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 Interview : 마케터 김하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고 싶다는 욕망을 품은 지는 꽤 됐다. 두 번의 퇴사를 경험하면서 내 마음에 귀 기울여 주는 건 오로지 나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단지 그걸 꾸준히 하지 못하는 이유는 현실과 자꾸 타협하기 때문. 어렸을 때부터 굳어진 습관이다. 초등학교 때 처음 미술학원에 갔다. 선생님이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 주는 게 좋아서 그리기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재밌었다. 그림 그리는 게 참 좋았는데 그림을 하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을 못 했다. 예술을 하면 돈이 많이 든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식당에 가서 메뉴판을 훑어보고 당기는 것보다는 음식의 양, 질, 금액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서 가성비가 괜찮은 메뉴를 골랐다. 이런 작은 선택들이 모여 습관이 됐다. 내 욕망을 억누르는 습관.
퇴사 후에 마음을 자주 들여다보며 그 습관을 덜어내고 있다. 욕망을 들여다보니 물음표가 생겼다. 어떻게 하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꼭 그게 직업이 아니더라도, 취미로 남겨 놓더라도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인생에 뿌리가 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에 서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하선님은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잘 알고 있었고 취미인 뮤지컬 활동을 꾸준히, 그냥도 아니고 열정적으로 해내고 마는 사람이어서 궁금했다. 어떻게 찾았을까? 어떻게 그걸 지속하고 있는 걸까?
E : 안녕하세요. 하선님, 자기소개 한번 부탁드려요.
하선 : 안녕하세요. 저는 브랜드 마케터 일을 하고 있고요. 삶을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건 꼭 하자는 주의로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제 인생에 뿌리가 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어요.
E : 지난번에 브랜드 커뮤니케이터라는 이름으로 소개해주셨잖아요?
하선 : 네 맞아요. 마케팅이라는 직무 자체가 회사마다 정의하는 게 너무 달라요. SNS,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기도 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등 정의하는 게 다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건 뭐지? 지금 내가 회사에서 하고 있는 건 뭔지를 생각해 봤을 때, 저는 SNS 콘텐츠 생산, 오프라인 행사 기획, 이런 식으로 제가 하는 일을 정의하고 싶지 않았어요. 브랜드를 성장시키기 위해 필요한 일들을 고민하고 기획하고 실행하는 모든 일에 관심이 있으니 ‘브랜드 커뮤니케이터’라는 명칭으로 정의하는 게 어울리겠다, 싶었어요.
E : 아, 그래서 브랜드 커뮤니케이터구나.
하선 : 제가 대학생 때 그게 정말 큰 고민이었거든요. 너무 관심을 가진 데가 많다 보니 내가 뭘 정말 하고 싶은지를 모르겠다는 거였는데 어떤 분이 그런 말을 해주셨어요. 딱 명확하게 정해서 밀고 가는 스페셜리스트가 있고, 전반적인 흐름을 보며 이 과정에서의 연결성을 만들어 가는 제너럴리스트가 있다고요. 아, 그러면 나는 모든 것들을 보고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 회사에도 팀원이 별로 없는데 그래서 모든 일을 다 다뤄야 해서 하나를 정해두고 할 수가 없어요. 브랜드 안에서 필요한 걸 계속 나열하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거죠. 그래서 어떤 게 나한테 더 잘 맞고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정하기가 어려웠죠. 그래서 지금 일하는 방식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제가 만들어가는 느낌이 있어서 재밌어요.
E : 저도 스페셜리스트보다는 제너럴리스트에 가까운 사람인데, 깊이 들어가다가 항상 막히거든요. 그럼에도 뭔가를 하나 새로운 걸 배울 때 금방 터득하는 능력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전반적인 흐름을 잘 읽고 스페셜리스트와 소통할 때 어느 정도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것 같아요.
하선 : 맞아요. 한 군데가 안 풀리면 답답해서 제가 끼어들고 싶은 그런 게 있어요. 사실 한쪽만 보고 내 일만 해도 되는데 남의 일도 뭔가 연결이 안 되는 것 같으면 신경이 쓰이죠.
E : 마케팅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하선 : 학생 때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이런 창작물들을 정말 많이 봤어요. 이런 콘텐츠를 보고 나면 가슴 떨리는 게 있잖아요. 울렁울렁하고 감동받고. 막 화도 나고 어쩔 때는 슬프고. 이렇게 감정에 요동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어요.
