쭈꾸미가 태어났다.
긴 시간 미연이가 뱃속에서 쭈꾸미를 키웠다. 하리보 젤리였던 아이가 3.59kg 우량아가 되어 빛을 보았고, 지난 6월 24일 우리는 엄마와 아빠가 되었다. 5박 6일간 병원에서의 생활을 지나, 또 어제부터 3주간 산후조리원에서 있게 된다. 출산 전 입원수속을 하고 미연이에게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었더니,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
라고 무서워하며 이야기했다. 제왕절개 수술을 무서워하는 미연이를 위로하려 노력했다. 수술을 마치고, 쭈꾸미의 탯줄을 끊기 위해 처음 마주한 날. 탯줄을 잘랐고, 탯줄에서 나온 피를 보며 정신없이 새 생명을 느꼈다. 잠시 후 봉합 수술을 마치고 나온 미연이는 이불과 전기담요와 또 이불을 덮고 있었지만 입술과 두 볼이 사정없이 떨리며 추워했다.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며칠을 보내며 미연이는 주렁주렁 달고 있던 수액과 진통제를 하나하나 덜어가고 건강을 회복해 갔다.
병원에서 모자동실을 하지 않아, 미연이는 출산 후 3일 차부터 유축기를 사용하여 초유를 유축했다. 처음 유축을 배우고 다음 날 오전 미연이는 갑작스러운 가슴 통증에 눈물을 왈칵 쏟았다. 나는 당황하여 간호사 선생님께 말씀드렸고 전날 말로만 들었던 젖몸살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미연이가 다시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을 만큼 무지막지한 마사지를 해 주셨고, 덕분인지 그다음 날부터는 몸살기가 사라졌다. 우리는 퇴원 때까지 그 간호사 선생님을 '무지막지쌤' 이라고 불렀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 잊고 살았었는데, 한 아이의 탄생이 얼마나 신비로운지 미연이는 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퇴원하는 날 유리창 없이 아이를 맞이하고 바구니카시트에 알차게 여며주신 쭈꾸미를 데리고 산후조리원으로 왔다. 오는 동안 우렁찬 울음 후 순식간에 잠들어버리는 아이 옆에서 미연이는 왜 우는지 모르겠다며 긴장했고, 나는 혹여나 운전에 충격이 아이에게 가지 않을까 조심했었다.
산후조리원은 병원에 비하여 호화리조트였다. 이 조리원은 미연이와 마실 다니다 알게 되었는데 산부인과 근처에 있던 산후조리원과 비교가 미안할 만큼 만족스럽다. 집에서 20분 정도의 거리, 창문을 열면 들어오는 쾌적한 숲바람, 넓고 깨끗한 방과 친절한 조리원 선생님들 등등. 미연이는 둘째를 낳고도 와야 하는데 가격이 너무 오르거나 예약이 어려울 수 있으니 널리 알려야 한다는 나를 말렸다.
여기에선 모자동실을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었고, 어제는 쭈꾸미를 안고 분유를 먹이며 아이와 나의 체온을 나눌 수 있었다. 우리는 아이와 함께 방에 있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몰랐으며, 미연이와 아이가 서로 마주 보고 자는 모습을 보며 세상 처음 경험하는 감정을 느꼈다.
양가의 어머니께서는 조리원에 있는 동안 미연이가 충분히 쉴 수 있도록 모자동실을 최소화하라 하셨으며, 너무 아이를 안고 있으면 쭈꾸미가 품에 안겨 쉬는데 길들여져 나중에 힘들거라 하셨다. 이렇게 아이의 엄마를 먼저 걱정해 주시니 우리는 한껏 아이를 걱정할 수 있었다.
오늘 오전에는 쭈꾸미가 내 품 안에서 한 시간 동안 잤다. 잠자는 아이를 바라보며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아이도 따뜻함 속에서 행복하게 자랐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오후엔 쭈꾸미가 어제에 이은 몇 번의 시도만에 모유를 직접 먹었다. 미연이에게 어떤 기분인지 물어보았다. 조금 고민하더니
'음, 드디어 성공했다는 느낌. 그리고 엄청 따뜻함. 애기도 이쁘고, 모유가 잘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리고 무엇보다 유축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느낌이 좋아!'
라고 말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또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이렇게 위대하게 태어나서 자라는구나. 나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또 미연이의 삶도 우리 쭈꾸미의 삶도 풍요로워지고 있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장인어른 장모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