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자의 역할: 당신의 특별함을 실증하며"
아, 우리는 특별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의 귀에는 이러한 말이 자주 들려온다.
"아무도 듣지 않았던 당신의 특별한 이야기, 이제 제가 듣겠습니다."
이것은 상담자의 말인가? 아니다. 이것은 보험회사 광고 카피다. 혹은 갬성연예인의 토크콘서트 포스터 문구다. 혹은 SNS에서 활동하는 자칭 심리전문가들의 영업 멘트다. 상담자는 아니다. 상담자는 이러한 역할 속에 있지 않다.
무엇이 상담자의 역할이 아닌지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가장 먼저 상담자는 마법사가 아니다. 내담자의 문제를 놀랍고 신비한 이야기들로 요리조리 둘리처럼 현명하게 풀어내주는 대천재 재간둥이 꼬마마법사가 아니다. 상담자는 특히 초라한 소재를 금으로 바꾸어내는 연금술사만은 절대 아니다. 진심으로 이것만은 절대 아니다. 가장 아니다. 이 의미는 잠시 후에 자세히 말하게 될 것이다.
상담자는 기술자가 아니다. 며느리도 모르는 마음의 핵심적인 원리를 알아 그것을 언어적 기술과 신체적 반응으로 적용해 내담자의 문제를 유능하게 해결해주는 종합설비 기술자가 아니다.
상담자는 '우리들의 친절한 이웃'이 아니다. 곱고 선량한 아이들에게 자상하게 웃어주며 빵꾸를 때워주는 맥가이버 같은 동네 자전거가게 주인이 아니다. 경섭이와 철민이가 싸우면 그 아이들이 실은 서로에 대해 얼마나 온전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지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솔로몬이 아니며, 마음들이 하나같이 참 이토록 아름답다는 사실에 커피 한 잔을 들고 저녁놀을 보며 미소짓는 황희 정승이 아니다.
상담자는 약장수가 아니다. 아이들의 중2병이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도록 환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초등학교 앞 약장수가 아니다. O링 테스트처럼 아이 한 명을 앞으로 불러 팔을 수평으로 들게 한 뒤, 진실이면 자세가 유지되고 거짓이면 팔이 힘을 잃고 내려가게 될 것이라며, 자기가 특별한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피험자 아이가 그 특별함을 계속 유지하고자 약장수와 즉흥적으로 은밀하게 공모해 '그림'을 만들어내면, 이것이 바로 이 특별한 힘이 작동하는 증거라고 초등학생들에게 약을 팔려는 사기꾼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상담자가 가스라이터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스라이터의 핵심은 무엇일까? 바로 '권위'다. 가.스.라.이.터.는. 자.신.의. 권.위.를. 증.대.시.키.기. 위.해. 그. 모.든. 일.을. 한.다.
가장 권위에 집착하는 이가 반드시 하게 되는 일은,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친절하게 들어주려고 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자.기.의. 말.이. 맞.다.고. 들.어.주.는. 이.에.게. 권.위.를. 주.기. 때.문.이.다. 이것을 '황희정승전략'이라고 부른다. 아주 효과적인 전략이다. 사람들이 정보의 과잉으로 인해 자기의 정당성을 쉬이 확신하지 못하는 오늘날, 그러한 자기를 맞다고 긍정해주는 황희정승에게는 곧잘 최대치의 권위가 수렴된다.
그래서 정직하게 기능하는 집단상담의 리더는 이러한 황희정승들에게 반드시 도전한다. 집단의 응집을 막는 가장 큰 방해물이기 때문이다. 황희정승으로 인해 집단상담의 참가자들은 자기 자신의 문제를 직접 조우하려고 하기보다는, 황희정승의 눈치를 살피며 그의 동조를 구하는 쪽으로 움직이려 한다. 이것은 마치 부모와의 애착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이가 집단상담에 찾아와서까지도, 자기 부모를 그 자리에 앉혀놓고 눈치를 보는 일과도 같다.
황희정승전략은 하나의 장에서 자기가 제일 '큰어른'의 자리에 앉아 있고자 펼치는 기획이다. 즉, 가.장. 권.위.있.는. 자.리.를. 선.점.하.려.는. 것.이. 황.희.정.승.이.다. 최면, NLP 등의 교과서에 등재된 사례들에서는 이러한 황희정승전략으로 개인이 권위를 차지하는 일을 대단히 자랑스러운 성과인 것처럼 묘사한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이 상담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누가 제일 높은 시어머니인가?"를 추구하는 권위쟁탈의 게임이다. 곧 '왕좌의 게임'이다. 가스라이터들은 이 게임을 좋아한다.