제가 노트북이라는 영화를 최근에 처음 봤거든요. 처음에는 그냥 로맨스 영화 아닌가, 하는 생각에 뭐 다를 바가 있을까? 했는데 결말을 보고 나서 여운이 굉장히 크게 남았던 거죠. 스포일러가 될 테니 결말은 말씀드리지 않을게요. 자연스럽게 나도 누군가의 감정 혹은 행동에 변화를 주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Y : 그 생각이 콘텐츠에서 마케팅으로 변하게 된 시점이 궁금해요.
하선 : 처음에는 무대 연출 쪽으로 가고 싶었어요. 근데 연출 쪽은 유명해지기 까지가 너무 어렵고, 그 과정이 배고픈 길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근데 그것과 제 상황을 생각해 봤을 때 전 굶고 싶지 않았던 거죠. 바로 돈이 될만한 걸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콘텐츠를 만드는 건 재능의 영역도 있는 것 같아요. Born to be. 영화를 잘 만드는 것, 기획력. 아, 나는 예술에 온몸에 담을 자신은 없다는 생각을 했죠. 다만 제가 자신이 있었던 건 다른 사람들, 주변 상황들에서 흐름을 잘 읽고, 이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데 재능이 있었어요. 그런 걸 생각해 보니 마케팅의 영역과 잘 어울렸고, 그게 제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한 거죠.
어떤 제품의 포인트를 이 제품을 몰랐던 다른 사람에게 “어? 너 이거 필요하지 않았어?”, “이거 너랑 이런 점에서 딱 맞을 것 같은데?” 했을 때 “어, 괜찮네? 사볼까?” 변화를 만들어 내는 그 과정이 저는 재밌다고 느껴졌어요.
E : 그럼 전공은 뭐였어요?
하선 : 문화경영학과로 들어갔는데 현재는 문화콘텐츠 문화경영학과로 문화콘텐츠학과와 합쳐졌어요.
E : 콘텐츠 적인 요소와 그걸 접목할만한 전공을 찾고 찾아서 선택하신 거예요?
하선 : 네, 맞아요. 원래 문화콘텐츠학과를 가려고 했는데 그 옆에 문화경영학과라는 게 같이 있더라고요. 찾아보니 오히려 문화콘텐츠라는 산업을 어떻게 마케팅할 수 있는가, 혹은 문화적으로 마케팅이 어떻게 그 방법을 접목시킬 수 있을지 이런 것들을 배우는 곳이었거든요. ‘어? 콘텐츠를 만드는 것보다 비즈니스 쪽이 맞겠는데?’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됐죠. 학과도 막 가고 싶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바로 진로에 도움이 되는 쪽이고 싶었어요. 4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서 고민을 많이 했죠.
Y :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꽤 어렸을 때부터 찾으신 것 같아요.
하선 : 네. 저는 이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저런 직업도 있네? 나도 해보고 싶다.’ 막 이런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이었어요.
E : 저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항상 늦게 퇴근하셨어요. 집에 오시면 열시거든요. 그때 드라마 하잖아요. 드라마 보면서 밥 먹고 그랬어요. 저의 경우엔 드라마와 그렇게 친해졌어요. 어떤 드라마를 재밌게 봤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뭐 허준, 대장금 그런 거였겠죠? 그래서 아홉 시, 열시만 되면 안방에서 tv앞에 앉아서 귤 까먹고 밥 먹으면서 드라마 보는 기억에 남아있어요. 하선님은 누구의 영향을 받아서 혹은 어떤 계기로 콘텐츠에 관심이 생겼는지가 궁금해요.
하선 : 거슬러 가보면 제가 유치원 때부터 미술학원을 다녔어요. 한 선생님한테 거진 십 년 정도 미술을 배웠거든요. 근데 가르치는 방식이 좀 독특했어요. 뭐 입시 미술 이런 느낌이 아니라 그냥 아이가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경험들을 많이 시켜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셨어요. 그 덕에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뮤지컬이나 오페라, 발레, 오케스트라 공연을 정말 많이 보러 갔어요.
뮤지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지는 얼마 안 됐는데 그때 봤었던 티켓 같은 것들이 남아있어요 아직도. 근데 기억은 안 나요. 돌이켜보니 까먹고 있다가 내가 왜 중고등학교 때 콘텐츠에 그렇게 관심이 많았을까를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그런 공연, 전시를 많이 보여주셨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어요.
