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없는 조선힙스터와 인스타 가스라이팅"
드립커피에 버터 넣어서 쳐묵쳐묵하고, 닥터페퍼를 마시며, 킨포크 잡지처럼 자기 집을 꾸미고, 수제맥주를 즐기며, 어디 이상한 동유럽요리 레시피를 주워보고 따라한 뒤 인생 좀 아는 쉐프인 척하는 등의 각종 이미지 수작질을 시도하고 있다면 대체로 조선힙스터일 가능성이 큽니다.
힙스터들은 이미 오래전에 대중화되어 촌스럽다고 버린 그 소재들을 자기가 특별한 존재가 된 증거처럼 SNS에 올려 "나 이렇게 앞서 나가는 사람이에요!"라며 대중들에게 자랑하고 있다면 빼박 조선힙스터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비주류가 된 경우도 아니고, 아예 비주류를 표방하며 모든 면에서 작위적으로 비주류를 추구하는 경우도 아닙니다.
조선힙스터는 힙스터에게서 갬성놀이와 쿨병만을 받아옵니다.
"오늘 놀게요. 놀고 싶어요."
자기는 구시대적 인습과 낡은 제도권에 갇혀 머리가 꽉 막힌 '주류'의 인종들과는 다르게 갬성이 깨어있는 '비주류'의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훗, 넌 아직 신승훈 듣니? 난 서태지 듣는데. 너도 이제 비주류 음악 좀 들으며 갬성을 키워봐. 제도권 음악과 그 깊이가 달라."
촌티가 창포물로 감은 머리처럼 윤기나게 좔좔 흐르던 이 과거의 멘트는 오늘날 다양한 소재로 변주됩니다.
자기를 특별한 '비주류'로 규정짓는 그 비교의 대상은 언제나 자기 엄마아빠인 것만 같습니다.
명절에 집에 내려갔을 때 스타벅스에서 커피 좀 사오라는 엄마 앞에서 드립커피 쳐내리며 힙한 척하거나, 케이블에서 야구중계 재방송이나 보고 있는 아빠 앞에서 넷플릭스 시연하며 힙한 척하는 일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은 일들입니다.
시골집에서 엄마아빠를 따라 소여물을 주며 살다가, 서울에 가출해 올라와 김밥천국에서 김밥천국 스페셜정식을 먹어본 뒤 이제는 자기가 최신의 고급스럽고 특별한 존재로 거듭난 것처럼 행세하는 지극한 촌티가 여기에는 가득 묻어납니다.
혼자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데, 흔하디 흔해빠진 것들을 자기만 아는 특별함인 것처럼 인스타에 게시합니다. 그렇게 흔하디 흔해빠진 행위를 하면서 자기는 남들에게 첨단의 좋은 것들을 보급하는 '비주류'의 희소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엄마아빠를 따라 어디 어시장에서 일하다가 자기처럼 가출해서 서울로 올라온 이가 '좋아요'를 달며 뜨거운 지지를 보냅니다. 조선힙스터 동맹이 결성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놀게요. 그런 날이에요. 내 인생은 한 번뿐인 내 꺼잖아요. 바보처럼 자본주의 세상의 쳇바퀴를 따라 사는 거 우리 이제 너무 지치지 않나요? 진심껏, 놀고 싶어요. 이게 나란 사람의 소중한 마음이에요. 이 마음에 당당해질게요."
그렇게 삼류저질싸구려 갬성이 영등포 뒷골목의 노래방 간판들처럼 인터넷 허공을 도배해갑니다.
공허합니다.
근본이 없기 때문입니다.
망상을 쫓을 때 근본이 없어집니다.
더 정확히는, 자기에 대한 환상의 이미지를 소비할 때, 그렇게 자아상이 과잉될 때, 근본이 없어지게 됩니다.
