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독재와 천재신화

"내가 되지 못한 꿈"

by 깨닫는마음씨




대중독재사회가 될수록 그 사회에서 소비되는 천재신화도 커진다.


"쟤네 천재잖아요. 변하지 말고 지금 모습대로만 해나갔으면."

"천재들아, 하고 싶은 거 다해. 우리는 너희를 무조건적으로 믿어."

"저 나이에 이런 천재성이 있네요. 우리가 지켜줘야죠."


아주 흔하게는, 어린 나이의 연예인들, 유튜브스타들, SNS 재롱둥이들에게 자주 헌사되는 말들이다. 이 말들 속에는 천재신화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여기에서 천재란 일단 경외의 대상이 아니다.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친화적 평범성이 먼저 천재의 조건을 구성한다. 그리고는 그처럼 평범하나 원석처럼 빛을 발하는 이가 그 천재성을 알아보고 지지하는 대중의 도움을 통해 자신의 천재성을 한껏 개화하게 되며, 대중은 그렇게 자신이 키워낸 천재를 통해 마치 모나리자를 그린 다빈치와 같은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 이야기가 바로 천재신화다.


이 천재신화의 내러티브에서 천재는 결코 대중의 도움없이는 천재가 될 수 없다. 천재성을 규정하는 것은 바로 대중성이다. 대중을 결코 넘어서지 않고, 대중에게 예측가능하며, 대중 안에 불편함없이 포섭되는 성질만이 천재성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천재성을 대중성 안에 속박하고 싶어하는 이러한 구조에는 분명 대중의 꿈이 있다.


천재를 천재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진, 즉 천재보다 더 대단한 것이 되려고 하는 꿈이다. 우리 대중의 힘으로 천재를 만들어냈어, 라고 벅차게 외치고 싶어하는 현대판 프랑켄슈타인의 꿈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인조인간을 만들어냄으로써 되고 싶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신이다.


이와 같이, 대중은 비교적 높은 위상을 지닌 천재라고 하는 것을 설정함으로써, 그 천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신의 위상을 그보다 높은 위치로 상격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개인을 천재로 승리시킬 수도 있고 범재로 패배시킬 수도 있는 권력은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담보된다. 개인을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전부 그 손바닥 위에 있는 것처럼 행세하는 대중은 본격적으로 신이 된다.


그리고 이제 정확하게 신의 폭력을 답습한다.


개인을 지지하는 집단의 진리가 있어야만 개인의 존재가 비로소 정당화될 수 있다는듯이,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의 온전성을 무시하고 훼손하려는 침략과 약탈이 공고화된다.


대중독재에 의해 실현되는 전체주의의 왕국이 출현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신과 같이 왕이라는 실체는 없다. 그러나 지배는 이루어진다.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말들만이 집단지성 내지 민심이라는 이름으로 면피되어 허공에 뿌려진다. 개인의 숨통을 조이는 유독한 가스처럼 살포된다. 마스크도 소용없다. 우리가 너를 스타로 만들어주겠다는데 내밀한 곳을 가리는 천조각을 걸치다니 아니될 말이다.


이렇게 대중은 개인에게 그루밍의 폭력을 가한다. 개인은 개인성을 상실할 위협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길들여진다.


이것은 시대적 퇴행이다. 개인이 없으면 현대라는 시대도 없다. 여기에서 개인이라고 하는 것은 집단의 반대말이 아니다. 그것은 개체다. 개인은 개체도 집단도 아닌 전인적인 것이다. 오롯이 그 자신이 배경으로 갖고 있는 고유성을 통해 인간의 보편성을 알리는 존재방식이다.


이를 쉽게 말하면, 현대라고 하는 시대는 개인이 지금 생긴 그 모습으로 이미 인간의 대표자로서의 위상을 획득하고 있다는 사실을 개방한 시대라는 것이다. 고유한 자신 외에 달리 더 되어야 할 위대한 인간의 모습 같은 것도 없고, 자신을 버리고 취해야 할 이상적인 인간상 같은 것 또한 없다. 즉, 개인은 있는 그 자체로 결핍되지 않은 정당한 존재다.


이 개인의 면모를 드러내지 못한 일종의 좌절이 바로 개체다. 개체는 늘 자신이 부족하다는 결핍감에 시달린다. 그래서 집단을 추구한다. 집단 속에서 자신의 결핍이 보완되고 해소되기를 꿈꾼다.


그렇게 개체들이 모여 집단이 되고, 익명성을 큰 특징으로 갖는 대중이 되어, 결국에는 개인을 좌지우지하는 신적 세력으로 작동하기에 이른다. 자기에게 좌절의 이유가 된 개인이라고 하는 것을 역으로 좌절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개인이라는 것은 나라는 것이다.


나는 모든 인간의 꿈이다.


모든 인간은 내 자신이기를 꿈꾼다.


단 1분을 살더라도, 나로 살다가 죽기를 소망한다.


