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의 조화로움

"마음이 맞다"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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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실존에 대해 갖는 아주 큰 오해 중 하나는, 실존하는 삶을 살면 그것이 전체의 조화를 깨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대한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실존은 조화를 깨는 것이 아니라 조화롭게 한다.


나는 그저 내 삶을 사는 것뿐인데, 어느 순간 나로 인해 주변의 모든 것이 조화롭게 되어 있다. 늘 주변의 눈치만 보며 인위적으로 자기 주변을 조화롭게 하려는 비효율적이고 심지어는 무용하기까지 한 여타의 노력이 무색해진다. 잉여의 힘을 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조화로움이 생겨난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할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화라는 단어가 의미하고자 하는 현실이 정말로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concord라는 영단어는 이 조화의 의미를 아주 잘 나타낸다.


이 단어는 con + cord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 con의 어원적 의미는 together이다. 그리고 cord의 어원적 의미는 heart다. 이러한 의미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자면 '하나로 함께인 마음'이다.


이처럼 concord는 마음이 맞는 현실을 묘사하는 단어다. 그리고 이것이 실제적인 조화의 의미다. 조화는 구성원들이 각각의 부속품들로 모여 커다란 전체의 구조를 이루는 조합이 아니다. 또한 각 요소의 형식이 임의적인 기준선에 의해 똑같이 평면적인 형식으로 환원되어 이루는 평화도 아니다.


조화는 구조와 형식에 대한 것이 아니다. 조화는 오로지 마음에 대한 것이다.


heart는 마음이라고 하는 우리말을 그나마 잘 묘사할 수 있는 영단어다. 우리가 곧잘 마음이라고 번역하곤 하는 mind는 heart에서 파생된 것이다. 조화로운 heart가 다소 분절되어 생겨난 것이 mind라고 할 수 있다. 일치하여 잘 맞았던 것이 분리되어 잘 맞지 않게 된 결과물이다.


그래서 mind는 사람마다 다 다르게 경험된다. 인지적 지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인지적 지도의 통합을 이루는 일이 또한 조화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동일성을 강요하는 제국주의다.


heart의 신비는 우리 각자가 가진 지도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 지도에 따라 다른 지형에 위치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일치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남녀노소, 대소경중, 선악미추의 그 모든 상대적 차이를 넘어, 마음은 절대적으로 맞을 수 있다.


이것을 수신기와 주파수의 비유로도 말할 수 있다. 각각의 수신기는 다르지만 그들이 소통하고자 할 때 수신하는 주파수는 같다. 주파수가 맞아야 서로 연결된다.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있을 때 밤을 지새워 끝없이 흘러나오던 대화의 기쁨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 장면은 너무나 조화로웠다.


이처럼 조화롭다는 것은 우리를 내적으로 충만하게 만드는 기쁨의 요소다. 그래서 단지 외적인 구조와 형식이 모나지 않게 잘 들어맞는다고 해서 그것이 조화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은 기만의 조합이며, 거짓의 평화다.


정말로 조화롭기 위해서는 마음이 맞아야 한다. 그리고 마음이 맞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이 맞아야 한다. 이것은 말장난이 아니다. 상세히 풀어쓰자면, 하나로 마음이 맞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이 맞아야(right) 한다.


내 마음이 맞아야 한다는 것은, 첫 번째로 우리에게 경험되는 마음을 내 마음으로 맞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외부의 문제가 아니다. 내 자신이다.


두 번째로, 그러한 내 마음은 틀린 마음이 아니다. 어떠한 마음이든 올바른(right) 마음이다. 정당한(right) 마음이다. 절대적으로 맞는(right) 마음이다. 이미 상대적인 형상으로 굴절된 mind가 그러하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heart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내 심장은 절대적으로 올바르게 박동한다. 내 가슴은 절대적으로 정당하게 감동한다. 내 마음은 절대적으로 맞게 활동한다.


이것을 아주 쉽게 "마음은 온전하다."라는 언술로 묘사하곤 한다. 그러나 이 언술이 현실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이러한 언술을 채택하는 이들이 마음을 mind로 생각하며 현실에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mind는 온전하지 않다. 그것은 온전한 형상이 아니라 분절된 형상이다. 통째의 것이 아니라 부분이 된 것이다. 그렇게 애초 온전하지 않은 것을 온전하다고 하고 있으니, 이는 그저 안 되는 것 앞에 억지로 자기최면을 거는 주술에 불과하게 된다.


mind의 언어는 생각이다. 반면 heart의 언어는 느낌이다.


삶에서 우리 자신이 우리 앞에 다가오는 사건들을 체험할 때 거기에서 알려지는 것이 느낌이다. 그 느낌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아주 소중하게 여기며, 내밀한 느낌이 이끄는대로 우리 자신의 움직임을 적극 허용할수록, 이 삶이 바로 나의 삶이라는 충만한 실감과 함께 그 실감에서 야기된 든든한 힘이 나에게 밀려온다. 그렇게 마음을 신뢰할수록 내 자신에 대한 신뢰는 더욱 커진다.


바로 이러한 모습을 실존적으로 사는 모습이라고 말한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사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것은, 전술했듯이 heart의 언어인 느낌을 따라 heart의 원리로 산다는 것이다. 즉, heart의 원리가 맞다는 것을, 바로 마음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며 사는 것이다.


마음이 맞게 살면, 마음이 맞게 된다.


내 마음이 맞게 살면, 하나로 마음이 맞게 된다.


조화된다.


나는 그저 내 삶을 살았을 뿐인데, 조화로움이 이미 이루어져 있다.


heart의 신비다.


heart의 실존은 heart의 신비다.


실존은 신비다.


나는 신비다.


조화로움 속에서 피어난 꽃이며, 그 꽃이 피어낸 조화로움이다.


마음이 맞아서 생겨난, 나라는 놀라운 조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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