자기가 잘나야 한다는 자아상의 망상은 늘 자신을 쫓기게 만듭니다. 자기의 능력으로는 자기가 추구하는 자기의 이미지에 도달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성공적으로 보이는 남의 걸 따라하게 됩니다.
남의 걸 따라하면서도 자기는 자기가 오리지널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의 걸 도둑질하고 모방하면서도 그게 다 자기의 특별한 개성이라고 간주합니다.
조선힙스터들은 이처럼 오리지널을 만들 능력은 없으면서, 다만 오리지널 같은 이미지로만 보이려는 이들입니다.
표면적인 정보만 빨리 소비해서, 그 분야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구는 것이 이들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그러니 더욱더 근본이 없어집니다.
깊이 쌓은 것이 없으니 안이 텅비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니 그 공허함을 메우려고 더 이미지를 소비합니다. 더 많은 이미지를 찾아 자기에게 붙여넣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타인의 착취 및 남용은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자기가 공허한 이는 반드시 타인도 공허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보다 직접적으로, 조선힙스터들은 자기의 자아상을 달성할 이득만을 쫓아 남을 이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습니다. 모든 대상은 다 자기의 도구입니다. 자기가 긴 시간 동안 도구처럼 살아와서 공허하게 느끼는 만큼, 남들도 도구로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잘 나가는 듯한 어떤 조선힙스터가 보이면 이들은 그이의 영토를 기웃기웃거립니다. 뜨거운 찬사를 보내며 잘 나가는 이와 친해져 자기도 그이와 동급의 인물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 또 자기도 쿨하고 힙한 동류의 패거리로 보여 같이 뜨기 위해, 이들은 시종일관 허공 속을 기웃기웃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이 일을 합니다.
근본없는 이들이 서로를 칭찬해줌으로써, 서로가 잘난 것 같은 그림을 만들어내고자 합니다.
이런 것이 자기를 더럽고 추악한 기득권사회의 '주류'에 저항하는 '비주류'의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모습이며, 그러한 이들의 연대입니다.
오늘날 조선힙스터의 핵심은 연대하는 관계입니다.
근본은 없어도 관계가 서로의 근본이 되어줄 거라고 믿는 관계신앙입니다.
자기가 매달려 있는 허공의 거미줄을 숭배하는 일과 같습니다.
근본없는 이들이 관계를 추구하고, 그래서 더 근본없어집니다. 관계는 양파와 같아서, 까도 까도 그 안에는 원래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런 것은 특별해보이는 비주류의 방식도 아닙니다.
관계에 대한 숭배야말로 가장 주류의 것입니다.
조선힙스터들이 자기의 특별함으로 삼고 있는 그 방식은, 자신들의 엄마아빠가 하던 것과 동일한 그 방식입니다. 엄마가 동네의 어떤 네트워크에 접선하여 소주병에 담긴 특별한 그 들기름을 받아오던 일의 무대가 인터넷으로 확장된 것뿐입니다.
이처럼 누구보다 가장 표준적이고 몰개성적인 주류에 속하면서, 자기는 남과 다르게 특별한 비주류라고 착각하는 것이 또한 조선힙스터의 특징입니다.
인스타에만 공지된 고급정보를 따라 시대를 앞서가는 이들만이 찾아갈 수 있는 힙한 명소란, 놀이터 데뷔를 하지 못한 새댁은 들을 수 없는 동네 엄마들의 통합적으로 선별된 학원정보가 나누어지는 아파트 놀이터 네트워크와 동일한 것입니다.
학업에 근본있는 애들은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그 첨단과 최신의, 촌스럽기 그지 없는 정보입니다.
자신이 잘못 사는 것은 아닐까 초조감과 조바심에 쫓기기에 이러한 네트워크에 합류하고자 하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실제로 잘못 살게 되는 자기충족적 예언의 실현을 낳습니다.
근본을 찾기 위해 네트워크로의 편입을 꿈꾸는 이들의 상태는 다 동일합니다.
