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your ears"
대학원 정규과정의 상담훈련에서 가장 중요하게 배우게 되는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습니다.
"당신 이야기 좀 그만 하고 귀 좀 여세요."
이것은 내담자의 말을 '잘 들어주기 위해' 상담자는 말을 하지 않고 다만 경청해주어야 한다는 의미가 절대로 아닙니다. 상담은 그렇게 '들어주는 일'을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서비스하는 활동이 아닙니다.
'듣는 법'을 내담자가 배우도록 돕는 일입니다.
듣는 법을 배울수록 개인은 아동에서 성인이 되어갑니다.
아동의 특징은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이 아동에 대해 잘해줘야 한다는 망상이 과잉되게 시대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잘해주는 일과 아동이 계속 미성숙하게 남도록 만드는 일은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당당하게 네 이야기를 해!"
이것은 아동이 끝없이 아동으로 지속되도록 권장하는 일입니다.
이런 것을 '과잉양육'이라고 합니다. 과잉양육 속에서 아동은 늘 자기의 이야기를 과잉되게 해야 한다는 스토리텔링의 기제를 인생공식처럼 채택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아동은 성공을 성공으로, 또 실패를 실패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성공도 자아도취의 소재가 되고, 실패도 자아도취의 소재가 될 뿐입니다.
그렇게 아동은 도취로 만들어진 '과잉자아'를 형성하게 됩니다. 자아팽창이라고 부르곤 하는 현상입니다.
과잉자아의 특징은 이야기를 사실보다 우선해서, 늘 이야기에 의존한 허구의 자아상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허구의 자아상은 속이 텅빈 공갈빵과도 같습니다. 근본이 없습니다.
크기가 부풀려져 있는 만큼 자기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그 실체적 내용물이 없기에 언제나 현실에서의 수행력이 그 크기를 뒷받침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늘 현실에서 자기의 자아상만큼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곤 합니다.
그러다가 잘못된 것은 현실이라고 결론내리게 됩니다. 자기의 양육자가 해준 말에 따르면 자기는 잘나서 성공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렇게 되지 않은 현실 앞에서, 양육자의 말이 거짓이었다고 인정하기보다는 현실을 부정해버리는 것이 더 안전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현실에 대해 무력해진 결과 현실이 무서워진 상황 속에서, 양육자만큼은 여전히 자기를 보호해줄 수 있는 세력으로 보이는 까닭입니다.
이솝우화에는, 자기가 남의 것을 뺏는 일을 해도 평생 자기 엄마로부터 칭찬만 들어온 이의 삽화가 나옵니다. 결국 그가 도둑질과 사기, 약탈만 거듭하다가 처형장에 서게 되었을 때, 엄마를 자신의 옆으로 불러 그 귀를 세게 물어뜯었다는 이 내용은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귀를 제대로 열고 사실만을 들었더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을."
이것은 엄마의 귀와 자기의 귀를 포함한 이 세상 모든 귀에게 고하던 말입니다.
우리가 잘 듣지 못하게 되는 것은 망상에 빠져 있어서입니다.
허구의 이야기로 쌓아올린 자아상에 대한 고집이 망상입니다.
양육자는 모든 아이가 다 자기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좋은 양육자'로서의 자아상을 고집하며, 이에 따라 아동은 자기가 더 멋진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좋은 스토리텔러'로서의 자아상을 고집합니다.
이러한 망상들 때문에 남의 말을 안 듣게 됩니다.
남의 말을 안 들으면서도, 이 망상에 빠진 이들의 특징은 자기들이 진정한 마음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는 참된 권위자라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남의 말을 안 들으며 자기 생각과 자기 감정만을 내세우는 아동들도 이와 똑같이 늘 자기가 선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당한 비판에 직면하면 자기가 왜 이렇게 대우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선량한 피해자인 것 같은 얼굴을 합니다.
정말 답답한 이들입니다. 다른 사람을 너무 답답하게 하는 이들입니다.
이러한 이들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불통의 현실입니다.
'과잉양육'과 '과잉자아'는 똑같은 불통의 소재입니다.
"당당하게 네 이야기를 해!"라는 이 말은 끝없이 불통을 만들어내는 소음입니다.
가짜상담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당신의 소중한 이야기, 이제 제가 듣겠습니다."
그는 언제나 소음을 조장합니다. 소음이 커야 공갈빵 같은 자신을 그 속에 숨길 수 있어서입니다.
실존상담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사람 있으니, 사람 말 좀 제발 들으세요."
모두가 다 자기의 이야기를 멈추게 되면, 이제 인간의 입에서는 필요한 소리들만이 나오게 됩니다.
그 소리를 듣는 일은 노래를 듣는 일과 같습니다.
'듣는 법'이란 실은 '연주하는 법'입니다.
연주하는 것은 입이 아니라 귀입니다.
입은 매우 자주 '이야기의 소음'을 만들지만, 귀는 언제나 '존재의 노래'를 만듭니다.
그래서 귀가 열려 사는 이들은 존재의 노래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당신의 유일한 장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귀가 열려 있다는 것뿐이에요."
처음 이 말을 어느 선사에게 들었을 때 기분이 엄청 더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자아상은 완강히 저항했습니다.
'나는 옷도 잘 입고, 상담도 잘 하고, 글도 잘 쓰고, 똑똑하고, 아는 것도 많고, 문화적 세련미도 갖추었고, 이성에게 인기도 있고, 솔직히 장점이 엄청 많은데 진짜 나를 알지도 못하면서 막말하네.'
그러나 그는 인간이 인간에게 전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을 전해주었던 것입니다.
자아상이 고집하던 망상을 다 잃게 된다 해도, 인간이 인간인 한 영원히 잃을 수 없는 인간의 보물을 건네주었던 것입니다.
실존상담자는 이 인간의 보물을 인간인 내담자에게 어떻게든 전하고자 합니다.
내담자가 이미 갖고 있는 그 보물이 정말로 내담자의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이것이 실존상담자가 사는 법입니다.
당신을 향해 최초로 속삭입니다. 당신에 의해 최초의 달콤한 노래가 되기를.
"Open your ea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