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과 영성 #1

"거대한 코미디"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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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역사 자체가 짧기도 할 뿐더러, 심리학에서 영성과 관련된 주제를 다루게 된지도 고작해야 100년 남짓되어왔을 뿐입니다. 보다 노골적으로 영성이라는 개념이 심리학 분야와 밀착하게 된 것은 채 50년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심리학은 많은 일을 해냈습니다. 인간이 보편적인 차원에서 영위하는 그 모든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어떤 초월적 영역에서 작동하는 것이라고 가정된 그 영성이라는 것을 통째로 심리학 내에 포섭하는 일에 성공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영성이라고 말해온 묘하고도 모호한 개념들은 이제 심리학 내에서 다 설명가능합니다. 그것은 크게 두 범주를 갖습니다. 진지하게 고찰할 가치가 있는 몇몇의 것들과, 그 대부분은 거대한 농담에 가까운 것들입니다.


어쩌면 심리학은 "우리가 믿어온 그러한 영성은 없다."라고 말하기 위해, 또 그렇게 말할 때만을 위해 '영성'이라는 용어를 활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영성에 대한 이 관점은 비단 심리학의 렌즈를 통해서만 출현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영성의 비실재성 내지는 영성의 무효용성을 알리고 있는 것처럼만 보이는 이 거대한 코미디는 실은 영성 자신에 의해 생겨난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열렬하게 영성을 추구하는 소비자들 또 그 옹호자들에 의해 우리는 역설적으로 영성의 몰락을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멀리서 보면 재미있는 코미디이지만 가까이 가면 비극이기에, 건강한 사유를 하는 이라면 누구도 굳이 그 안에는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는 소재가 이제 영성입니다.


구질구질하고 통속적이며 비루한 어떤 맛. 비유하자면, 무척이나 촌스럽고 투박하게 차려 입은 이들이 자기들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1류 모델이라고 간주한 채 거드름을 피우며 자신이 주인공인 연극무대처럼 번화가를 활보하고 있는 어떤 저질스러운 처절함이 그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을 대신 부끄럽게 만들 때, 우리는 자연스레 '아, 영성...'이라고 연상하고야 맙니다.


파키스탄이나 티벳 민속의상 같은 것을 입고, 낙타뼈 액세서리를 한 채, 허리춤에는 타로카드를 차고, 점성술 차트를 들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아로마오일을 팔고 있다면, 그것은 '아, 영성...'입니다.


개량한복이나 요가복 등을 입고 단체로 앉아, 우주와 하나가 되거나 전생을 보겠다는 목적으로 모종의 기이한 비일상적 행동양식을 반복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 영성...'입니다.


인디언 북소리나 인도 전통 타악기의 소리가 크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사람들이 원을 그리면서 헐레벌떡 뛰어다니고, 집단가무를 하며, 그러다가 누워 데굴데굴 구르고 멍멍 짖기도 하다가, 다같이 모여 모래로 만다라를 그리고, 마지막에는 정상인인 척 눈을 감고 앉아 촛불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어떤 것을 통달한 듯한 표정연기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 영성...'입니다.


무슨 무협지에 나오는 사제관계를 연출하며, 바퀴벌레를 억지로 먹듯이 지금껏 대극의 반대편에서 외면해온 그 마음을 가슴안에 넣고 그 무게와 아픔을 통렬하게 느껴야 한다느니,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자기 안에 품어주는 진정한 자신이 되어야 한다느니 하는 일종의 가피학적 쾌락을 미필적 고의로 의도하는 성모 놀이 같은 것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 영성...'입니다.


이 전형적인 모습들은 심리학적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심리학적인 것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심리학은 영성과 관련된 이 모든 현상을 심리학의 이해 속에 담아내는 일에 성공했습니다.


이러한 영성 추구 내지 소비의 모습을 핵심적으로 설명하는 심리학의 용어는 바로 '열등감'입니다. 세간의 다른 모든 것으로 자신의 열등감을 보상하는 일에 실패하거나 좌절한 이들이, 결국에는 세간 너머에 있는 것으로 보상하기를 시도할 때 그 보상물의 이름이 바로 영성입니다.


웰우드가 제안한 '영적 우회(spiritual bypass)'라는 심리학적 개념은 이를 더 구체적으로 묘사해줍니다. 이것은 심리적으로 미성숙한 이들이 건강한 성숙의 과정을 통과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과정을 영성에 대한 추구로 회피하고자 하는 현상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이를테면 권위에 대한 열등감을 가진 이가 신비체험 등을 통해 경험한 자신의 상태를 그 무엇보다 우월한 권위의 증명으로 삼아 자신을 우월한 존재처럼 드높임으로써 세간을 무시하려 한다거나,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무력감이나 분노, 우울과 같은 실제적인 감정에 대해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나는 깨달은 사람이니 이 감정들에 영향받지 않아." "거대한 자기비움의 사랑으로 이 감정들을 모두 여여히 내가 품어주리라." 등과 같은 거짓초월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 다 이 영적우회의 모습들에 해당됩니다.


