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곳이 있을 때만 여행이라 부른다

쿠알라룸푸르

by 옥민혜

웬만하면 밤에 도착하는 일정은 잡지 않는 편인데 안 그래도 늦은 시간에 비행기 연착에, 짐도 늦게 나오고, 공항 픽업 기사와의 소통 오류까지. 호텔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다 되었다.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1시가 넘었으니 아이들도 나도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첫 느낌은 한국과 너무나 비슷했다. 공항에서 도심까지 약 한 시간 정도. 인천공항에서 집에까지 가는 시간과 비슷했고,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도 마치 판교나 송도 같은 느낌이었다. 고층 빌딩들이 즐비하고, 건축 양식도 거의 비슷한. 6시간이나 날아왔는데 여전히 한국인 것 같은 오묘한 느낌.


어느 나라든 공항에 도착하면 나는 '냄새'로 타국을 인지한다. 그 나라 특유의 냄새. 나에게 타지를 느끼게 하는 첫 감각은 늘 후각이었다. 쿠알라룸푸르는 냄새마저 특별할 게 없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크로아티아에 갔을 때, 자그레브 공항에 도착했을 시간도 공항 업무가 거의 끝날 새벽 시간이었다. 안 그래도 낯선데 깜깜해서 보이는 것도 없으니 너무나 불안했다. 그때 공항 문을 나서자 어디선가 멀리서 '군밤' 냄새가 났다. 바람은 차고 보이는 건 어둠뿐이고, 우리를 데리러 오기로 했던 숙소 관계자와 연락도 닿지 않아 국제 미아가 되어버린 것 같은 두려움 속에서 맡은 '군밤' 냄새가 나의 경계심을 한 순간에 무너뜨렸다. 12시간이나 날아서 지구 반대편에 도착했는데 그 익숙한 냄새 하나로 완벽하게 무장해제 되어버린 그 순간. 그때부터 그곳은 더 이상 낯설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다. 이슬람권이라 히잡을 쓴 여자들이 많이 보인다는 것. 모두 영어를 쓸 줄 알지만 발음이 너무나 특이해 좀처럼 알아들을 수가 없다는 것이 두 번째 인상이었다.


냄새는 다음 날부터 본격적으로 나기 시작했다. 특유의 향신료 냄새. 남자들이 대부분 사용하는 향수 냄새. 어떤 음식을 먹어도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동일하게 나서 비위가 상했다. 식욕이 사라졌다. 그리고 첫날 밤늦게 도착한 여독이 좀처럼 풀리지 않아 다음날, 그다음 날까지 영향을 미쳤다.


날씨가 오락가락했다. 흐리다가 비가 오다가 햇볕이 쏟아질 때는 머리가 벗어질 만큼 뜨거웠다. 우리나라도 곧 장마가 사라지고 이런 식의 스콜성 폭우와 더위가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미 시작됐을 수도)


이슬람 권 국가들의 돈이 모인다는 국제 금융도시, 고층빌딩과 마천루 야경이 감탄스럽지만 그 골목만 돌아서면 저런 데 사람이 사나 싶은 빈민가도 보인다.


'쿠알라룸푸르'는 분명 관광지는 아니다. 쿠알라룸푸르의 명소 '페트로나스 타워'의 야경을 보러 간 날, 저녁 9시가 다 된 시간에 아직 군데군데 불이 켜져 있었다. 누군가에겐 포토 스폿이고 관광 명소겠지만, 누군가에겐 야근 중인 순간. 빨리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분주하게 손과 머리를 굴리고 있겠지.


숙소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피곤해 보이는 사람들. 하나같이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누군가는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는지 미소를 띠고, 누군가는 우는 아이를 달랜다.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나도 돌아갈 집이 있지. 나는 지금 돌아갈 곳을 두고 잠시 여행 중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