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은 스마트폰인데 마음은 왜 삐삐세요? #1

"81억의 심리학"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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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시대의 인구수 16억.


2024년 현재 81억.


양적으로도 무려 5배의 차이다. 질적인 수준에서는 5제곱일 것이다.


16억의 상호관계적 생태를 묘사한 그림과, 81억의 상호관계적 생태를 묘사한 그림을 떠올려보자. 떠올리기 불가능하겠지만 그 뉘앙스만을 짚어보자.


같을 수 있겠는가?


16억을 그린 도법이 정말로 81억의 그림에 통용될 수 있겠는가?


마음은 그림이다.


인간의 생태에 대한 그림이며, 생태는 조건에 따라 늘 변화한다. 그러니 그림도 늘 달라질 수밖에는 없다.


인간은 진화를 멈춘 동물이 아니다.


인간은 마음으로 진화하는 생명체다.


마음은 진화한다.


특히나 개인이 마음이라는 것을 자신의 것으로 가질 수 있게 됨에 따라 그 진화의 속도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제 마음은 인간이 향유하는 모든 소재 중에서 가장 첨단이자 최신의 것으로서의 속성을 갖고 있다. 스마트폰의 발전속도보다도 빠르다. 1분 1초의 단위로 업데이트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붓다는 2500년 전에 이러한 마음의 속성을 말한 바 있다.


붓다의 현명함은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그 실체적 내용을 규정짓지 않고, 마음이 바로 이러한 속성을 갖는다는 그 작동방식만을 말했다는 점에 있다. 내용을 말했어도 이미 후대에는 변하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붓다의 말처럼 실체는 유지되지 않는다.


마음은 이런 것이다, 라고 말하면 이미 그것은 과거의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붓다가 늘 마음을 향해 깨어있으라고 말했다면, 이는 마음이 제멋대로 활동하지 않게 감시하라거나, 마음의 내용이 동일하게 지속되도록 힘쓰라는 뜻이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은 마음의 변화에 섬세해지라는 의미였다.


마음은 이미 스마트폰으로 자동업데이트되었는데, 우리가 그것을 늘 해왔던 방식으로 삐삐의 기능으로만 쓰는 현실을 떠올려보자.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아쉬움은 많이 남는다.


피아노 연주의 천재로 태어난 이가 자신이 그런 줄도 모르고 구청에서 민원서류를 넘기는 일에만 그 마법의 손가락을 쓰고 있는 현실을 볼 때의 그 아쉬움 말이다.


그렇다고 원래 삐삐로만 쓰는 일을 좋아했던 것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시리는 필요할 때마다 잘도 불러내는 모습을 보면, 시리보다 수천만 배는 우수한 마음을 활용하지 않는 일은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마음은 정말로 아직 삐삐처럼만 인식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심증은 짙다.


불안하면 삐삐! 두려우면 삐삐! 슬프면 삐삐! 외로우면 삐삐! 어떻든 뭔가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그것을 불쾌한 신호로 알려주기만 하는, 그러다가 오작동도 상당히 자주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단순알람장치로 마음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경향은 지배적일 수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기능도 후지고 오히려 갖고 있어서 문제가 더 많이 생기는 것 같은 이 장치를 불필요하다고 경험하는 경우도 제법 있다.


거의 뭐 맹장이나 꼬리뼈 같은 취급일 수 있다.


심지어는 마음이라는 것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줄기차게 방해하는 못된 세력처럼 생각되기까지 한다. 우리가 성공하거나 성취하지 못한 많은 경우는 다 마음이 문제였다고 말하기를 우리는 무척 선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음이 내면의 적으로 상정된 것이다.


아주 성가시며, 대체 무슨 좋은 점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다만 인생의 짐이다.


제발 앞길 가로막는 일만이라도 안해줬으면 하고 우리는 마음 앞에서 한숨을 내쉬며, 앞길을 잘 가보기 위해 나무위키를 켜고 유튜브 창을 연다.


꽃보다는 남자이듯이, 마음보다는 SNS다.


내 인생을 구원해줄 백마 탄 왕자님이 마음 따위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듯 싶다.


맞는 말이다.


마음은 백마 탄 왕자님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우주구급의 럭셔리함이다.


