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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스 Jul 30. 2023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알게 되는 것

Job Interview : 뮤지컬배우 김수인

언젠가 소셜클럽에서 주제가 자신의 묘비명을 써보는 것이었다. 그때도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경험해 보지 못한 나에겐 너무나 무거운 주제였다. 내가 죽는 날이 그려지지도 않고 죽음이 뭔지도 감이 안 왔다. 늙어서 몸이 쇠약해지고 끙끙 앓다가 죽게 되려나? 길을 가다가 차에 치여 죽으려나? 그 이후로 몇 번의 장례식을 경험한 지금은 부고를 어떻게 전할지, 식장을 잡는 것부터 시작해서 지켜야 할 상주 예절 등등 현실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가 먼저 그려지는 나이가 됐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어낸다는 것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게 계기가 되어 죽음에 대해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됐다. 내가 한 달 뒤에 죽는다면? 당장 내일 죽는다면? 죽음이라는 게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지만 사실은 그게 멀리 있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 조금 더 나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해야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지. 내 욕망을 들여다보는 데 도움이 됐다.


죽음 앞에서 무력해지지 않겠다. 이제는 죽음을 생각하면서 더더욱 내 마음을 따라가야겠다, 더 잘 살아내야겠다고 다짐하며 수인님의 인터뷰를 다시 꺼내보게 됐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는 그는 현실적인 조언에 따라 살고 있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고 그 길로 자신이 정말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뭔지를 깨닫고 좇았다. 특히 예술 분야는 늦은 나이에 시작하기에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나. 자신 있게 오케스트라 동아리를 찾아가 문을 두드린 그가 정말 멋있었다. '아무것도 없지만 나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사람이 되겠어.' 그 자신감의 원천이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잘 아는 것.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알게 되는 것, 그건 바로 나 자신이 아닐까.





E : 어떤 일을 하는 누구인지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수인 : 안녕하세요. 저는 93년생 2년 차 배우 김수인입니다. 영화 쪽을 좀 하고 있어요. 단편 영화를 만들어서 출품하는 형식으로 영화 작업을 위주로 하고 있어요 요즘은.


E : 처음부터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수인 : 저는 처음에는 ‘배우가 돼야지’가 아니었어요.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음악이 좋았어요. 사실 연기에 관심이 없었어요. 중학교 때 음악 시간에 클래식 음악을 듣잖아요. 전율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아, 이걸 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엄마한테 "나 악기 좀 배워보고 싶어”라고 얘기했는데 엄마는 공부나 하래요 늦었으니까. 그때는 너무 나이가... 사실 늦은 것도 아닌데 십 대인데 그땐 그랬어요. 그래서 그 말을 듣고 공부를 했어요. 결국 대학에 갔죠. 제가 수학 전공을 했거든요? 공부를 하다 보니까 수학이 좋아서 대학에 갔지만, 막상 가니까 너무 힘들고 재미가 없는 거예요. "아, 삶의 의미가 뭘까"하는 생각을 그때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마음이 너무 복잡해서 생각이 많아졌던 대학교 3학년 말쯤, 국토대장정을 떠났어요.


E : 아~ 공부 한창 하다가 가셨구나.


수인 : 네. 가서 하염없이 걸었어요. 사실 그때도 뭘 발견하지는 못했어요. 그런데 국토대장정에 다녀와서 몇 달 뒤에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어요. 그때 장례식장에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죽음.. 죽음에 대한 생각이요. 갑자기 이렇게 죽음이라는 걸 보게 돼서 뭔가에 머리를 맞은 것 같은 느낌? 아, 죽는다는 게 가까이 있었구나. 그래서 그 이후로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내가 당장 내일 죽더라도 후회스럽지 않게 살아야겠다” 내가 당장 내일 죽으면 ‘나는 너무 후회스러운 삶일 것 같아’라는 생각을 그때 하게 됐어요.


4학년인데, 다른 애들 막 취업 준비하고, 졸업 시험 준비하고 이럴 때 저는 오케스트라 동아리를 찾아갔어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게 뭔가? 생각을 하다가 ‘어, 나는 옛날에 이런 음악을 들을 때 굉장히 흥분되고, 전율을 느끼고 막 이랬었지. 나는 클래식을 좋아하는 것 같아’ 이러면서 학교 내에 있는 오케스트라 동아리를 알아봤는데 악기를 다룰 줄 알아야 된대요. 그리고 4학년은 못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아.. 할 수가 없네? 어떡하지? 뭐 하지?’ 하다가 음악과 연관이 되어 있는 게 뮤지컬 이잖아요. 그래서 뮤지컬 동아리 문을 두드렸어요. 음악을 좋아하니까, 뭔가에 이끌려서 갔던 것 같아요. 공연을 해봤어요 거기서. 동호회 형식으로 취미 뮤지컬 공연을 하나 올렸는데, 그때 느꼈어요. 아, 너무 좋다. 너무 행복하다. 그 무대가 주는 희열감을 그때 처음 느꼈는데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을 그냥 어렴풋이 했어요. 


