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엄마의 P 여행 이야기

by 옥민혜

모든 상황이 예측 가능하고, 완벽하게 통제된 상태를 선호하는 나는 내 주변 사람들, 특히 나와 더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강하게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다. 내가 생각한 기준과 상식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탓에 서울에서의 내 삶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아이들과 남편이 일어나 등교와 출근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하교한 아이들에게 간식을 먹인 뒤 정해진 시간에 학원을 보내고, 정해진 시간에 돌아와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의 공부까지 다 마쳐야 나의 하루 일과가 끝난다. 여기에 남편의 귀가까지. 늦은 밤 퇴근한 남편이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그때서야 오늘 하루도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에 비로소 긴장이 풀리곤 했다.


아이들은 통제가 심한 엄마 밑에서 아주 작은 것 하나까지도 그것을 지금 해도 되는지를 일일이 물어가며 생활했다. 나는 늘 내가 다른 엄마들보다 관대하고 허용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었을 것이다. 나는 내 일상에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것을 심각하게 두려워하고, 혹시라도 그런 일이 발생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번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완벽한 J로 살아온 내가 P로 살아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조금 깨닫게 해 준 시간이었다.


항공편과 숙소 외에는 아무것도 계획되지 않았다. 첫 도착지인 쿠알라룸푸르에서는 반나절 동안 호텔 근처를 돌아보는 것 외에는 숙소에서 내리 잠만 잤다. 그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이 먼 곳까지 왔으니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몰려드는 잠과 피곤을 물리칠 수는 없었다.


발리에 도착한 밤.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약 1시간 반 동안 우리를 태운 현지 택시 기사가 친절하게 이것저것 말을 걸어왔다. 말레이시아에서 줄곧 특유의 독특한 발음 때문에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수려한 발음이 듣기 편안했고, 때로 우리의 영어가 완벽하지 않을 때조차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센스도 돋보였다.


그가 발리에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무엇을 먹을 것인지, 어디에 갈 것인지, 무엇을 해보고 싶은지, 발리 여행 후에 싱가포르로 간다 했더니 그럼 싱가포르에서는 또 무엇을 할 것인지.


그때 깨달았다. 이번 여행은 정말 아무것도 계획된 것이 없구나. 그런데도 전혀 불안하거나 막막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때그때 해야 할 것들을 하나씩 했다. 물론 이런 무계획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도 많았다. 예상치 못 한 추가 비용이 발생하거나 시간이나 동선을 고려했을 때 어제 그걸 했어야 했고 오늘 이걸 하는 게 더 나았고 와 같은 일들.


당연스레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 천지였다. 예기치 못했던 돌발상황들이 발생하기도 했고, 상당히 당황스럽고 걱정스러운 일들도 생겼다. 어떤 때는 하루를 무의미하게 통으로 날려버린 날도 있고, 굳이 할 필요 없는 쓸데없는 일에 돈과 시간을 허비한 날도 있었다. 우리는 '차라리 ~하는 게 더 나았을 텐데. 이렇게 할걸. 저렇게 할 걸'.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다. 이런 식의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의 돌발 상황이 싫어서 여태까지 그렇게 철저한 J로 살아온 나인데 P로 살아보니 불편한 게 여간 많은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 나는 내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완벽히 통제된 상황 속에서 엄마가 정해놓은 규칙과 틀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살았던 아이들이,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무계획 속에서 가끔은 두려운 상황에 처하는 순간마저도 너무나 의연하고 침착하게 모든 상황에 대처해 나가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서 만 보 이상을 걸어야 하는 날이 자주 있었고(심지어 걸을 일이 많이 없을 줄 알고 양말도 운동화도 챙기지 않아 여행 내내 크록스 하나로 버텨야 했음) 땀에 흠뻑 젖은 몸으로 밤 12시가 넘도록 길을 헤매며 숙소에 돌아오지 못한 날도 있었다. 어떤 날은 발이 아프다길래 들여다보니 양쪽 엄지발가락 사이에 진피층이 다 벗겨 저 그 속에 피부가 다 드러나 있었다. 그 발로 불평 한 마디 없이 더운 길을 줄곧 걸었을 아이.




문제가 생겼을 때는 오히려 엄마 아빠가 당황하지 않고 문제를 침착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옆에서 마인드 컨트롤도 해 주었다. 차를 탈 때마다 불편한 좌석을 보면, 멀미가 심한 엄마 생각에 자기가 그 자리에 앉겠다고 나를 배려하기도 했다.


여행이 막바지에 접어드니 무계획 속 혼란 중에 나는 새삼 내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자랐고 또 잘 자랐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5~6시간쯤은 군소리 한 마디 없이 버티고(나는 비행기 멀미가 심해 비행기 타는걸 상당히 힘들어하는 편), 어딜 가든 주는 대로 먹고, 누우면 잔다. 현지인과도 간단한 대화쯤은 스스로 해결하고, 어떤 인종의 어떤 나라 사람 누가 뭐라 해도 지 않고 알아서 대처한다.





잘 먹지도, 잘 자지도 않고 내내 아프기만 해서 집 보다 병원 생활을 더 많이 했던 아이들. 삼일 내내 분유 한 방울도 안 먹고 울기만 해 탈수가 온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달려가며 숨죽여 울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주는 족족 뱉어내기만 했던 이유식. 두 돌이 지나도록 두 시간마다 깨어나 자지러지게 우는 통에 세 돌 때까지 통잠이라고는 잘 수 없었던 시간들.


한가로이 유모차에 누이고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육아를 했다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버티며 살았던 시간들이었다.


통제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렇게 지금까지 왔다.


이제 와서 보니 그 치열했던 시간들이 나 혼자만의 의미 없는 고군분투가 아니었나 보다. 그 사이 아이들은 이 만큼이나 자라 있었고, 통제되지 않으니 자연스레 독립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완벽한 여행이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완벽하지 않았기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번 여행으로 아이들 역시 학교와 학원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었던 그 무언가를 배운 시간이었기를.


여행이 끝나기 전 미리 써보는 이번 여행에 대한 짧은 소회. J 엄마가 P 여행을 하고 느낀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두서 없이 끄적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