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살림 #9

"몰라짐"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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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모름으로 산다.


마음살림에서는 몰라짐이 중요하다.


적당히 주워보고 다 아는 척하는 얕은 앎은 없느니만 못하다. 책장에 꽂혀 있는 읽지도 않은 책들을 자기의 앎의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몰라진다는 것은 정말로 모른다는 것이다. 정말로 모른다는 것을 아는 그 앎만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늘 새롭게 알아갈 수 있다. 유연하게 살림을 펼쳐갈 수 있다.


물론 몰라짐에 대해서도 이미 많은 말들이 있다.


이를테면 자신이 유능한 심리상담자라고 간주하는 이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저는 당신에 대해 모르고, 당신도 당신 자신에 대해 모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함께 진짜로 당신에 대해 알아가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언뜻 듣기에는 맞는 말 같지만, 전적으로 틀린 말이다.


몰라짐은 이런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여전히 해결사적 주체가 있다. 상대를 친히 '몰라주는' 그 주동인물이 있다. 그렇게 상대를 몰라줌으로써 진정으로 알아주려 하는 주격의 인생마스터가 있다.


이 경우 몰라짐이라고 하는 것은 이 인생마스터가 활용하는 도구이자 기술로 전락된다. 모르는 척함으로써 "아하!"하며 알게 되는 깜짝쇼를 위한 장치다.


몰라짐의 핵심은 모든 구성성분의 타자화다.


가장 몰라져야 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상담자에게 가장 몰라져야 하는 것은 상담자 자신이다. 내담자에게도 상담자는 가장 모르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상처를 돌보아주는 치유자, 마음을 가르쳐주는 스승, 마음의 문제를 풀어주는 해결사, 유용한 심리학 원리를 적용해서 도와주는 심리기술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는 인생도우미,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청자, 어젯밤 꾼 꿈을 해명해주는 분석가, 온전한 마음을 만나도록 도와주는 지혜로운 전문가 등으로, 내담자가 알고 있는 상담자의 모습이 가장 몰라져야 한다.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가장 타자여야 한다.


상담자로 인해 내담자는 그의 세계에 타자가 있다는 불안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불안을 없애주는 이가 아니라, 상담자 자체가 내담자의 불안이다.


이것이 몰라짐의 의미다.


상담자는 몰라짐이라는 서비스를 통해 내담자를 진정한 앎으로 인도하는 이가 아니다. 상담자 자신이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지를 몰라야 한다.


이러한 비유처럼,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가장 몰라져야 한다. 우리 자신이 대체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지를 몰라야 한다.


그러면 살림이 시작된다.


살림을 못하는 이들을 보면 꼭 자기가 고정적으로 정해둔 정답이 있다. 진리와 같은 가정이 있다.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이들은 짜증을 낸다. 그대로 이루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 분노하며 자책한다.


항구적인 진리를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구는 것이다.


나아가 그 진리가 영구한 자기의 소유물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진리도 아닐 뿐더러, 영구할 수도 없다.


음식레시피 같은 것이다. 그때그때 계절의 온도변화와 매일의 습도차에 따라 유연하게 늘 변화되어야 할 것들이다. 나아가서는 언제라도 폐기되고 새로운 것으로 시도되어야 할 소재들이다.


어딘가에서 본 레시피를 들고 그걸 죽어라 사수하는 것이 살림을 못하는 이들의 대표적인 특성이다.


살림의 효율성 및 지속성은 고집이 아니라 유연함에서 비롯한다.


몰라지면 가장 유연해진다.


실은 모르는데 무슨 큰소리를 내며 잘난 척할 수 있겠는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모르는데, 뭘 다 안다고, 그렇게 다 아는 자기를 알아달라고 소리칠 수 있겠는가.


자신에 대해 몰라지는 것이 마음살림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자신에 대해 몰라지면, 그 다음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마음이 모름으로 이제 살아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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