황희정승들은 집단상담의 장면에서 대개 집단리더에 대한 저항자의 역할로 자신을 입지화한다. 이들은 자신이 '집단리더의 독재'에 저항하여 사람들의 자유를 해방시켜주는 독립군이라고 생각한다. 은하영웅전설의 양 웬리, 삼국지의 촉나라 인재들, 어벤져스의 아이언맨 등과 같은 인물상이 그 상징물로 곧잘 구현된다. 전부 다 마치 거대한 제국주의의 폭력에 맞서 자기들이 진정하게 사람들을 지키겠다고 하는 '정의로운 저항자'의 표상이다. 물론 그러한 제국 같은 것은 실제로 있지도 않다는 사실은, 이들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황희정승들이 늘 입에 달고 사는 표현은 바로 '민주주의'다. '마음의 민주주의' 등과 같은 것이 이들이 심리전문가로 자칭할 때 주장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민주주의는 사실 '왕권주의'다. 자신만이 왕이 되어, 다른 이들이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정신연령이 낮은 작가들이 쓰는 이세계 판타지물에서 자주 나오는 전개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냥 그 말을 쓰면 사람들이 쉽게 자기의 권위에 동의해주니까 사용하는 것뿐이다. 결국 다 자신이 '왕의 권위'를 얻기 위한 편의적 도구에 불과하다.
집단상담에서 황희정승들이 저항자가 되지 않는 유일한 때는, 집단리더가 황희정승들의 권위를 인정해줄 때다. 즉, 집단리더와 황희정승의 '야합'이 일어났을 때다. 이럴 때 황희정승은 모든 배경에 내재된 숨은 권위가 된다. 마치 철부지 어린 왕을 수렴청정하는 국모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집단리더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때, 리더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갖는 일이 보장될 때, 황희정승은 만족스러워하며, 리더까지 포함해 집단 전체를 자기 생각대로 가스라이팅해나간다.
이것은 정말로 최악이며, 가장 상담판에서 활동하지 말아야 할 이들이 이 황희정승전략으로 행위하는 가스라이터들이다.
우리가 이 지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이해는 이러하다. 가.스.라.이.터.가. 권.위.를. 얻.는. 방.식.은. 권.위.에. 대.한. 조.롱.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제대로 된 심리상담자로서 권위를 얻는 것이 아니라, 심리상담이라고 하는 장을 조롱함으로써 그것보다 높은 권위를 얻으려 한다. 그러기 위해 가스라이터는 '자기의 광대화'도 서슴없이 행한다.
이를테면, 시장에서 엉덩이춤을 추는 일이 사람들의 관심을 부른다면 가스라이터들은 그 일을 한다. 엉덩이춤을 SNS에도 올려 심심한 사람들의 호응을 얻는다. '좋아요'도 많이 얻는다. 엉덩이춤이 아주 성공적이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다만 문제는 이들이 엉덩이춤에 '심리학'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말한다.
"얘 심리학원숭아, 바나나 좀 먹어봐. 옳치 옳치, 잘한다. 우리 원숭이 아주 심리학 잘하네."
원숭이는 칭찬받고, 심리학은 통째로 저렴한 조롱의 대상이 된다. 그래도 가스라이터들에게는 피해가 없다. 그들은 칭찬받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스라이터들이 권위를 얻는 교묘한 방식이다. 자신이 권위를 얻고 싶어하는 분야의 광대가 되어 저렴하게 행위함으로써, 그 분야의 권위는 추락시키고, 자기는 상승하는 방식이다.
대체로 자기의 아버지의 권위에 짓눌렸다고 경험한 이들이 이러한 일을 행한다. 아버지의 권위를 조롱하는 방식으로 자기가 권위를 얻으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아버지도 동일한 방식의 광대적 저항자였을 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세습된 것이다. 가스라이터에도 계보가 있다. 하나의 가스라이터에게 가스라이팅 당한 이가 새로운 가스라이터가 되어 가스라이팅을 세상에 전파한다. 오컬트에 종사하는 가스라이팅 전문가들인 사이비구루들은 이와 같은 '위대한 유산'을 상속하고 또 상속시킨다. 황희정승전략은 언제나 이들 모두가 공유하는 황금의 전략이다.
황금, 우리는 이제 이것을 말해야 한다.
상담자는 내담자를 황금으로 변하게 하는 이가 아니다. 반면 가스라이터는 자신을 연금술사로 칭하며 사람들이 황금과 같이 '특별한 것'으로 변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일은 결코 생기지 않는다. 왜일까?
