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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닫는마음씨 Jun 17. 2024

심리학 오마카세 #2

"마음에는 주어가 없다"




  잔을 먼저 엎어두고 말해보자.


  건배는 그 다음이다.


  일단 당신이 하는 말은 다 틀렸다.


  나에 대한.


  나에게 말하지 않고


  나에 대해 하는 그 모든 말은


  다 틀린 말이다.


  나는 당신의 대상이 아니다.


  나는 당신의 앞에 실제로 있는,


  결코 당신이 아니고,


  결코 당신이 알 수 없는,


  바로 타자다.


  지금 말하는 이 의미는, 마치 심리상담자를 찾아가 당신이 내가 살아온 인생에 대해 대체 뭘 아냐고, 그렇게 집과 회사와 애인 앞에서는 착한 척하느라 내지 못하는 성질을 상담사에게 대신 꼬라지부리고자 발화하는 그 언술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바로 그렇게 누군가를 자신의 도구로 대상화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함께하는 만찬을 망치게 된다는 말이다.


  왜 그런가? 도무지 왜 그런가?


  단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는 뜻이 아니다.


  대상화를 할수록 우리는 심대히 나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마음이라는 것에 관한 가장 가치있는 진술, 다른 모든 수상한 얘기들은 다 쓰레기통에 버리더라도, 이것만은 기억하고 있으면 평생을 건강한 존재로 살아가게 될 가장 핵심적인 이해.


  <마음에는 주어가 없다>


  <그러니 내가 하는 것이 내가 받게 되는 것이다>


  붓다도 말했다.


  착하게 살면 천국에 간다는 예수의 말은 그와 다른 유치한 종류의 것 같은가? 동일한 것이다. 그가 천국을 펼쳤으니, 그가 만든 천국이 그에게 오게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에는 더 직접적으로 이 <황금률>이 묘사된다. "무엇이든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


  그러나 이것이 대상을 대하는 또 다른 수단적 원리에 대한 애기가 아님을 대철학자 칸트는 정언명령으로 분명히 한다.


  이것을 심리학적 용어로는 진정성 또는 일치성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우리는 일치성으로 기억하는  좋다. 허구의 소설 속에서도 다들 자기가 진정하다고는 믿어 의심치 않으며 길길 날뛰기 때문이다. 일치성이라는 이름을 택하고 조금 진정하는  좋다.


  대접하는 자와 대접받는 자가 일치한다면


  그러면 마음에 주어가 없는 현실을 사는 것이다.


  상대하는 대상이 없으니 이것은 절대적 현실이다.


  그렇게 절대적으로 일치해 이제 힘차게 일어선 것의 이름을 말해보자.


  <나>


  <그것은 나다>


  '나에 대해' 말하고 있는 동안에는 모든 것은 대상화가 되어 우리는 타자를 잃고 결국 나를 잃는다.


  나는 타자 중의 타자


  지금 자기가 자기라고 생각하는 그것과는 가장 다른 것이며, 가장 알려지지 않은 것


  대상화를 하며 타자를 무시하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는 타자 중의 타자인 <나>를 반드시 잃고야 만다.


  나를 잃었으니, 우리는 반드시 틀린 것이다. 글러먹은 생이다.


  어떤 좋은 말을 하더라도, 나를 잃은 입장에서는, 나에게 그 좋은 것이 향하지 않는다. 좋은 것 하나 없는 삶인데 살아서 뭐하겠는가.


  그러니 나에 대해 당신이 하는 말은 다 틀렸다.


  <나에게 말해보라>


  <나에게 무엇을 주고 싶은지를>


  그러면 식탁 위에 접시들이 운반되어 온다. 어느덧 식탁이 가장 좋은 것들로 가득 찬다.


  나는 사랑받고, 인정받고, 칭찬받고, 존중되고, 용서되고, 소중히 여겨지고, 귀하게 모셔지는 그런 것


  이 오늘의 만찬은


  오직 나만을 위해 차려진 식탁이었던 것이다.


  그런 매일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식탁에 앉아 함께하는 일이라고는,


  나를 마시고, 나를 먹으며, 나를 기쁘게 나누는 그 일, 오직 그 일뿐


  그것이 우리가 식탁에 모이는 이유.


  이제 잔을 바로 세워 함께 드는 이유.


  <나를 위하여>


  당신이 처음 말해본 이 세상에서 가장 옳은 말.


  오랫동안 기다려온 <나>에게 이제는 들려주게 된 참말.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


  넘치는 기쁨이 넘치는 기쁨을,


  일치하는 것이 일치하는 것에 끌리며


  이제 우리는


  잔을 부딪치자


  주어가 아니라 목적어인


  <나를 위하여>


  마음의 목적은 언제나 나다.


  이제 우리는 찾은 것이다. 그걸 위한 식탁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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