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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라스 Nov 03. 2023

호주에서 인생 첫 차를 샀다.

주거난은 전 세계 어디나 똑같구나

차를 살 생각은 전혀 없었다. 고작 1년 남짓한 기간을 사는데 차가 꼭 필요할까? 운전면허도 있고 종종 운전을 했지만 차를 사본 적이 없었기에 두렵기도 했다. 차에 대해 아는 거라곤 포트홀 사고가 났을 때 파손된 차량 사진을 보고 견적서랑 비교해 가며 금액이 적정한지를 판별하는 서류 작업뿐이었다. 그마저도 퇴사하고 나서 다 잊어버렸고 차를 볼 줄도 몰랐다. 호주에서는 기본 20만 킬로를 달린 중고차를 잘 보고 사야 하는데 차를 살 때 신경 써야 할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하러 왔을 때 그간의 여행지에서 그랬듯 차 없이 튼튼한 두 다리로 대중교통 타고 잘 돌아다녀야지, 다짐했다. 차는 사치가 아니라 필수라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나는 꿋꿋하게 차를 사지 않겠다고 얘기하고 다녔다. 여행 다닐 땐 항상 뚜벅이였고 그래서 조금 불편한 건 당연했다. 차를 사면 내가 책임져야 할 게 하나 더 늘어나는 거니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몸 뉘일 곳만 있으면 되니까.


호주에서 산 지 6개월 차, 갑자기 생각이 바뀐 이유는 바로 '집'이다. 차 없이도 지역을 옮겨 다니며 참 여기저기 잘 돌아다는데 말이다. 그간 호스텔에서도 살아보고, 숙소가 제공되는 일자리를 구해 직원 숙소에서도 살아보고 또 셰어하우스에서도 살아봤다. 서핑하는 삶을 위해 호주에 온 내게는 어딘가 하나씩 부족한 곳이었다. 그마저도 이제는 호주에서의 남은 기간이 애매한 것도 있었고 3개월, 6개월 단위의 장기 계약 같은 건 하기 싫었다. 집은 서핑보드를 들고 서핑 스팟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야 했고 렌트비도 적당해야 했다. 이런 조건을 내건 내게 허용되는 집은 없었다. 큰 도시 같은 경우는 호스텔에서도 장기로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가 사는 동네는 애매한 시골에 가까운 곳이라 호스텔도 많이 없는데 그마저도 가격 메리트가 전혀 없다. 호스텔에서 사는 게 바다가 보이는 비싼 집을 구해서 지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가격이다. 그 렌트비를 감당하려면 대체 일주일에 얼마를 벌어야 하지? 사악한 호주 집값에 혀를 내두르며 생각했다. 어디든 훌쩍 떠날 수 있는 가벼운 집이 필요해. 






때마침 한국에서 호주로 여행 오는 친구를 만나러 퍼스 행 항공권을 끊고 서호주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머물던 집의 렌트비를 그냥 낭비할 순 없어 정리하기로 했다. 배낭을 풀고 다시 싸는 과정에서 안 쓰는 물건들은 버리고 필요 없는 옷가지들을 모아 한국으로 보냈다. 내 짐은 이 배낭 하나인데, 배낭과 내가 머물 집이 왜 없는가? 집을 정리하면서 불현듯 친구와 한 얘기가 떠올랐다. 


- 저기 저 바다가 보이는 집 앞에서 눈을 뜨고 서핑하러 바다로 뛰어드는 거야.

- 해변 캠을 보면서 파도 체크를 할 필요가 없잖아.


그때는 그냥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와, 너무 부러운 삶이다-라고만 생각하고 말았는데 바다 앞에 있는 집을 살 순 없겠지만 차에서 살면 바다 근처에서 떠돌아다니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처음엔 캠퍼밴이었다. 캠퍼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캠퍼밴은 유지비도 많이 들고 큰 밴을 몰 자신이 없었기에 작은 차로 시선을 돌렸다. 나 혼자니까 SUV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나한테 딱 맞는 집은 바로 차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사야겠다. 그날 밤 거의 밤을 새웠다.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어렵지 않은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차에서 살면서 여행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이미 치솟을 대로 치솟은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차에서 지내는 사람들, 캠퍼밴 생활을 하며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호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핑하러 갈 때마다 주차장에서 캠퍼밴들이 주차장을 메우고 있는 걸 자주 본다. 와, 부러운 삶이다-라고만 생각했지 내가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나와는 먼 얘기라고 생각했다. 절대 이룰 수 없는 버킷리스트 같은 걸로 치부했다.


아무래도 호주에서 돈을 버는 족족 써버린 탓에 여유 돈이 없어 투자가 필요한 결정이었기 때문에 계산을 해봤다. 차에서 살려면 뭐가 필요한 지부터 시작해서 차를 되팔 때 얼마를 받을 수 있을지, 이것저것 들어가는 부대비용까지 다 계산해 보고 결심이 섰다. 이거, 밑져야 본전이잖아? 돈을 벌 수는 없겠지만 차에서 살면 집값은 아낄 수 있으니 원하는 곳에 머물면서 돈을 아낄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였다. 가장 최악의 상황은 차 사고가 나는 경우, 차를 되팔 때 제 값을 못 받을 경우. 기껏 해봤자 그 정도인데, 뭐가 문제인가?


퍼스 여행에서 차를 렌트해 로드트립을 떠나는 일정을 며칠 끼워 넣었다. 호주에서의 첫 운전을 렌터카로 하는 셈이다. 친구에게 차를 살 거라고 얘기하니 뭐, 이미 결정했구먼. 어차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잖아!라고 하는 그. 역시 날 잘 아는 친구다. 페트롤이 많이 없어서 주유등이 켜진 채로 70킬로를 운전하게 된 것 빼고는 순조로운 여행이었다. 아무튼 서호주 로드트립도 잘 끝냈고 다시 퀸즐랜드 주로 넘어왔다. 브리즈번 공항에 도착해서 제일 저렴한 호스텔을 검색해 봤다. 1박에 50불이 훌쩍 넘는 가격이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누사 호스텔 5박을 예약했다. 150불, 5일 안에 모든 걸 끝내겠다. 배수진을 치는 전략이었다. 5일 안에 차를 사지 못하면 나는 정말 홈리스가 되는 것이다,는 마음으로. 


공항에서 누사로 가는 버스 안에서부터 차 매물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몇 개 후보를 추렸다. 호스텔 체크인을 하고 저장한 리스트 중 몇 군데에 연락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인스펙션을 하러 갔고 바로 그 차를 사기로 결정했다. 너무 급하게 결정하는 거 아닌가? 내가 지금 사려는 게 옷도 아니고 무려 찬데 이렇게 바로 결정해도 되려나? 잠시 멈칫했고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하루 충분히 고민을 한 후 마음을 다잡고 예약금을 입금했다. 그렇게 호주에 온 지 6개월 반 만에 차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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