여기에서 잠시 맥스 루케이도의 최고급 마스터피스인 『너는 특별하단다』를 살펴보자. 이 책은 나무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나무사람들의 일과는 서로에게 금별 스티커 똔는 흑점 스티커를 붙여주는 일이다. 1997년작인 이 책은 이미 오늘날의 SNS 시대를 예언하고 있었다. 나무사람들의 모습은 쉴 새 없이 관계망 속을 표류하며 '좋아요' 또는 '비추'를 누르고 다니는 2022년의 우리의 자화상이다.
멋진 외모를 가진 재능충들에게는 금별 스티커가 많이 붙는다. 반면 이 책의 주인공인 펀치넬로와 같이 보잘 것 없는 나무사람들에게는 반대로 흑점 스티커가 가득하다. 이 스티커들은 그대로 자기평가의 소재로 되먹임된다. 금별이 많이 붙은 나무사람들은 점점 더 황금처럼 화려해지고, 흑점이 많이 붙은 나무사람들은 갈수록 우울해지기만 할 뿐이다.
현실에서라면 바로 이 시점에 가스라이터들이 출현할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이 저주받은 흑점을 제가 금별로 바꿀 수 있습니다. 흑점과 금별은 서로 대극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어요. 반드시 특별한 금별로 변화될 수 있는 놀라운 마법이 가능합니다."
이 말을 듣고는 흑점의 수백 만 동포들이 엑소더스를 시작한다. 연금술에 구원이 있노라며 새로운 종교가 탄생한다. 그렇다면 흑점이 금별로 변화될 실제적인 마법은 어떻게 구사되는 것일까?
모두의 연예인화다. 즉, 모두의 광대화다.
흑점을 가진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역설적 장점으로 삼아, 더욱더 그 흑점을 당당하게 말하고 표현함으로써, 사람들의 관심을 끌라는 것이다. 당당하기만 하면 '모든 추태'는 특별한 인기의 소재가 된다는 것이다. BJ들의 성공공식이다.
그 결과, 흑점의 수백 만 동포들은 인터넷 허공에서 유랑하는 서커스단이 되고, 이 모든 것을 기획한 연금술사, 바로 그 가스라이터에게는 흑점의 광대들이 제공한 금별의 스티커가 가득 붙게 된다.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남들 못지않게 자신에게 붙어있던 흑점을 금별로 대신하는 데 분명히 성공했다.
이것이 바로 연금술이다. 상담에 온 내담자가 자신의 온 힘을 다하여 상담자를 특별한 황금으로 만들어주는 일, 이것이 놀랍도록 아름답고 마법같은 연금술이다. 상담에서의 연금술? 상담자로 자칭하는 자기가 황금이 되고 싶다는 말이다. 자신만이 독보적인 왕이 되고 싶어하는 이들이 열렬하게 주장하는 '민주주의'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것이 상담자의 역할인가? 결코 그럴리 없다.
상담자는 내담자를 특별한 광대로 성공시켜주겠다는 연예인 기획사의 사장인가? 내담자를 자기의 특별한 백성으로 만들어 민주적으로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는 왕인가? 내담자 안의 이 특별한 원숭이도 옳고 저 특별한 원숭이도 옳다며 자기만 가장 높은 권위를 독점하는 황희정승인가?
상담자란 도대체 어떤 역할인가? 나아가 우리가 그토록 얻고 싶어하는 특별함과 상담자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
『너는 특별하단다』에서는 상담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암시해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녀의 이름은 루시아다. 흑점이 너무 많이 붙어 힘들어하던 펀치넬로는 어느날 루시아를 만나게 된다. 펀치넬로는 깜짝 놀란다. 그녀의 몸에는 흑점 스티커가 하나도 붙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심지어는 금별 스티커마저도 그녀에게는 붙어 있지 않았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자유로워."
펀치넬로는 이것이 바로 자신이 정말로 원했던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 그는 흑점을 금별로 바꾸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스티커들로부터 다만 자유롭고 싶었던 것이다! 연금술이 아니다. 바로 자유였다! 펀치넬로는 자유가 대체 어떻게 가능하냐고 루시아에게 묻는다. 그녀가 대답한다.
"언덕 위에 사는 엘리 아저씨를 나는 매일 만나러 가거든. 우리 모두를 만든 엘리 아저씨를 만나면 너는 알게 될 거야."
