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가 둥지를 짓는다. 아무도 다가갈 수 없는 빌딩 간판에 둥지를 치고 있다. 부리로 자른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둥지로 날아든다. 몇 번을 날아올랐는지 둥지에는 나뭇가지가 수북이 쌓여 있다. 까치는 부동산에서 집을 구하지 않는다. 부리 하나로 보금자리를 만든다.
부동산을 다녀온 아내가 고층으로 이사 가자고 했다. 아내 뜻대로 여덟 번이나 이사를 했지만 이번에는 고민이 되었다. 왠지 고층이란 말이 아슬아슬한 느낌을 주었다. 하늘 높이 쌓아 올린 바벨탑이 생각났다. 높이가 성공의 잣대라고 하니 아내도 위로만 오르려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또 같은 라인 같은 평수에 층수만 다른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아내는 전망이 좋을 뿐만 아니라 아파트 시세는 높은 층일수록 유리하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공간과 장소에서 인간의 경험, 감정을 강조하는 인문지리학자 '이푸 투안(Yi-Fu Tuan)'은 어떤 장소에 대해 느끼는 정서적 유대감을 장소애(場所愛)라고 말했다. 아내는 아파트에 장소애를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옹색한 신혼집에서 고생한 기억이 아직 남아있는 것일까. 신혼 시절을 보냈던 다가구 주택과 어린 시절 고향 집이 떠올랐다.
신혼을 변두리 전셋집에서 시작했다. 엄마랑 여동생도 같이 살았는데 집이 좁아서 새색시가 숨 쉴 틈조차 없었다. 물탱크가 작아서 단수도 잦았다. 아내는 장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결혼이라 보란 듯이 살고 싶었으리라. 아내의 꿈을 담기에 집은 비좁고 불편했다. 그때 아내에게 아파트에 대한 욕망이 생겼을 것이다.
나도 집에 한이 있었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은 방 한 칸에서 살았다. 초가집 이엉에는 가난이 굼벵이처럼 자라고 있었다.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누나들은 도시로 떠났다. 헛헛해진 엄마는 자식들이 떠난 자리에 동네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우리 집은 무료 카페였다. 마실꾼들의 이야기를 백색 소음이라 하기에 경상도 사투리는 너무 억세고 시끄러웠다. 할 수 없이 창고방에 책상 하나 크기로 간이 공부방을 만들었다. 온기 하나 없는 냉골에서 공부하면서 번듯한 내 방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내 손에 이끌려 고층 집에 구경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가 없다면 고층 아파트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엘리베이터가 고층을 향한 욕망을 부채질하는지도 모르겠다.
전망은 확실히 달랐다. 발코니에서 보니 남산과 한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 집이 동산에서 내려다보는 소소한 전망을 가졌다면, 고층 집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환상적이었다. 고층 집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다. 사실 아내 말대로 이사 가서 손해 본 적이 없기에 주저할 필요도 없었다. 고층 집으로 이사 가기로 결정했다.
신혼 시절 작은 아파트로 이사 간 날을 잊지 못한다. 나도 아내도 아파트에 사는 건 처음이었다. 아파트는 신세계였다. 잔칫상도 차릴 수 있을 만큼 주방이 컸다. 거실도 있고 발코니도 있었다.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펑펑 나왔다. 이게 우리 집이라니 꿈만 같았다. 집이 좋아서 더 이상 이사 갈 일도 없을 것 같았다.
드디어 지금 살고 있는 고층으로 이사를 했다. 그런데 기존에 살던 아파트가 팔리지 않아 아내는 걱정이 컸다. 며느리 속도 모르고 엄마는 "우리 아들이 성공해서 서울에 아파트를 한 채도 아니고 두 채나 갖고 있다"고 동네방네 자랑을 했다. 전셋집에서 살던 신혼시절 엄마는 "아파트가 저렇게 많은데 우리 아들 것은 없네"라며 아들에게 도움을 못 주는 엄마의 신세를 한탄했다. 엄마에게도 아파트가 한으로 쌓여 있었다.
이사 오기 전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아내가 가장 신경 쓴 곳이 발코니였다. 거실 중문을 폴딩 도어로, 발코니 창문을 통창으로 바꾸었다. 폴딩 도어를 접으면 현관에서도 아파트 외부 경치가 훤히 보인다. 손님이 우리 집에 들어서면 자연스레 발코니로 향하고 바로 탄성을 지른다. 탄성 소리를 들으면 우리 부부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해 질 녘의 노을도 장관이다. 남산 위로 붉은 해가 지는 모습을 보며 아내는 자주 감탄을 한다. 이 노을을 보려고 그동안 수차례 이사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해외 경험이 많지 않은 아내는 우리 집이 '세계 5대 노을 명소' 중의 하나라고 우긴다. 은근히 자신의 노력을 자랑하고 있다.
소파에 앉아 물끄러미 저녁노을을 보고 있는데 "오래전부터 추진해 온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를 다음 주부터 시작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한 달 동안 엘리베이터를 탈 수가 없다. 외출하거나 귀가하려면 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택배나 우편물, 배달음식은 일 층에 내려가서 가지고 올라와야 한다. 전망 좋은 우리 집은 18층에 있다.
고층 아파트는 바벨탑 같다. 하늘에 닿으려는 인간의 욕망이 콘크리트 건물이 되어 도시 곳곳에 우뚝 솟아 있다. 남보다 뛰어나고 싶은 도시인은 우러러보질 않는다. 쳐다보는 이가 없어 도시의 밤하늘에 별도 없다. 내려다봐야 만족을 하니 더 나은 전망을 찾아 위로 위로만 오른다. 전망은 욕망의 또 다른 이름이지 않을까. 우리는 수직으로 상승한 높이가 돈이고 성공의 척도가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오늘도 바벨탑 속 엘리베이터는 인간의 욕망을 싣고 하늘로 오른다.
다행스럽게 멋진 경치와 노을은 아내의 욕망을 잠재운 듯하다. 더 이상 이사 가자는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