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침묵
어딘가로 달리는가 하면 마음둘 곳을 향해서다.
마음은 도착하고 싶다. 접촉을 꿈꾼다. 접촉된 자리에서 비로소 마음은 자신을 둘 자리를 찾아 안심한다.
접촉을 위해서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음성적으로 공간은 침묵이다.
그러나 침묵이 없다.
사회적 공간은 쓸데없는 말들로 가득 차있다. 누구도 침묵을 견디지 못해 더욱더 부질없는 말들만을 남발한다.
말들 속에 마음을 숨기려는 것이다.
침묵이 제공하는 공간은 자신의 마음을 정직한 형태로 드러낸다. 그것이 견디기 힘들다. 자신의 마음 따위는 보고 싶지 않다. 더 많은 말들을 통해 마음은 숨겨지며, 결국 마음은 어디에도 접촉되지 못한다.
가까이 있어도 접촉되지 않는 것들 속에 있느니 혼자인 것이 낫다. 차라리 그편이 덜 외롭다.
그래서 소녀는 달린다.
작은 공간이라도 찾아 숨어들어간다. 말은 마음을 숨기고, 소녀는 말로부터 자신을 숨긴다. 사려없는 말들로부터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싶어서다.
고양이는 안심을 위해 몸에 딱 맞는 공간을 찾는다. 자기의 몸에 딱 맞는 공간에 들어가있을 때 소녀는 그만큼 자신의 몸을 느낄 수 있다. 더욱더 자신의 몸에 접촉된다. 그 떨림과 흔들림이 잘 느껴진다. 그렇게 몸의 사실적 느낌인 마음이 접촉되어 소녀도 안심이 된다.
그러나 마음을 말로 숨기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마음 하나 능숙하게 말이라는 포장지로 덮지 못하는 소녀는 모자란 것이다. 덜 떨어졌으며, 괴짜다.
그리고 불편하다. 자신들이 열렬히 숨기려고 하는 마음을 날것으로 드러내고 있는 소녀가 꼴보기 싫다. 침묵할 수 없는 사람들은 소녀의 침묵이 견디기 힘들다.
이단자는 추방된다. 위협은 배제되고, 이상한 것은 떠넘겨진다.
그래도 햇살이 따른다.
여기는 네 자리가 아니라고 쫓겨난 추방자의 길 위에도 햇살이 따른다.
마치 고향으로 가는 길인 것만 같다.
소녀를 환대하는 그 눈빛에도 햇살이 담겨 있다.
아무 말 안해도 된다고, 사람들은 침묵할 기회를 놓쳐 많은 것을 잃는다고, 말없는 소녀에게 말을 건네는 숨결에도 햇살의 온기가 가득하다.
우리는 여기에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라고 하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을 들으며,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위한 무수한 사려깊음을 만난다.
슬프고 외롭던 것이 도착한 곳은, 소녀처럼 슬프고 외로웠기에 슬픔과 외로움이라는 것이 말할 수 없는 가장 큰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시선이 햇살처럼 내리쬐고 있던 자리다.
가장 큰 마음은 말해질 수 없다.
삶의 아픔에서 태어난 가장 큰 마음은 부질없는 말들로 숨길 수 없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접촉하라."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비트겐슈타인 이후의 심리학이다.
"이곳에 숨겨야 할 비밀은 없단다. 이곳에 부끄러운 것은 없어."
햇살은 아주 정확하게 소녀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그렇게 말한다.
네가 부끄러운 존재가 아니라고, 정확하게 햇살은 소녀를 접촉한다.
가득 끌어 안는다.
아주 사려깊은 침묵 속에서.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있는 것만을 아주 명료하게 말하라."라며 말의 의미를 되새긴다.
마음이 가장 온전하게 접촉된 속에서, 이제 의미있는 첫말이 피어난다.
말없는 소녀에게서 처음 태어난 말.
바로 이 포옹의 자리가 이제야 찾은 마음둘 곳이었다고, 처음 고백하는 사랑.
햇살이 슬프고 외롭던 것들을 가득 비추고 있었으며, 그렇게 언제나 가장 큰 마음은 가장 깊은 온기로 접촉되어 있었다.
따듯한 침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