엘리(Eli), 이 이름은 물론 신에 대한 비유다. 더 실제적인 의미로는 '존재 그 자체(being itself)'라고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고민하고 고민하던 끝에 펀치넬로는 홀로 직접 엘리 아저씨를 만나러 간다. 실존주의적 단독자가 간다. 엘리 아저씨는 세상에서 이보다 더 반가울 수 없게 펀치넬로를 맞이한다. 이것은 탕아의 비유다. 엘리 아저씨는 말한다.
"나는 너를 절대로 못나고 부족한 존재로 만들지 않았단다."
펀치넬로는 그러면 자신에게 붙은 흑점 스티커가 대체 왜 붙은 것인지를 궁금해하자, 엘리 아저씨는 대답한다.
"네가 '나'보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더 중요하게 여겼기에, 네가 그들의 권위에 동의했기에, 스티커들이 너에게 붙게 되었어. 네가 그들에게 권위를 주는 일을 그만 하면, 스티커들은 금방 네 몸에서 떨어질 거야."
엘리 아저씨는 말을 잇는다.
"기억하렴. 나는 사랑으로 너를 만들었고, 너는 나에게 아주 특별하단다."
엘리 아저씨의 집을 나서면서 펀치넬로는 왠지 모르게 엘리 아저씨의 말을 믿고 싶어졌다.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그에게서 흑점 스티커 한 장이 떨어졌다.
이 마스터피스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종교를, 특히 기독교적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특별함'이라고 하는 것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를 정확하게 우리에게 알리고 있다.
특.별.함.은. 존.재. 그. 자.체.에.서. 온.다. 우리가 '나'라고 하는 '존재 그 자체'에서 분리되었을 때, 우리는 가스라이터들에게 권위를 주며 우리 자신을 점점 더 비루한 것으로 만들게 된다. '존재 그 자체'를 쉽게 이해해보자. being itself다. 바로 '있는 그대로'다.
우리가 '있는 그대로'를 부정하고 있을 때 흑점의 스티커들은 우리에게 달라 붙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또 금별의 스티커들을 원하게 된다. 흑점을 금별로 변화시키는 연금술을 꿈꾸게 된다. 이것은 끝없이 포켓몬빵을 사모으는 것과 같은 일이다.
루시아의 모습을 다시 기억해보자. '있는 그대로'라는 것은 곧 '자유'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슨 무의식 속에서 보기 싫은 자신의 모습을 끙끙대며 직면하는 일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자유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큰 착각은, 금별 스티커를 많이 모아야 우리의 자유가 실현될 수 있다는 착각이다. 이것이 아니다. 지금 자신의 자유를 개방하면, 하고 싶은 것을 해보면, 그 순간 금별도 흑점도 모두 다 떨어지게 된다. 왜? 황금이 아닌 사랑이 이제 우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유.롭.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 사.랑. 속.에. 있.다.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자유롭도록 우리를 만든 것이 바로 사랑이다. 자.유.는. 사.랑.의. 자.기.증.명.이.다. "내가 스티커들로부터 자유로워도 되겠구나." 이 순간 펀치넬로는 엘리 아저씨가 자신을 이처럼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만든 그 '특별한 사랑'을 통째로 회복한 것이다. 그러니 스티커들로부터 생겨나는 '특별한 권위'의 평가는 모든 중요성을 잃게 된다.
루시아는 바로 이 모든 것이 정말로 가능하다는 '살아있는 실증의 본'이다. 그리고 이것이 상담자의 역할이다. 상담자는 엘리 아저씨가 아니다.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허허, 당신도 온전합니다."라고 신의 권위처럼 승인해주는 가스라이터가 아니다. 상담자는 내담자를 특별하게 만들어줄 수 없다. 상담자가 내담자를 황금처럼 변화되게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하는 일이란 고작해야 내담자에게 금별 스티커를 한 장 붙여주는 일일 뿐이다. 그리고 스티커를 붙이는 이 일로 말미암아 내담자는 그만큼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부터 소외된다.
그렇다고 상담자는 내담자의 '있는 그대로'를 알아주는 이여야 하는가? 이것은 마치 SM의 관계에서 노예인 이가 주인인 이에게 "나는 오빠를 만날 때만 진정하게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되는 것 같아."라고 말하는 장면과 같다. 특정한 대상을 통해 '있는 그대로'가 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다른 이들은 나한테 흑점 스티커만 붙여주는데 오빠만은 금별 스티커를 붙여줘서 너무 좋아." 오늘도 소리 안내고 채찍으로 잘 맞아 주인님에게 황금칭찬을 받으니 행복한 날이다.
가스라이터들이 언제나 내담자의 '있는 그대로'를 자기가 알아주겠다고 한다. 이것은 "너에게 신이 되고 싶어."의 의미다.