이제 그 이후로 뮤지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공연을 많이 보러 다녔어요. 근데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배우들의 연기보다는 그 무대 아래에 있는 오케스트라에 굉장히 감동을 받아서 저는 뮤지컬 작품을 볼 때 아래를 봤어요. 밑에 연주하고 있는 그 오케스트라를 보면서 혼자 뭉클해가지고 막 울다가 못 나오고 그랬어요. 이 사람들과, 저 오케스트라에 내가 들어갈 수는 없지만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아니 그래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정말 아무것도 없지만 “저걸 하고 살면 행복하겠다” 그러면 ‘뮤지컬 배우가 돼볼까?’라고 그때 생각을 한 거예요.


E : 우와, 오케스트라. 고등학교 때 빠졌던 클래식도 떠올랐겠네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다시 한번 오케스트라에 푹 빠지고 저기 못 들 거면 저 사람들이랑 일이라도 같이 해야겠다! 


수인 : 네, 맞아요. ‘배우가 돼서 연기를 해야지’가 아니라 ‘저 사람들과 같이 작품 하고 싶다’ 그 생각이 더 컸던 것 같아요.







E : 원래는 수학과도 아니었다고 알고 있어요.


수인 : 아, 맞아요. 그때는 너무 서울이 가고 싶어서 학교 성적 맞춰서 원서를 넣느라고, 경쟁률이 좀 덜 치열한 물리학과를 가게 됐어요. 뭐, 역시나 잘 적응을 못해서 학고도 받아봤어요. 어머, 이건 편집해 주세요. 부끄럽네요. 아무튼 교육 봉사를 갔어요. 학교에서 그냥 의무적으로 채워야 하는 봉사활동 시간이 있어서 갔는데 그때 그 애들이 주는 에너지가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아! 교직으로 나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임용고시에 특화된 과목이 수학이었어서 수학과로 전과를 하게 됐어요. 사실 뮤지컬에 빠지지 않았다면 저는 교직에 관심을 쭉 가졌을 것 같아요. 지금도 강사일을 투잡으로 하고 있는데 이 일도 저는 사실 나쁘지는 않아요. 하지만 뮤지컬이 저에게 좀 더 큰 행복을 주기 때문에.


Y : 요즘 연기에 빠져있다고 들었어요. 연기의 매력이 뭐예요?


수인 : 춤, 노래, 연기를 레슨을 받으며 배우다 보니 최근에는 연기의 매력을 조금 더 느끼게 됐어요. 그래서 요즘 영화를 위주로 작업을 하고 있는 거고요. 제가 원래는 안 그랬는데, 원래는 좀 동글동글하고 선한 성품이 사람이었어요. 진짜 누가 봐도 예민하지 않고, 무난한 성격이었어요. 근데 조금씩 예민해지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막, 그 약간 응어리진 거 있잖아요. 제가 힘든 것들을 연기를 통해서 그 감정을 표출하면서 해소되는 게 있거든요. 그런 마음을 치유해 주는 게 연기였어요. 


또 한창 예민했을 때, ‘인간은 다 부질없어’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아무하고도 말을 안 할 때가 있었거든요? 그럴 때 저를 그나마 위로해 주고, 살게 해 준 건 음악이었어요. 그래서 이따금 '사는 게 다 쓸모없어' 이렇게 생각이 들다가도 제가 느낀 연기, 그리고 음악이 주는 가치를 그대로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게 가치 있는 삶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욕심내고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E : 연기를 통해서 이루고 싶은 수인님의 목표가 있어요?


수인 : 연기를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스타가 되어야지 이게 아니라, 그냥 저는 가까이 지내고 싶어요. 제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소신껏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를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는 게 제 목표예요.


E : 마지막으로 수인님의 why가 있다면?


수인 : 저는 사실 뮤지컬이 제 전부인 것 같아요. 이게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뮤지컬을 하고 있으면 굉장히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습할 때 조금 더 제가 뭔가 원하는 그런 이상적인 소리를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가 희열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요. 갈망인 것 같아요. 항상 느끼는, 어디에 있던 곁에 두고 싶은 그런 갈망이요. 









인터뷰이 : 김수인

인터뷰어 : E 

촬영, 편집 : Y 

에디터 : Y 

채널명 : whythisj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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