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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춘 Dec 01. 2024

올림픽 기록도 아닌데 그게 뭐라고

어리석은 우중산행

  회사 다닐 때 인생 최고 몸무게 90kg을 찍었다. 독하게 다이어트를 했다. 지금은 70kg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 아침에 몸무게를 쟀다. 다행히 체중의 변화가 없다. 어제 홍시를 많이 먹어서 체중이 늘었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루 목표인 만보를 채웠지만 밤늦게 한 시간 가까이 인근 숲을 걷고 왔다. 체중을 감량하면서 많은 병들이 사라졌다. 내게 체중 유지는 종교처럼 신성하다. 야식 금지, 소식하기, 인스턴트 음식 피하기, 금주 등 다이어트를 위한 여러 지침을 세우고 지키려고 애를 쓴다. 그런데 가끔 무의미한 것에 고집을 부린다. 내가 봐도 한심하다.       


  한참 등산에 빠져 있을 때이다. 매주 등산하기를 목표로 세웠다. 전국의 유명한 산은 다 다녔다. 주중에 음주 가무와 업무 스트레스로 나빠진 몸은 주말 등산을 하면 휴대폰 충전하듯 금방 회복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선한 공기와 이름 모를 야생화, 한 폭의 산수화 같은 절경에 취했다. 숨이 막힐 듯한 고통을 참아가며 정상에 오르면 성취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당시 등산은 고마운 피로회복제였다. 


  가족이 함께 처가에 다녀오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라디오에서는 강력한 태풍이 올라오는 중이라고 했다. 해 질 녘에 집에 도착했다. 만류하는 가족들을 남기고 가까운 산으로 떠났다. 그때 10주 연속으로 등산을 했었다. 연속등반 기록을 깨고 싶지 않았다. 올림픽 기록도 아닌데 그게 뭐라고. 참 어리석었다.


  아차산 입구에 차를 세우고 산에 올랐다. 당연히 태풍 예보 속에 산을 오르는 이는 나밖에 없었다. 기록 달성을 향한 불굴의 의지와 힘든 난관을 헤쳐나가는 뜨거운 열정을 가진 나를 스스로 칭찬했다. 그런데 으쓱해지는 것도 잠깐이고 바람이 지나가며 내는 숲의 기이한 소리가 귀신 소리 같아 무서움이 들었다.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았다. 날은 어두워지고 비까지 내렸다. 휴대폰 불빛에 의지하며 산을 오르는데 무섭기도 하지만 처량해 보였다. 이건 아니다 싶어 산 중턱에서 발길을 돌렸다.


  이제는 많은 것에서 마음을 내려놓았다. 고집부리지 않으려 하고, 따지지 않으려 하고, 조바심 내려하지 않는다. 할 수 있으면 좋고 안 해도 좋다. 만나면 좋고 못 만나면 인연이 아닌 걸로 아쉬움을 달랜다. 대나무처럼 꼿꼿한 삶보다 갈대처럼 바람에 흔들리면 살고 싶다. 꺾이지 않으면서 나를 지키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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