그런데 이 소망의 좌절이, 동일한 소망의 좌절을 연쇄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천재를 지지하여 이 소망을 이루도록 돕는 것 같은 그림을 취하지만, 사실 대중이 이끈 그 결과는 나의 상실이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 번째는 특별한 천재가 되어야만 내 자신일 수 있다는 착각을 강화하고 있는 까닭이며, 두 번째는 나라고 하는 것이 다른 이들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 공예품이라는 오해를 강화하고 있는 까닭이다.


나는 특별한 연예인이 아니어도 나인 자체로 이미 특별하며, 또한 나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스스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속성이다. 이 속성을 눈치챈 이가 그 순간 나다. 나는 그렇게 발견된다.


나는 신화가 아니다.


나는 탈신화다.


나는 즉 사실이다.


해가 동쪽에서 뜨고,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일과 같은 종류의, 대중과는 전적으로 무관하게 스스로 온전한 사실이다.


스스로가 이처럼 이미 온전한 나라는 것을 신뢰하지 못할 때, 개인으로 드러나지 못한 좌절이 발생하는 것이다. 나를 가장 신뢰하지 못해 끝내는 모든 좌절을 낳는 것, 그것이 대중이다. 천재신화는 다른 것이 아닌 좌절의 결과다. 그리고 이 좌절의 결과로 이루어진 천재신화의 창조에는 좌절의 원인이 된 또 다른 오래된 신화가 기능한다.


그 신화의 이름은 바로 양육신화다.


개인이 그 존재를 꽃피우기 위해서는 엄마가 필요하다는 내러티브의 신화다.


그래서 천재신화는, 현재 자신을 보잘 것 없게 경험하는 이가 엄마의 부재를 그 이유로 상정한 끝에, 자기가 받지 못한 그 엄마의 서비스를 이제는 자기가 엄마 같은 입장이 되어 천재를 지지하는 형태로 제공함으로써, 자신의 좌절을 보상하려고 만들어진 것이다.


즉, 천재신화는 양육신화의 변주다. 실행의 주체가 엄마에서 대중이 된 것뿐이다. 천재신화를 소비하고자 하는 대중은 천재에 대해 유사엄마처럼 행위한다. 자기가 받고 싶었던 것을 자기가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러한 신화를 소비해봤자 갈증은 사라지지 않고 결핍은 채워지지 않는다.


헌신의 역할이 기대되는 엄마 역시도 실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꽃피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도 나이고 싶었다.


천재아이를 위한 헌신자가 아니라,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이 우주에서 가장 고유한 내 자신이고 싶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장 사랑스러운 존재이고 싶었다.


당연하다. 나는 모든 인간의 꿈인 까닭이다. 엄마도 나를 꿈꾼다. 이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존재가 스스로 꽃피는 이 나라는 사실 위에 자꾸 신화적 서사구조를 입힘으로써 모든 것이 착각된다.


사람들은 점점 더 자기 존재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어 엄마 같은 헌신자만을 찾아 부른다. 각종 미디어에서 반듯한 모범생처럼 또는 귀여운 재간둥이처럼 엄마가 좋아할 법한 학예회를 펼치며 이 지난한 쇼의 관객이자 스폰서로 엄마가 등장해주기를 학수고대한다.


실존적 부조리극인 '고도를 기다리며'와 흡사한 상황이다.


이처럼 무대 위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심지어는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허기는 더해간다. 마음은 공허해진다.


스스로 존재할 때만이 채워질 수 있는 존재이기에, 엄마의 양육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착각을 믿는 동안에는 끝없이 존재의 결핍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딱 맞을 것 같은 대상을 찾아 헤매는 이는 오직 스스로의 존재로만 채워질 수 있다. 이것은 존재의 역설이다.


천재로 만들어줄 엄마를 찾는 아이에게서나, 천재로 만들어질 아이를 찾는 엄마에게서나, 발견되어야 하는 것은 나다. 그 자신이 다른 대상에게 훌륭한 어떤 가치를 인정받지 않아도, 얼마나 스스로 어엿한지에 대한 사실이다.


때문에 나라고 하는 이 사실은 "인간은 다른 이들에게 끝없이 자기 존재를 확인받아야만 한다." 또는 "인간은 세상에 자기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만 한다." 등과 같은 착각의 신화들을 추구하는 일을 기각함으로써 발견된다. "과거의 고통을 이겨내고 이제는 사람들에게 널리 좋은 영향을 끼치는 역사적 인물이 되었어."라며 남들에게 악착같이 자기 자아의 신화를 전도하려는 의도를 포기함으로써 알려진다.


천재와 양육의 두 개념이 연합된 그 무수한 대중신화들이 쭉정이처럼 걷어질 때, 나는 원래 그러했듯이 늘 이미 그 자리에 있다.


나를 아직 알지 못해 나의 부재를 경험하던 이들이 그토록 열렬히 나를 대신할 천재신화를 소비했구나, 그 가공의 발명품이 나라고, 너도 그렇게 믿어야 한다며, 그래야 그 문예창작물이 진짜 같은 권위를 갖는다며, 자기 자신을 속이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독재를 했구나, 나는 내가 되지 못한 꿈이 달려온 그 숨가쁜 시간의 설움을 알아보며, 이제 내가 여기에 있다고 조용히 알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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