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은 시간을 사는 존재

"삶은 이야기가 아니다"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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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야기가 된 삶이 있다면 그것은 이제 삶이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가 자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정체성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마인드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수용전념치료(ACT: 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의 창시자인 헤이스의 책은 재미가 크진 않지만 제목을 잘 지었습니다.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Get Out of Your Mind and Into Your Life)』


헤이스가 실존심리학자는 아니지만, 이 핵심적인 문구는 실존심리학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대변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음이라고 하는 이야기에서 빠져나와, 삶이라고 하는 새로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야기에서 나와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삶은 순도 100%의 사실입니다. 허구와 사실이 합쳐진 통합물이 삶이 아닙니다.


때문에 삶을 산다는 것은, 사실적인 삶에 대해 우리가 허구의 이야기를 적용함으로써 사실과 허구의 공동작업을 이루는 일이 아닙니다.


실존철학자들 그리고 실존심리학자들은 아주 간단한 방식으로 이러한 착각을 해체합니다.


"어, 너 죽어."


"삶에 대해 이야기 백날 들이대봐. 너 안 죽나."


"사실에 대해 허구 백날 들이대봐. 니가 사랑하는 사람 안 죽나."


실존철학자들과 실존심리학자들의 대선배라고 할 수 있는, 인류의 가장 아름다운 보물이었던 붓다의 예수의 목소리도 이에 따라 결국 이것 하나입니다.


"제발 이야기로 한 번뿐인 당신의 인생을 낭비하지 마세요."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Get Out of Your Mind and Into Your Life).'라고 말하는 이 표어의 핵심적인 의미입니다.


여기에서 서로 대조를 이루는 표현인 마인드(mind)와 라이프(life) 중 불교에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후자입니다. 하이데거는 이를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실존심리학에서는 마음을 존재로 이해합니다.


마음은 마인드가 아닙니다.


그와 같이, 존재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야기로 구성된 자아 및 정체성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은 시간 앞에 무너집니다. 시간은 이들에게 분명 적대적인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나 존재는 시간을 적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존재는 시간으로 삽니다.


존재가 시간하고, 시간이 존재하는 것이 삶입니다.


우리를 개인으로 개별화시키는 것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쓴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시간입니다. 시간에 의해 펼쳐지는 삶과 죽음의 문제만이 우리를 개별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서 빠져나와 삶 속으로 들어가라.'라는 말은 다시 한 번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너의 시간을 살아라."


자기라고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느라 시간을 버리지 말고, 시간을 살아야 합니다. 시간과 적대하지 말고, 시간과 친해져야 합니다.


시간을 사는 것이 사실을 사는 것입니다.


시간을 사는 존재를 실존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을 산 존재의 자취가 역사입니다.


역사는 물론 이야기입니다. 시간순에 따라 재배열되고 재구성된 화석의 서사입니다.


그래서 그 모든 역사는 사실 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모든 개인적 서사는 사실 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존재는 이미 그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있습니다.


나로서.


존재는 실존합니다.


살아 있는 삶입니다.


반복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 번뿐인 나의 시간입니다.


나는 그렇게 나의 시간을 사는 존재로서만 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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