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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민혜 Feb 24. 2021

브런치에서 마주한 불편함

매일 일기장에 혼자 글을 써오던 나에게 '브런치'는 마치 첫사랑 같은 느낌이었다.



작가 신청을 할까 말까 고민만 하다가 결정을 내리기까지도 1년 여의 시간이 걸렸다. 브런치 팀으로부터 작가가 되었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의 기쁨과 희열은 육아가 일상의 전부가 되어버린 나에게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그 날 이후로 나의 하루는 마치 난생처음 연애를 시작한 스무 살 여대생처럼 매일의 일상이 설렘으로 가득 찼다. 하루 종일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아무 일에도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친정 엄마에게 맡겨두고 노트북을 들고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이 마냥 즐거웠다. 내 안에서 글로 쓰여지기를 원하는 수많은 생각과 언어들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많이 써내고 싶어 나는 안달이 났다. 그렇게 브런치를 처음 만난 나에겐 분명 '기쁨'이라는 것이 있었다.



내 글은 그동안 일기장과 비공개 블로그에 적히는 것이 전부였다. 내게 '글쓰기'란 나를 어루만지는 행위였다. 상처 받고, 외롭고, 혹은 기쁘고 설렐 때 나는 글로써 그 모든 감정들을 표현했다. 때론 '배설' 행위이기도 했다. 소용돌이치는 감정과 생각들을 글로 적어내고 나면 어지럽기만 했던 모든 것들이 정리가 되고, 개운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글쓰기란, 내게 많은 의미를 가지는 소중한 작업이었다. 그런 내게, 이제는 글을 써서 나 혼자가 아닌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준다는 사실에 설렜다. 처음에는 분명히 그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 전혀 즐겁지가 않다. 



누군가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 브런치를 처음 시작할 때의 내 다짐이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어떤 글을 써야 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한 우리 아이들을 만나기까지의 일들을 써 보자. 쉽게 생각했다. 처음의 얼마 동안은 충분히 기쁘고 행복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글을 쓰고 나면 내 안이 텅텅 비어버린 것 같은 허탈함이 느껴졌다. 글을 쓰러 가는 길이 마치 연인을 만나러 가는 것처럼 마냥 즐겁고 설렜었는데, 이제는 그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급기야 오늘은 마치 그렇게 사랑했던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러 가는 날인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왜일까.  



이미 다 지나간 일이지만, 그것을 기억 속에서 꺼내어 글로 적기 시작하면 그때의 감정과 기억들이 온전히 현실이 돼 버린다. 그때 느꼈던 아픔과 외로움, 슬픔과 두려움이 '기억'이 아니라 '현실'이 되는 것이다. 글을 쓰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가슴이 아프고, 다 쓰고 나면 허탈해진다. 한 동안 그 우울함에서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다. 눈 앞에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나를 '엄마'라고 부르며 달려오는데 그 아이들을 얻기 위해 힘들었던 시절의 감정으로 아이들을 보는 것이 혼란스럽다. 



지금까지의 글들은 내가 쓰고 내가 읽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내가 쓴 글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읽힌다. 노래는 '듣는 사람'의 몫이고, 영화는 '보는 사람'의 몫이며, 글은 '읽는 사람'의 몫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이 들어주고, 많은 사람이 보아주고, 많은 사람이 읽어주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내 글의 의미가 '나'에게서 '타인들'로 옮겨가 버린 것이다. 



늘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다만 그럴 기회를 만나지 못했고, 그럴 자신도 없었다. 그런데 결국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럴 만한 그릇이 못 되는 사람이었다. 그냥 편하게, 즐겁게, 가볍게 쓰고, 즐길 수는 없는 걸까. 나는 왜 그런 것 하나조차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사람인 걸까. 이렇게 되는 것이 두려워 1년을 넘게 고민했었던 것 같다. 



써놓고 보니 결국 나는 독자에 대한 예의도 없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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