"성공할 때는 나만 성공하고, 실패할 때는 함께 실패하자."
이게 결국 관계의 논리입니다.
관계 속에서는 저마다 자기가 제일 영리한 줄 알지만, 실제로는 다 같이 바보가 될 뿐입니다.
중앙집권적이고 획일적인 제도권의 평범한 삶을 거부하고, 각자가 당당한 개성들이 모여 자유롭고 특별한 삶을 펼쳐가는 멋진 우리들이 연대하는 관계의 보금자리, 바로 인스타그램에서 더 많은 이들이 이처럼 바보가 되어갑니다.
본토의 힙스터들은 인스타를 극혐하는데, 조선힙스터들은 인스타가 영혼의 고향입니다.
비주류라는 것을 마치 아무 자본이 없어도 자기의 특별함으로 사회적 자원을 획득한다는 것과 동의어로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그렇게 자기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전형적으로 평범한 이들이 모여, 더욱 몰개성적인 형상으로 변해가게 됩니다. 멀쩡한 이들이 바보가 됩니다.
이것은 가스라이팅입니다.
인스타의 가스라이팅입니다.
관계의 가스라이팅이라고 말해도 좋습니다. 관계는 원래 관계의 네트워크에 속한 이들을 가스라이팅합니다. 그래야 네트워크가 붕괴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어서입니다.
관계의 네트워크는 인간을 사육합니다.
인스타 속에서 사람들은 인스타가 바라는 이미지에 자기를 맞추려고 애씁니다. 자기의 당당한 개성을 노래하며, 또 자기와 동등하게 개성있는 멋진 동무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무럭무럭 자라는 착한 꿈나무의 이미지에 자신을 일치시키려고 열심입니다.
인스타 유치원의 모범원생이 되는 그 일이 자기의 소망인 줄 알고, 자발적 세뇌에 매진합니다.
어떤 조선힙스터의 인스타를 보며 자기도 그처럼 자유롭게 쿨하고 갬성적으로 살아야 할 것 같은 심리적 압박감을 경험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수준이 낮기 때문에 압박감을 느끼는 것이며, 이제는 성숙하게 자기 자신을 레벨업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도 쿨해보이고 갬성적으로 보이는 '자기의 이야기'라고 하는 것을 연출하려고 시도하게 됩니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네트워크가 권장하는 이미지에 의해 사육되는 순응적 아이가 만들어집니다.
'주류'라고 칭해지는 제도권의 교육이 만들어내는 순응적 아이들의 수보다, 이 '비주류'의 네트워크 가스라이팅이 만들어내는 순응적 아이들의 수가 훨씬 비율적으로 많습니다. 이미 이것이 주류 중의 주류입니다.
이것은 남들보다 앞선 특별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남들 다 당하는 가스라이팅을 진부하게 당하는 것일 뿐입니다.
관계의 네트워크는 인간의 불안과 두려움을 먹고 삽니다.
이게 진실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불안해서 그와 관계를 맺고, 두려워서 그녀와 관계를 유지합니다.
물론 인스타와 같은 관계플랫폼들은 이용자들에게 직접 불안과 두려움을 조장하지는 않습니다. 유려한 가스라이터들은 직접 협박하는 아마추어 같은 짓을 하지 않습니다.
이 플랫폼들은 이용자들이 서로를 불안과 두려움으로 협박하도록 조장합니다.
전체주의의 정권에서 일어나는 일과 유사합니다.
불안하고 두려운 이들이 관계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더 특별하고 화려한 이미지로 자기를 포장합니다. 그걸 본 다른 이들이 자기 대신에 불안과 두려움을 경험하게끔 의도하는 장치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불안과 두려움은 술자리의 타이타닉게임처럼 계속해서 다른 이들에게로 떠넘겨집니다. 주식이나 코인 시장에서 일어나는 일과도 동일합니다.
