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호흡"
나에게 하나의 수수께끼는 왜 그대는 하드코어하게 살고 있는가였다.
가피학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 서로를 깨물고, 공격하고, 상처주고, 착취하고, 약탈하고, 힘들게 만들고, 붙잡고 늘어지고, 원망하고, 증오하고, 그러다가 지친 나머지 이전보다는 나은 것처럼 보이는 새로운 관계를 찾아낸 그대는, 그 관계 속에서 이전과 완벽하게 같은 일을 다시금 반복해왔다. 그대의 인생은 하드코어였다.
이 우주적인 수수께끼에 관해, 나는 이제야 알았다.
그대가 하드코어하게 산 결과로 창조된 것이 무엇인지를 나는 이제야 알았다.
그것은 바로 거센 숨이었다.
필요한 것이 창조된다. 그대는 거센 숨이 필요했던 것이리라.
거센 숨이 필요했던 그대는, 숨이 막힌 그대였으리라. 거센 숨으로 막힌 숨통을 트이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대는 그저 숨쉬고 싶어서 그 모든 하드코어한 현실을 창조했던 것이리라.
그대여, 그런데 그대는 왜 늘 그대의 삶에서 숨이 막히는지를 알고 있는가?
그대 스스로가 가슴을 조이고 있는 까닭이다.
스스로를 잘못한 자로서, 늘 부족하고 못난 자로서, 그 결과 반드시 버려지고 살해될 자로서 심판하고, 자책하며, 채찍질 하고 있기 때문에, 그대는 늘 가슴이 조이고 숨통이 막힌다.
그대의 현실은 그러했다.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절대로 되어선 안되는 것을 되지 않기 위해서만 살아온 현실이었다. 마이너스에서 가까스로 제로가 되는 것이 그대의 유일한 목표였고, 잘못한 자만은 되지 않는 것이 그대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불에 달구어진 무수한 대못들이 그대의 가슴을 겨냥하며 날아오던 그 모든 힘겨운 레이스의 끝에서, 이제 그대는 알 수 있다.
그대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대는 단지 몰랐던 것뿐이다.
그대는 단지 숨쉬는 법을 몰랐던 것뿐이다.
그대가 필요한 것은 하드코어한 경험이 아니라, 단지 숨쉬는 법일 뿐이다.
숨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그동안 그대가 숨을 잘 못 쉬어왔다는 것을 그저 느끼고 이해하면 된다. 그래서 거센 숨이 필요했다는 것을 이해하면 된다.
어쩌면 그대는 숨을 못 쉬게 된 경험을 했는지도 모른다.
마치 누군가가 그대를 죽이려 했던 경험 속에서, 그대는 숨이 가빴고, 죽을 것 같았고, 너무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잔인한 경험 속에서, 오히려 그대는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에, 태어나선 안되는 존재였기 때문에 이러한 처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대여, 그대의 가슴이 너무 아프다. 나는 그대가 아프다.
그대는 아팠던 것이다. 아픈데도, 아픈 것이 당연하다고, 이렇게 못된 애는 더 아파야 한다고 자기 자신을 처벌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그대는 계속 아프다.
아파서 숨이 막힌다. 숨이 안 쉬어진다. 그래서 거센 숨이 필요하다. 거센 숨을 만들어줄 하드코어한 경험이 필요하다.
그러나 하드코어한 경험을 하는만큼, 그대는 그대 자신을 더욱 잘못한 자로 느끼게 되며, 그대의 자책과 자기혐오는 더욱 커져만 갔다. 그래서 더욱 숨이 막혔고, 더욱 거센 숨이 필요했다. 더욱 강한 하드코어의 현실이 필요했고, 그러한만큼 그대는 더욱 무거운 죄인이 되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대는 끝없는 지옥의 레이스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대여, 이제는 안심해도 된다.
그대를 죽이려던 자는 이제 없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그대의 가슴을 찌르려 하지 않는다. 그대의 얼굴에 베개를 덮으려 하지 않는다. 그대를 발가벗겨 한겨울의 공터로 내쫓으려 하지 않는다.
