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의 권위를 알아보자"
누구나 기타를 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커트 코베인처럼 누구나 작가를 할 수 있다.
작가는 신적인 그 무엇이 아니다. 인생에 대해 더 심오하게 알고 있는 이도 아니며, 더 진정하게 살고 있는 이도 아니다.
볼링 같은 것이다. 볼링을 한다고 우리의 인생이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며, 볼링을 하지 않는다고 우리의 인생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라며 강권하는 일종의 작가전체주의는 작가와 이야기라고 하는 것을 신격화하려는 의도에 불과하다. 이 의도는 작가를 자임하는 이가 남들보다 먼저 작가의 입지를 얻은 자신의 권위를 높이거나 최소 유지하고 싶기에 생겨나는 의도일 뿐이다.
작가는 필수재가 아니며 이야기 또한 필수재가 아니다.
마치 특권계급인 것처럼 자기를 우상화하고 있는 작가들이나 그렇게 말한다.
그냥 유희재며 취미활동이다.
그래서 참말 좋은 것이다. 즐거우면 하고, 관심이 없으면 하지 않아도 우리의 인생에 단 1mg도 영향을 주지 않는, 안전하며 재미있는 것이다.
반면,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 어떻게든 정보들을 취합해 그럴듯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자기계발을 하고, 그만큼 남의 이야기도 잘 들어줘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 속에서 피로만 쌓아가는 현실은 대단히 낭비적이다.
저마다 개인미디어의 주인공이 되고, 연예인이 되고, 작가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이 세상에서 낙오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 생각은 착각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야 우리의 인생이 의미있어지는 것이 아니다.
방점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이야기를 중요한 것처럼 대하니 이야기가 의미있어지는 것이고, 작가를 중요한 것처럼 대하니 그것이 의미있어지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존재하기에 그 모든 것이 의미있어진다.
고로, 이 우주에서 유일하게 의미있는 것은 우리 자신의 존재뿐이다.
나머지는 다 여흥일 뿐이다.
여흥에 비장한 일도, 심각한 일도, 목숨거는 일도, 근본적으로는 다 코미디다.
혹자는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존재를 위해 이야기를 쓰고 소비한다구!"
존재가 무엇인지 모를 때 하게 되는 전형적인 말이다.
우리 자신의 존재를 마치 그 앞에서 계속 딸랑이를 흔들어주며 까르르 충족시켜주어야 하는 유아처럼 착각하고 있을 때나 하게 되는 소리다.
굳이 말하자면, 우리가 존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우리를 위해 있는 것이다.
존재하기에 이 모든 일이 가능하다.
작가가 자신이 제일 권위있는 것처럼 언어로 모래놀이를 할 수 있는 것도 그가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고로, 이 세상에서 가장 권위있는 것은 존재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위에만 있으면 가장 권위있는 자리에 있는 것이다.
반석과도 같다. 흔들리지 않고 휘청이지 않는 것이 존재의 자리다.
그러니 모든 것이 든든하게 그 위에서 놀 수 있다. 여흥을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신명나게 한판 언어놀이를 펼쳐서,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 마당극을 펼쳐서, 우리가 이 존재의 터전을 함께 한번 다져보세!"
이러한 현실은 애초 성립되지도 않고 작동하지도 않는다.
이와 같은 잉여의 행위를 하지 않아도, 이미 가장 반석인 그 자리다. 가감되지도 않고, 가감할 필요성도 없다.
셈을 하며 어렵게 가야 할 것이 아니라, 쉽게 가야 한다.
"그럼 그렇게 쉬운 길이 있으면 잘난 척하지 말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줘보라구욧!"
이것은 질문이 잘못되었다.
이러한 질문은 이야기의 작법에 빠져있을 때 나오는 질문방식이다.
올바른 모범적 이야기만 알려주면 그대로 실천할테니 제발 그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는 일이다.
세상을 이야기로 보는 일을 멈추면 이러한 질문도 멈춘다. 그리고 이야기의 작법과는 다르게, 숨겨진 것은 정말로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이내 알게 된다.
정말로 좋은 것은 아무 것도 숨겨져 있지 않다.
이야기 속에 숨겨져 있지 않다.
그냥 눈앞에 있다.
당신의 시선 속에 다 담겨 있다.
당신이 얼마나 이 세상을 이야기없이 투명하게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있는지는 눈앞을 비추는 그 시선 속에 환히 드러나 있다.
당신의 그 사랑만 알면 된다.
사랑은 존재의 숨결이다.
그냥 숨쉬어보라.
당신의 바로 눈앞의 코끝에서 일어나는 그 숨결이, 존재의 그 호흡이 있어서, 당신이 누릴 수 있는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
당신이 살아서 존재하기에, 이 모든 여흥이 가능하다. 안전하고, 또 재미있게.
당신이 존재한다는 사실, 이것보다 더 권위있는 사실은 아무 것도 없다.
우주는 다 알아보니, 이제 당신만 자신을 알아보면 된다.
그러면 여흥은 계속된다.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작가를 상담사로, 이야기를 심리학으로 바꿔 읽으면, 당신의 권위는 더 굳건해지며, 당신의 여흥은 더 감미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