오늘날 우리가 81억의 인구수를 떠올릴 때 우리에게 같이 떠오르는 것은 지구다. 과적된 숫자만큼 우리는 필연적으로 지구의 용적을 생각하게 된다.


인간의 생태에 대한 그림 속에는 이처럼 자연스럽게 지구가 이미 들어가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떠올라 있다.


그런데 앞서 인간의 생태에 대한 그림이 바로 마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 이 시대의 마음은 이미 지구적 차원에서 묘사되고 있는 소재인 것이다. 표현 그대로 우주구급의 스케일을 갖는 것이 마음이다, 이제는.


예전에는 마음이라고 하면 자꾸 자기 안에서 뭘 들여다보려고 했다. 그러다가 대단한 내면의 무엇인가를 찾았다고 보고하곤 하던 이들도 있었다.


요즘에는 그런 이는 잘 없다.


마음이 잘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마음이 더 작아져서가 아니라, 마음이 어마어마하게 커졌기 때문이다.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를 우리가 듣지 못하는 이유와도 같을 것이다.


마음의 진화는 어마무시했다.


더욱더 거대한 것으로 마음은 인간의 하늘에 떠올라 있다.


한 폭의 그림이다.


그 그림을 우연찮게도 가만히 바라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조금 놀라기도 한다.


신기하다. 달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거대하게 떠있던 그것은 지구다.


그리고, 무려 움직인다.


움직인다. 실시간으로 움직인다. 구름이 움직이고, 물결도 움직인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람들이 움직인다.


살아 있다.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이 살아 있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경탄의 시선으로 계속 이동하다가 문득 익숙한 풍경에 눈이 머문다.


계속 보고 있으니, 움직이고 있는 것들 속에 움직이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것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시선을 더 가까이 밀착한다. 확대된다. 그 얼굴이 보인다.


경탄의 눈길로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거대한 기적같은 감동으로 나를 처음으로 알아보고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경외로웠다.


마음은 그림인데, 이 그림은 거울의 그림이다.


거울에 비친 것은 거울을 바라본 이의 모습.


그림의 거대함은 사용자의 거대함.


그것이 인간이었다.


내가 마음을 처음으로 들여다본 날, 나는 인간이 되었고, 인간의 거대함을 알았다.


내가 인간일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었다. 아주 엄청난 선물이었다. 이 생의 시작부터 그 선물을 받고 출발했던 것이다.


눈물은 흐르는데, 주먹은 쥐어진다.


유지되지 않고 흐르면서 힘은 더욱더 응집된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안 것이다.


바로 마음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럭셔리한 보물.


뚜껑을 열어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언제나 더욱 크고 자유로운 인간의 얼굴이, 바로 내가 비치기에, 그것은 럭셔리한 보물이다. 거울을 우주의 보물로 만드는 것은 그 사용자가 우주의 보물이라서다.


또한 나는 무엇을 얻었는가?


지구를 얻었다. 온세상을 다 얻었다.


지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 섬세한 생태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해할 최고급의 센서를 얻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과거의 기억쪼가리를 뒤지거나, 어린 시절 엄마에게 몇 번 따귀를 맞았는지를 세거나, 또는 흙투성이가 되어가며 무의식의 동굴이라는 곳을 포복으로 연신 두더지처럼 기어다니는 일을 더는 할 필요가 없어졌다.


아니 그것은 처음부터 할 필요가 없던 일이었다.


마음은 언제나 지금 내 앞에만 있었기 때문에.


지구 위에서 어딜 가나 우리의 눈앞에는 늘 지구가 있을 것처럼.


81억의 시대에, 이제 마음은 이런 것이다.


이런 것으로 다시 이해해야 한다. 마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창발해야 한다.


심리학은 마음에 대한 얘기. 마음 자체가 아니다.


마음이 빠르게 진화해간다면 심리학도 빠르게 그 묘사의 필치를 높일 필요가 있다.


81억의 심리학은 가속하는 심리학.


이것은 어쩌면 미래를 향한 일종의 예언적 작업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 밀착해있는 근미래다.


1980년대에 미래를 묘사하던 청사진들을 찾아보라.


지금 우리는 그것보다 더 놀라운 모습으로 살아간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었는데, 마음은 더 그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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