 스스로 회사를 그만둔 사람이라니, DJ들이 '혹시 그 꿈이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청취자는 잠시 망설이더니 '작곡'을 한다고 대답했다. 프로그램의 DJ인 '뮤지'가 작곡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뮤지션이기 때문에 청취자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1년재 준비를 하고 있는데 결과물은 어떠냐고 묻자 청취자는 '하면 할수록 스스로의 기준이 더 높아져서, 더 좋은 결과물을 내놓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아직 어떤 것도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뮤지'가 말했다.


"제가 한 가지 조언을 드리자면,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하지 마시고, '완성작'을 만드는 데 목표를 두세요, 대신, '완성작'이 많아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작품'은 듣는 사람이 판단하는 겁니다."


그 날 '뮤지'가 청취자에게 해 주었던 조언은 생각지도 못 한 부분에서 내게 큰 감동을 주었다. 나 역시 이 공간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많은 고민과 주저함이 있었다.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 내 마음에 들지 않은 글은 공개하고 싶지 않은 고집, 잘 되지 않을 때의 답답함, 그런 것들이 올가미가 되어 나를 옭아매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 시작할 때의 즐거움은 어느새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무엇을 써야 하나'에 대한 질문이 점차 집착이 되어 갔다. 내가 왜 글을 쓰고 있는지, 그 의미조차 퇴색되어 버렸다. 


이런 매너리즘에 빠져들 때마다 라디오에서 '뮤지'가 해 주었던 조언을 되새겨 본다. 내 마음에 드는 글이 아니라 완성작을 되도록 많이 만들자. 그것이 좋은 글인지 아닌지는 독자가 판단하도록 하자. 대신, 좋은 글을 쓰는 데에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좋은 작가'가 되자.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주르륵 검색해서 그의 책들만 집요하게 읽어가는 나처럼, 내가 쓴 글이라면 무조건 좋아해 주는 독자가 있는, 그런 작가가 되자. 꿈이 생각보다 더 커져버렸다. 


이 곳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할 무렵, 당시의 나는 설렘과 두려움과 기대가 한 데 섞여서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며칠을 보냈었다. 그 중에는 분명 '두려움'도 있었다. 그 당시 내가 가진 두려움에 대해 친구에게 이야기했을 때 그 친구가 말했다. 


"나는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고 믿어."


그랬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할 때 내게는 분명 '진심'이 있었다. 내가 왜 글을 쓰고자 하는지, 무엇을 쓰고 싶은지에 대한 내 나름의 확고한 비전과 그것을 담은 진심이 있었다. 진심을 다 해, 진심으로 글을 쓰자. 그거면 된다. 그렇게 한 글자씩 적어나가다 보면 언젠가 그 진심들이 모여 나를 '좋은 작가'로 만들어 줄 것이다. 설사 그렇게 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런 꿈이라도 꾸어보자. 나이 40이 넘은 평범한 아줌마가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이미 아름다운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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