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관계성"
관계(relation)와 관계성(relatedness)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특히나 그 용법은 서로 정반대편을 향한다.
관계를 아주 쉽게 말하자면, 자기가 주인공이 되기 위해 구성하는 무대라고 할 수 있다.
관계 속의 모두는 자기가 똑똑한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의 현명함으로 관계를 활용하여 원하는 것들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자기만은 주인공이라는 그 착각 속에서 모두는 관계에 봉사하는 노예가 된다.
그렇다면 관계성은 그 반대편에서, 우리 모두가 다 당당한 주인공이라는 뜻을 밝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관계성은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관계성이, 어느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기에 다들 똑같이 불쌍하고 약한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살자는 뜻을 가지는 것 또한 아니다. 이게 바로 관계의 논리다.
관계성은 다만 우리가 삶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의미다.
주인공은 분리된 존재다. 준독립적으로 움직인다. 자기가 움직여야 삶의 스토리가 흘러가고, 자기가 멈추어 있으면 삶의 스토리도 멈춘다고 가정된다.
근대에 불리던, 주인공의 다른 이름이 바로 주체다.
주체는 주객관계를 통해서 형성된다. 주체의 모든 관계는 다 주객관계다.
이것은 주인공과 그 들러리들의 관계다.
관계 속에서 우리는 자기가 주인공이고 나머지는 들러리들이라고 믿는다. 적어도 그렇게 인식된다. 거기서 나아가봤자, 실은 누구도 들러리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 삶이라는 스토리의 공동주인공이라는 식이다.
그렇게 주체의 주객관계는 서로에 대한 끈끈한 우정과 의리를 과시하며 서로에게 들러붙는다. 연합체를 구성해 인간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가는 이 길에 아무 두려움이 없노라며 목소리를 높여 노래한다.
자기들끼리의 관계만 잘 하고 있으면, 삶이라는 것이 그 관계의 질에 따라 멋진 스토리로 펼쳐질 것이라고 가정한다.
이것이 완전한 착각이다.
주객관계는 관계의 힘을 통해 삶에서 벗어나고 삶을 통제하고자 하는 기획이다.
이처럼 관계란 삶과 분리되고자 만들어진 인위적 발명품이다.
실증적으로 그러하다. 삶을 망각하려는 이들이 관계의 대상을 붙잡고 늘어져 씨름한다. 관계의 대상이 가장 중요한 소재인 것처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삶을 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관계성은 이와는 반대로 우리 모두가 무슨 짓을 하든 간에 삶과 분리될 수 없다는 근원적 사실을 묘사하는 특성이다.
세상에 마치 둘만 있어서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굴고 싶어하는 것이 관계다.
관계성은 그 둘이 놓여 있는 지평을 드러낸다. 둘이 무슨 짓을 하든 간에 그 지평은 스스로 움직이고 흘러간다는 사실을 밝힌다.
때문에 관계성의 차원으로 이해하면, 관계의 대상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물벼락을 쏟아부은 것이 아니라, 다만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그 둘이 동시에 맞고 있는 것뿐이다.
우리는 같은 비를 맞고 있다.
삶이 내리는 비며, 삶으로 흡수되는 비다.
가문 곳에 비가 내리는 자연스러운 순환의 작용이다.
우리는 우리 삶의 목격자가 아니라 참여자다. 이미 참여되어 있다. 우리는 삶과 하나다. 우리가 이미 삶이다. 이것이 관계성의 의미다.
그렇다면 삶이 내리는 비는 우리를 위해 내리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관계성 속에서 이 사실을 아는 이는, 상대와 물총싸움을 할 시간에, 물을 살림에 활용한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살리고 있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살림은 언제나 시간의 문제다.
관계는 주인공과 들러리들의 뜨거운 연합으로 시간을 무시하고자 한다.
관계성은 시간을 자기의 편으로 삼아 산다.
우리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의 의미는, 시간이 우리와 하나라는 것이며, 우리가 곧 삶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일치된 삶이라고 말한다.
마음의 의도와 행위가 분리되지 않고 일치하니, 힘이 무럭무럭이다.
삶에서 경험하는 현상들이 속속들이 우리의 힘이 된다.
살림대장이다.
삶과 하나인 이가 원래 이 삶에서 최강이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관계성은 우리 모두를 마음살림의 대가로 일깨우는 중요한 이해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