E : 되게 어린 시절부터 문화생활을 많이 했었네요?
하선 : 맞아요. 제가 정읍에 살았는데도 서울로 자주 갔었죠.
E : 지금 취미활동으로 뮤지컬을 하시잖아요.
하선 : 사실 뮤지컬은 버킷리스트였어요. 직업적으로는 저에게 돈이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걸 접목시킨 마케팅이라는 영역을 택했지만 그래도 창작에 대한 욕구는 있었거든요. 그래서 언젠가는 꼭 한번 그 분야를 경험해 봐야지 했죠. 하지만 어떤 동아리에 들어가 극을 올리지 않는 이상은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꿈? 같은 느낌이었어요.
E : 버킷리스트로 갖고는 있었지만 어떻게 실천하기로 결심하게 됐어요?
하선 : 입사 초에 제 지인이 뮤지컬 <빨래>를 올리는 걸 본 거예요. 그때 ‘어, 직장인도 할 수 있었잖아’라고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좋아, 그럼 그런 선택지가 생겼고 취업을 하고 일에 적응하는 시간, 6개월 정도가 지나니 약간 여유가 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여유 있어도 되나?’라고 생각할 때쯤 취미를 가져보자 생각한 거죠.
동호회 소모임 어플을 쭉 살펴봤어요. 운동, 그래 나 이제 다이어트해야지 하면서 등산도 가보고 러닝 크루도 가봤는데 재미가 없었어요. 저한테 의미 있는 걸 찾고 싶었는데 쭉 살펴보다가 뮤지컬 동호회를 본 거죠. 어? 그때 그 언니도 올렸는데 나도 할 수 있나? 해볼까? 그때 노래도 잘 못했는데 '아, 그냥 해보지 뭐' 하는 생각으로 갔어요.
E : 우와, 어땠어요?
하선 : 적응이 안 되는 거예요. 다들 ENFP인데 막 다 텐션 올라가 있고. 저는 그런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근데 제가 다른 역할이 돼서 노래도 하고 뭔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표현한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그 후로 욕심이 생겼어요. 완성도 높은 극을 만들고 싶다는. 그래서 배우로 몇 번 극을 올리고 지금은 스태프로 참여하고 있어요.
그렇게 경험을 하고 나니 이 뮤지컬이라는 극을 취미로 가져가는 게 제가 콘텐츠 얘기했을 때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싶은데 마케터로서는 충족되지 않았던 결핍이 뮤지컬을 통해 충족이 되는 것 같아요.
E : 마지막으로 하선님의 why는 뭘까요?
하선 : 와, 이거는 정말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단순하게는 그냥 재밌어서요. 그냥 재미있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저는 뭔가를 연결하는데 재미를 많이 느껴요. 사람과 사람이든, 아니면 제품과 사람이든. 그게 제가 마케팅을 계속 재밌게 할 수 있는 이유인 것 같아요. 언젠가는 연결을 통해 좀 더 이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 그로 인해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드네요.
결국 답은 내 안에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배고픈 직업은 하기 싫고, 예술은 재능의 영역도 있으니 나는 못할 것 같아. 어떡하지? 라며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 이 관심분야를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까에 대해 질문하고 대답하며 하선님은 자신만의 답을 찾았다.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모습이 빛나보였다. 나는 무엇을 얘기할 때 눈을 반짝일까?
인터뷰를 하면서 나와 인터뷰어 E를 직장인 뮤지컬 동호회 입구까지 끌고 온 하선님은 정말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진심인 사람임에 틀림없다. 촬영이 끝나고 몇 주 뒤, 마침 하선님이 올리는 극을 보러 갈 기회가 생겨서 찾아간 극장 앞에는 극을 올리는 뮤지컬 배우와 스태프의 지인들이 꽃다발을 사들고 함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와, 신세계다.' 무대에서 누구보다 진지하고 열정적인 그들이 그냥 내 눈에는 뮤지컬 배우로 보였다. 마케터 누구, 엔지니어 누구가 아닌 그냥 뮤지컬 배우. 아, 멋지다!
인터뷰이 : 김하선
인터뷰어 : E
촬영, 편집 : Y
에디터 : Y
채널명 : whythisjo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