아들러의 경우라면 이것을 '우월 콤플렉스(superiority complex)'의 한 형태로 설명할 것입니다. 우월 콤플렉스는 열등감에 병적으로 사로잡힌 사람이 자기가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거짓 우월성의 신념을 만들어내어 지속하려는 모습을 뜻합니다. 이러한 경우 영성이란 거짓 우월성의 신념을 창출해내기 위한 도구적 소재로 기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웰우드의 진술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성에서 분리된 영성은 이념이 된다(Spirituality divorced from humanity becomes ideology)."


신념이란 개인 안에서 성격의 특성으로 자리잡은 이념입니다. 이념의 자기화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영성이 자신의 열등감을 보상하기 위한 이념이 되고, 나아가 자기 자신과 동일시한 신념으로까지 만들어지고 있을 때, 심리학은 결국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우리가 믿어온 그러한 영성은 없다."라고.


1980년대 심리학계에 출현한 '자아초월 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gy)'은 급격하게 그 세를 확장하며 이제는 주요한 심리학의 세력이 되어 있습니다. 자아초월 심리학의 주요연구분야란 지금 이 글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과 같은 심리학과 영성의 관계성입니다. 자아초월 심리학의 발전에 힘입어 우리는 영성이라는 주제를 정당한 심리학의 관심사로 다룰 수 있게 됨과 동시에, 그것이 실은 많은 경우 거대한 코미디에 불과했다는 사실 또한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자아초월 심리학 내부의 적지 않은 연구자들 또한 그들 자신이 그 코미디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희극입니다.


그러나 어떻든 우리는 과거의 어느 때보다 더 영성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조망을 손에 넣을 수 있었으며, 그것을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현실에 접촉된 보다 구체적인 소재로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점은 분명한 자아초월 심리학의 성과입니다.


크게 보면 다 종교심리학의 범주 속에 들어가는 일이겠지만, 자아초월 심리학은 그 중에서 더욱 영성이라는 주제에 특화되어 전개되고 있는 분과입니다. 영성에 대한 심리학, 곧 '영성심리학'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근대를 거치며 기존의 종교들이 그 생명력을 잃거나, 또는 이념화됨으로써 몰락해버린 현실은 우리에게 '무종교 시대'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은 니체가 신을 죽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인간이 잃어버린 신성을 찾고자 펼쳐진 것이 무종교 시대입니다.


무종교 시대의 다른 이름은 영성의 시대입니다.


여기에서 영성은 가장 본래적이면서 중립적인 의미로 '개인적 종교성'이라는 정의를 갖습니다. 더는 개인들이 보편적 이념에 자기 자신을 공산품처럼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의미와 자기 존재의 대체불가능성을 스스로 물으며 떠나게 된 그 일을 실존적 운동이라고 부릅니다. 누군가가 실존주의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인간이 자신의 고유한 실존을 회복하고자 하던 이 운동은 인간의 모든 영토에서 시작되고야 말았습니다.


종교에 대해서도 동일한 운동은 펼쳐졌습니다. 더는 이념화된 종교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스스로가 직접 종교적 탐구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이 직접 신성과 접촉하겠다는 실존주의적 종교성을 함축하는 동시에, 동일한 의도를 가진 고전적 기획이었던 '신비주의'라는 이름을 되살려냈습니다. 개인적 종교성의 출현이며, 우리가 어떻게 영성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는가의 그 내막입니다.


누구의 도움없이 혼자서 직접, 또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려고 시도하다보면, 다양한 코미디의 상황들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이들이 많아진다면, 이것은 거대한 코미디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웃지만, 마냥 조롱조로 웃고 있지만은 않으며 그 속에서 어떤 갸륵함과 대견함을 봅니다. 진지한 몇몇의 어떤 것이 분명 그 안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치심이야말로 참된 영적 현상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던 이 거대한 코미디 앞에 스스로 몹시 부끄러워하며, 그만큼 초월과 성숙을 위한 양분을 우리 자신에게 공급합니다. 우리 자신이 마침내는 피어날 수 있도록.


유치하지 않고, 난삽하게 저질스럽지 않으며, 훨씬 더 거대한 것으로. 또 자연스럽고 아주 멋진 것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그토록 소망하던 것으로.


심리학은 바로 이 가능성을 위해 영성을 그 자신 안에 전부 다 담아내고자 했던 것이며, 결국 그 일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코미디를 그 자신 안에 품은 인간은 위대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가장 가까이에서, 바로 그 자신의 일로서 비극을 관통해내겠다는 저 신의 아들과도 같은 신성한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신성함과 닮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그 갸륵하고 대견한 마음을 담아, 심리학은 지금 영성을 그 자신의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온 우주가 기뻐하며 즐거워할 가장 온전한 코미디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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