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상담"
진리를 아주 쉽게 말하면 '참된 것'입니다. '사실'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래서 진리는 과학의 것입니다.
과학이 진리를 드러내는 방식은 그 프로세스에 의해서입니다. 과학이 과학인 이유도 프로세스 때문입니다.
SF소설에 나올 법한 개념이나 용어를 쓴다고 과학이 아닙니다. 그런 것을 전형적인 사이비과학(pseudoscience)이라고 부릅니다.
사이비과학은 그 언어만 과학적인 것처럼 보이게 한 뒤 실제적으로는 '주술적 프로세스'를 구성합니다.
이를테면 누군가가 자신이 놀라운 체험을 한 뒤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마음을 다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는 거기에 '현상학적 GX법칙'이니 '디폴트 마인드셋'이니 'Zen 애퀴지션'이니 하는 등의 이름을 붙입니다. 이게 바로 사이비과학이 하는 주술적 프로세스입니다.
오늘날 심리학이 바로 이러한 주술적 방식으로 소비됩니다.
사이비과학의 실태를 상세하게 분석했던 칼 세이건, 각종 영성 및 심리학판의 사이비들이 활용하는 마술장치를 폭로해온 제임스 랜디, TED의 창시자이자 사이비과학의 위험성을 대중들에게 지속적으로 경고한 회의주의학파의 마이클 셔머 등은, 사이비과학이 과학적 언어로 만들어진 포장지를 입고 그 사이비주체의 권위를 세우려는 목적으로 활동한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지적해왔습니다.
즉, 사이비과학의 주체는 '현대의 주술사'가 됨으로써, 원시시대에 주술사라는 역할이 가졌던 '지도자적 권위'를 얻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이비과학은 거의 반드시 오컬트가 되어 컬트숭배로 빠집니다.
'주술적 프로세스'란 결국 이처럼 주술사의 권위를 증진시키려는 유일한 목적으로만 설명되는 원리입니다. 이에 반해 '과학적 프로세스'는 탐구자의 권위증진이 아니라 "정말로 사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한 설명을 시도합니다.
사이비과학의 주체들은 매우 자주, 더 많은 이들이 더 좋은 것을 더 쉽게 얻을 수 있게 도우려는 '과학적 방향성'에 맞게 자신들은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것은 '과학주의'가 아니라 단지 '대중주의'에 불과합니다. '과학적 방향성'이란 모두가 하늘이 돈다고 말할 때라도, 그 혼자서라도 지구가 돈다고 말하는 일을 향해 있습니다.
과학자는 대중에 근거해 서있지 않고, 사실에 근거해 서있습니다.
과학은 쉬워야 좋은 과학이 아니라, 정확해야 좋은 과학입니다.
전자들을 강조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정치학입니다. 과학이 정치학의 논리에 지배받을 때, 과학은 건강한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주술사회'입니다.
대통령이 언어적 주술사인 선동가들을 의지하고, 정부가 아무 근거없는 과학적 낭설로 시민들을 통제하며, 사람들이 제단에 올릴 희생양을 찾아 서로를 감시하는 사회의 모습입니다.
여기에는 "왜?"라는 질문이 원천봉쇄됩니다. 단지 "어떻게?"만 남습니다.
심리학이 이러한 주술적 프로세스에 놓여 있을 때, 거기에는 "왜 마음인가?"라는 질문이 없습니다. "어떻게 마음을 잘 알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들만 만연해집니다.
"어떻게?"를 소비하면 할수록 정확한 사실을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는 점점 더 거세되어 갑니다.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정보를 알고, 그것이 자기의 힘을 증진시킬 수 있는 소재처럼 보이기만 하면, 그것은 '좋은 것'이 됩니다.
이것은 이미 '믿음'의 영역입니다. 판타지이고, 환상이며, 자기기만입니다.
오늘날 국내의 심리학이 이와 같은 '수상한 믿음'의 영역이 되어 있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심리상담은 주술화된 심리학의 대표적 활동입니다.
일종의 마법공식과 같은 것들이 심리상담이라는 이름 속에서 정당성을 얻어 소비되곤 합니다. 유튜브와 SNS 등지에서 여러 사이비들이 자기의 '놀라운 개인적 체험'과 '탁월한 통합적 이론'을 강조하며 각종 마법주문서들을 팔아 먹곤 합니다.
심리상담이라는 이름이 오염된 정도는 매우 심각합니다.
그래서 실존상담자가 '진리상담'이라는 이름을 제안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은 '과학적 심리학'이며 동시에 '철학적 심리학'입니다.
자연과학적 사실에 대한 인문과학적 방향성을 갖는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더 쉽게 말하면, 사실을 드러내고, 그 사실을 인간을 위해 쓰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사실'입니다.
상담은 이야기를 다루는 문예창작의 시간이 아니라, 사실을 발견하는 과학적 탐구의 시간입니다.