"엘리 아저씨, 그게 뭔데! 내가 너에게 더 잘해줄 거라고. 내가 그 따위 노망난 늙은이보다 너를 더 행복하게 해줄 거라고!"
열심히 해라, 가스라이터여. 그런 너도 죽는다. 가스라이터들이 자기를 신과 같은 권위로 감싸 우상화하는 이유는 죽음이 두려워서다. SM 행위의 핵심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가학자와 피학자는 죽음에의 두려움을 이길 수 있다고 상정되는 신적 권위를 창조해내고자 일종의 주술적 의식(ritual)을 함께 집행해가는 동업자들이다. 물론 무엇을 해도 죽을 것이다.
상담자를 자칭하는 가스라이터가 맺는 상담관계가 이와 같다. 그리고 신적 권위로 활동하는 이것은 상담자의 역할이 아니다. 그 권위가 설령 내담자 자신을 만족시켜주는 것이라고 내담자가 호소할지라도, 이것은 내담자에 대한 배신이다. 아니 그렇다면 애초 그 활동에 상담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 이유가 없다. "실제의 당신 아빠와는 다르게 자상한 아빠처럼 다정하게 가스라이팅해드립니다." 얼마나 좋은가. 알아먹기도 쉽고, 서비스의 방향성도 분명하다.
상담자는 자신이 엘리 아저씨인 척하지 않는 다만 루시아다. 상담자의 임무는 내담자에게 자유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함으로써, 내담자가 엘리 아저씨를 향하도록 돕는 일이다. 니체는 정확하게 말한다. 이 책에서 반복해서 인용되는 말이다.
"마음을 치유하는 의사들이여. 그대들 자신을 치유하라.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자를 목격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대의 환자들에게는 최상의 도움이다."
금별 스티커로부터 자유로운 루시아의 모습, 이것은 그 어떤 웅변보다도 강력한 존재의 힘이다.
말하잖는가. 존재는 언어보다 강하다. 사실 비교가 되지 않는다. 비교선상에 놓는 것이 민폐다. SNS에서 어떻게든 '금별'을 얻기 위해 춤을 추는 황금원숭이의 모습, 이것은 상담자인가? 아니 이것은 가스라이터다. 상담자는 이러한 방식으로 내담자에게서 특별함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그 반대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특별함을 위해 작업한다. 내담자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담자의 이야기와 아무 상관없는, 내담자의 존재를 상담자는 드러내려고 한다. 그것을 어떻게 드러내는가?
상담자 자신의 시간을 내담자의 시간에 묶어, 그렇게 내담자가 경험하는 사건과 운명공동체가 되어, 그 속에서 금별과 흑점을 다 기각하는 모습을 실증함으로써, 상담자는 이 일을 한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상황 속으로 들어가, 그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자유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내담자에게도 그것이 반드시 가능하다는 신뢰를 제공한다. 내담자 자신에게 바로 그러한 힘이 있음을, 내담자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그 존재의 힘이 있음을 반드시 알게 한다.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그러한 존재라는 것이 아니다. 상.담.자.는. 존.재.의. 안.내.자.다. 내담자가 다른 누구가 아닌 자신의 존재만을 향하도록 안내하는 역할이다.
이러한 말들을 들으면 상담이라는 것이 어렵게 생각되는가? 그렇다면 천만다행이다. 상담이 시장에서 심벌즈를 치는 원숭이의 일보다는 어렵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은 단순하다. 펀치넬리의 앞에서 루시아가 엘리 아저씨의 집에 들어가는 일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펀치넬리가 원한다면 루시아가 엘리 아저씨의 문앞까지 함께 언덕을 오르는 일이다. 그래서 상담자의 역할을 '셰르파(sherpa)'라고 부를 수 있다. 이것은 한국형 실존상담의 독자적인 언어다.
상담자에게는 언덕을 같이 오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단지 경제적 보상과 직업적 성취를 위할 뿐인가? 그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다. 오르는 김에 상담자도 또 한 번 엘리 아저씨를 만나고 오게 된다. 이것이 한 번 제대로 상담자를 해본 이가 계속 상담자를 하게 되는 그 동력이며, 그 의미다.
황금? 우리에게는 이 우주의 그 모든 황금과도 바꿀 수 없는 엘리 아저씨가 있다. 당신에게도 그럴 것이다. 당신의 '있는 그대로'의 존재를 향한다는 것, 그것은 당신의 특별함을 향하는 일이다. 바로 그 당신의 특별함을 실증하기 위해, 상담자는 몸을 가볍게 하고 오늘도 언덕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