그대는 많이 서러웠다.
자신이 잘못한 자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죽임당할까봐 그대 스스로를 죄인으로 부르는 데 동의했지만, 그대는 정말로는 많이 서러웠다. 그대에게 아무 잘못이 없다는 사실을 그대는 정말로는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도 늘 죽음의 협박에 시달려야만 하는 잔인한 현실이 그대는 참 많이 서러웠다.
그런데 그대여, 그대도 알고 있는가?
착한 그대가 얼마나 서럽고 억울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며, 언제나 그대의 편에 함께 서있던 이가 단 하나 있었다는 분명한 사실을 그대는 알고 있는가?
그것은 그대의 숨이다. 그대의 호흡이다.
모든 세상이 그대가 죽어야 한다며, 매서운 눈빛과 최대의 악의를 그대에게로 향해 그대의 숨통이 막히게 할 때에도, 그대의 호흡만은 단호하게 그대를 변호했다.
누구도 이 아이를 죽일 수 없다며, 아무 잘못이 없는 이 아이는 절대로 죽어선 안된다며, 그대의 호흡만은 어떻게든 반드시 그대를 살리고자 했다. 그대를 살림으로써, 그대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온 세상에 증명하려 했다. 장판파에서 홀로 무쌍을 난무한 조자룡처럼, 그대의 호흡만은 온 세상에 맞서 그대를 지키려 했다.
그대가 스스로 죽으려고 했던 그 순간조차도, 그대의 호흡은 죽어선 안된다고 그대에게 절실하게 호소해왔다. 그대는 살아야 한다고, 살아서 행복해야 하다고, 반드시 자신이 살리겠다고, 그대의 호흡은 단 한 번도 그대를 놓은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그대를 배신한 적이 없다.
그대의 호흡은 영원한 그대의 편이었다.
그래서 그대는 이제 안다.
숨쉬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그대의 호흡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호흡에게 그대 자신을 내맡긴다는 것이다. 영원한 그대의 편에게 그대 자신을 개방한다는 것이다.
그대는 그저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 내가 숨을 잘 못 쉬어왔구나."
"아, 내가 그동안 숨쉬기 힘든 세상에서 살았구나."
"아, 내가 계속 내 숨통을 조이고 있었구나."
막혔던 현실에 대한 자각과 함께, 길은 다시 열린다. 숨구멍이 트인다. 호흡이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편하게 다시 숨쉴 수 있게 된다. 삶이 다시 흐른다.
그동안 그대는 막힌 현실을 해소해줄 대상을 찾아 왔다. 스스로가 틀어막은 숨구멍을 열어줄 하드코어한 대상을 찾아, 그 대상이 제공해줄 하드코어한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거센 숨으로 삶을 회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한만큼, 그대를 숨쉬게 해주는 것만 같은 하드코어한 대상은 그대를 지배하는 그대의 하나님이 되었고, 곧 그대를 착취하는 그대의 고통이 되었다.
그대는 이제 안다. 이 모든 고통의 이유를.
그대는 이제 안다. 그대가 정말로 신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그대가 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그 신뢰를 확인하면 된다.
그저 숨쉬면 된다. 누구도 그대의 숨을 막지 않는다. 가장 자유롭고 편하게 숨쉬어도 된다. 그대의 호흡을 가장 가득히 누려도 된다.
그대의 호흡이 지금 그대를 살리고 있는 중이다. 그대의 호흡이 지금 그대에게 말하고 있는 중이다.
"네가 살아서 너무 좋다. 네가 살아서 또 행복했으면 좋겠다. 자꾸자꾸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대가 그저 숨쉴 때, 그대는 그대의 호흡이 전하는 가장 진실된 축복의 기도를 듣고 있는 것이다.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행복하라. 그대가 이 세상에 태어난 바로 그 이유다.
바이바이, 하드코어 인생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