상담은 과학적 프로세스 위에서만 성립될 수 있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상담이 과학적 프로세스 위에서 활동하지 않는다면, 무속인이나 점술가, 채널러 등의 활동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모종의 신비한 원리에 의해서 현세적 복리를 증진시킬 수 있기를 기대하는 주술활동일 뿐입니다.
진리상담은 표현 그대로 진리를 함께 탐구하는 일입니다.
진리에는 그 자체로 힘이 있습니다. 진리는 현실의 경계를 분명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용암이 뜨겁다는 단순한 과학적 사실을 알게 된 이는 자기 몸을 용암에 던지지 않습니다. 유치한 예 같지만, 이보다 유치한 일들을 사람들은 매우 진지하게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샤워기에 전극을 꽂고는 그 반대편을 욕실 밖의 지면에 묻은 뒤, 대지의 좋은 기운을 샤워할 때마다 흡수함으로써 영적인 기운을 높인다고 말하곤 합니다. 또 누군가는 달빛 아래 치성을 드려 '전설의 검'이 된 동대문제 도검을 70만 원에 구입합니다. 또 누군가는 글쓰기를 통해 병이 낫고 존재가 보완되는 놀라운 체험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모든 것을 과학적 태도 속에서는 '비현실'이라고 말합니다.
개인의 심리적 문제는 그가 '비현실'을 살고 있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사실을 무시하기 때문에 인간은 정신병에 걸리며, 자신이 정신병인 줄도 몰라서 계속 비현실만을 살아갑니다.
진리탐구는 그래서 필요한 것입니다.
'정확한 사실'에 뿌리내리는 일이야말로, 인간의 심리적 건강을 회복하는 최우선의 길입니다.
정확한 사실은 자연과학적 사실입니다. 우주에는 중력이 작용하고, 모든 생명체는 죽으며, 어떤 것도 동일한 상태로 영원히 유지될 수는 없다는 것 등이 그러한 사실들입니다.
이 사실들은 상담장면에서 바로 확인될 수 있습니다. 가설로 제시될 수 있고, 실험될 수 있으며, 또 검증될 수 있습니다. 상담실 밖에서도 내담자는 그것이 사실이었음을 재현할 수도 있습니다.
숨겨진 것은 없습니다. 수상한 것도 없습니다. 상담자만 아는 모종의 특별한 원리로 내담자가 수혜를 입는 일과 같은 것은 전무합니다.
진리상담에서는 상담자와 내담자가 똑같은 과학적 태도로 작업하는 공동의 탐구자입니다. 상담자가 작업할 수 있는 모든 프로세스는 내담자에게도 투명하게 공시됩니다. 왜 이러한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해 상담자는 전적으로 다 설명할 수 있으며, 수상한 용어로 두루뭉술하게 중간과정을 생략하지도 않습니다.
진리상담은 당연한 것들로만 이루어집니다.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고, 겨울비를 맞으면 춥고, 가속이 붙으면 관성이 작용한다는 아주 당연한 자연과학적 사실들로만 모든 탐구가 진행됩니다.
그러나 진리상담의 결과는 가끔 내담자에게 무척이나 놀랍게 경험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내담자가 아주 오랜 시간을 '비현실' 속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사과가 땅으로 떨어진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 왠지 모르게 낯설게 경험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이 잠깐만 생각해보면 이러한 것들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내담자는 지금 '호모 사피엔스'로서의 자신의 위상을 되찾은 것입니다.
'호모 사피엔스'의 뜻을 조금 세련되게 풀어보자면 바로 '스스로 생각하는 인간'입니다.
'주술적 프로세스'는 인간에게서 이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힘을 잃게 만듭니다. 그 대신에 온갖 수상한 것들을 뇌 속에 채워 넣습니다.
그러나 '과학적 프로세스'는 당연한 것을 인간이 당연하게 스스로 생각하는 이 기회를 제공합니다.
스스로 생각할 때 역설적으로 인간은 매우 단순해집니다.
실제로 생각해야 할 것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도 분명해집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술적 프로세스'에 빠져 있을 때는 모든 것이 엄청나게 복잡해집니다. 다 자기의 지성적 능력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만 가득합니다. 어려운 퍼즐을 풀어내면서 도파민의 쾌락에 중독되듯이,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만들어내어 생각 속에서 사는 일도 허다합니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지 않게 하는 것은 원래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사이비과학의 주체들은 대중들에게 가장 쉽고 효과적인 원리를 안내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팔고자 합니다. 그래야만 그 복잡하고 어려운 것을 '쉽게 설명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자신들의 권위가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쉬운 것은 팔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에이 뭐야. 나도 아는 거네."라며 구매도가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사이비과학의 주체들은 쉬운 것도 일부러 복잡하고 어렵게 만들곤 합니다.
비현실이 원래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현실을 사는 일은 단순하고, 명징하며, 그래서 힘이 있습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참된 것'입니다.
단순한 사실 위에서 살아가는 삶이 진리와 하나된 삷입니다.
그래서 실존상담자의 제안은 '진리상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