더 많이 초조해지고 더 많이 압박감을 경험하게 되는 더 많은 이들은 거미줄에 더욱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됩니다. 매달릴 곳이 거미줄밖에는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붙잡고 있으면 괴로운데, 놓을 수도 없습니다. 주말에 유튜브를 멍하니 보고 있는 우리의 심정이 분명 이러합니다.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네트워크 플랫폼은 인간의 에너지를 빨아먹어 자기의 몸집을 성대하게 부풀리는 일에 성공합니다.
이것은 실체없는 거대한 거머리 같은 것입니다.
이 환상의 거머리에 에너지를 뽑아먹혀 우리는 자기가 똑똑한 줄 아는 진짜 바보가 되어갑니다.
근본은 더욱더 없어지고, 이미지의 껍데기만 남습니다.
그렇다면 근본이라는 것은 어떻게 얻어지는 것일까요?
시간입니다.
자신이 감동하는 것을 위해 성실하게 쌓은 시간이 근본이 됩니다.
오늘날 성실함이라는 표현이 조롱되는 것은, 성실한 시간인 즉 엄마아빠의 말을 따라 산 어리석은 시간이라고 오해되는 까닭입니다. 엄마아빠의 말을 따라 소여물을 주고 갈치상자를 날라봤지만 얻은 것이 없습니다. 또래들이 외제차 타고 이성을 만나러 다닐 시간에 자기는 소똥냄새나 풍기고 있고, 집 한 채 살 수 없이 우울하게 뻗어 있는 단칸방에서는 씻어도 씻어도 생선비린내만 가득합니다.
성실하다는 것은 곧 바보같다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엄마아빠의 말이 자신의 미래를 결코 보증해줄 수 없다는 것이 확증되었을 때, 성실함이라는 말은 진절머리나는 최악의 트라우마로 화한 것입니다.
그러나 물론 이런 것은 실제의 성실함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엄마아빠에 대해 순응하는 착한 아이로 사는 일은 성실함이 아닙니다. 이러한 어리석은 성실함에서 벗어나 이제는 힙하게 살겠다며 인스타 유치원에 순응하는 또 다른 착한 아이가 되는 일 또한 성실함이 아닙니다.
그 둘은 동일한 종속의 일입니다.
종속은 타인에게 자신에 대한 보상을 기대할 때 생겨납니다.
그 반대로 성실함은 관계에서 보상을 바라지 않고, 자신이 감동하는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자체가 자신에 대한 보상이 되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 것에 감동하는 이는, 글쓰는 일 자체가 이미 자신에게 보상이 됩니다. 자기의 글에 대해 호응이 없거나, 글이 팔리지 않거나, 이득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고 글쓰는 일을 그만 두는 이는 실은 글쓰는 일에 감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글을 쓰는 자기 자신에 대해 성실한 이가 아닙니다. 글이라는 소재로 순응하는 착한 아이가 되고 싶어하는 이일 뿐입니다.
근본있는 이들은 언제나 같은 말을 합니다.
자신이 감동하는 것을 계속하고, 또 계속하고, 그리고 계속했다고 말합니다.
근본 따위를 갖고 태어나는 이는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감동하는 그것을 위해 산 그 성실한 시간으로 쌓아진 것이 근본입니다.
관계의 네트워크를 위해 살지 않으면, 세상이 다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내 자신이 감동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정직하게 움직이기만 하면, 근본은 금방 쌓여갑니다. 인스타의 위대한 대항로에서 루피가 되어 동료를 모으는 일보다 훨씬 쉽습니다.
근본이 있으면 공허하지 않습니다.
빈 수레가 요란한 것은 소리라도 내야 공허하지 않을 것 같아서입니다.
수레를 끌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관계라는 수레에서 원래 자유로운 것이 이 몸입니다.
남들에게 좋아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감동하는 것을 하라고 자유로운 이 몸의 시간을 깊이 쌓아가는 일이 삶의 근본입니다.
이 몸은 오프라인에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