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상담자로 살기 #22

"인간을 위한 심리학이 필요하다"

by 깨닫는마음씨




동물을 위한 심리학이 인간에게 적용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심리학에서는 '가장 동물적인 것'을 '가장 인간적인 것'이라고 왜곡시켜 왔습니다.


이 동물을 위한 심리학의 봉사자들은, 대표적으로 인간은 약한 존재이기에 서로를 돕고 사는 존재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게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약한 유체를 돌보는 것은 포유류만의 특성도 아니고, 심지어 곤충의 특성입니다. 개미굴에 위기상황이 벌어지면 일개미들은 애벌레들을 업고 안전한 곳으로 이동합니다. 개미들만큼 협력활동을 잘하는 생물은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이 아니라, 오히려 곤충이 더 잘 드러내는 본능적 특성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동물들과는 다르게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 능력이 있어서 그 능력으로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어 왔다고도 말합니다. 이 또한 사실이 아닙니다.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면 분명해집니다.


이야기는 학습의 논리회로입니다. 특정한 조건에 따라 특정한 결과가 나온다는 행동주의적 사고의 산물입니다. 그렇게 성공적으로 '이야기패턴'을 구성함으로써, 생쥐는 미로를 돌파해 먹이를 얻곤 합니다.


오히려 문자언어를 통해 인간은 많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저장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야기'와는 사실 필수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이야기의 문법에 따라 극적 구성을 취함으로써 특정한 정보를 임의적으로 강조할 수 있는 수사학적 효과는 기대할 수 있겠지만, 정보가 저장되는 데 있어 꼭 이야기화되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즉, 이야기가 인간의 문명을 번성시켜온 것이 아니라, 문자언어로 기록할 수 있는 '저장능력'이 문명을 발전시켜온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지역을 향해 철새들이 이동할 수 있는 것 또한 이러한 저장능력에 의해서라는 것입니다. 유전자가 그 저장매체입니다. 인간은 문자언어라고 하는 '외장의 저장매체'를 부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뿐, '저장능력' 자체가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은 아닙니다.


또 어떤 이는, 불쌍하고 약한 것들에 공감하고 연민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나아가 가만히 있어도 마음을 잘 느낄 수 있는 힘이 인간의 놀라운 능력이라고도 주장합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코끼리나 돌고래들이 얼마나 서로에게 공감과 연민반응을 잘 보이는지는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이들은 잘 압니다. 같이 살던 다른 반려동물이 사라졌을 때 우울반응을 보이는 개체들은 아주 많습니다.


심지어 마음을 느끼는 일도 동물들이 더 잘합니다. 어떤 대화를 하지 않아도, 반려인의 기분에 직관적으로 반응하는 일은 반려동물의 당연한 일상입니다. 애초 인간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 자체가 아닙니다.


더 많은 예들을 들 수도 있겠지만, 이처럼 우리가 '심리학'이라는 이름으로 특별하게 취급하고 있는 아주 많은 소재들이 실은 인간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동물적인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인간을 약하고 불쌍한 것으로 상냥하게 알아보는 관점을 가지면 우리는 우리가 조금 더 인간적인 성장을 이룬다고도 생각합니다. 이것을 '심리학적 발달'이라고도 부르려 할 것입니다.


발달은 발달이겠지만, 인간의 발달은 아닐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처럼 동물적인 것을 지향하면서도 우리가 그만큼 인간이 되어가는 것처럼 착각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가장 동물적인 것이 가장 인간임을 표방합니다.


우리는 이 모순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아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일례로, 연민할 줄 아는 것은 그냥 순수한 동물이지 인간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인간은 함부로 연민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의미의 세계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적으로 보기에 누군가가 아무리 작고 약해 보여도, 그것은 그의 고유한 세계입니다. 그 세계 속에서도 그가 어떠한 의미를 향유하고 있는지는 다른 이가 건방지게 대신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한 집단상담 장면에서 어떤 이가 부모를 일찍 잃게 된 삽화를 얘기합니다. 그 말을 듣고는 누군가가 눈물이 맺힌 인자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어린 것이 참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겠누. 그런 당신도 온전하다는 걸 아셔야 해요. 누구나 다 아픔이 있지만, 특히 당신은 더 큰 아픔을 겪었으니 이제 다른 사람의 아픔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상냥함이 생기셨을 것 같아요. 참 멋지고 풍요롭고 좋아 보입니다. 저 착한 사람에게 그런 아픔이 있었네 참..."


이 말을 들은 당사자는 불같이 화를 냅니다.


왜일까요? 그가 사이코패스라서일까요?


아닙니다. 자신의 의미세계가 아주 무례하게 흙발로 짓밟혔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환상에 빠진 이로 인해 타자로서의 존재성이 존중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이가 우물에 빠져있는 것을 보고는 그냥 지나쳐갔다는 붓다의 우화는 이러한 '타자에 대한 절대적 존중'의 현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붓다는 정확하게 자신을 '주제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상대적인 관점에서 갖는 연민이 그의 절대적인 존재에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를 붓다는 이해하고 있던 것입니다.


인간이 함부로 연민하지 않는 이유는 이와 같습니다.


인간은 '상대적 감수성'이 아니라 '절대적 감수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존재를 향한 감수성'입니다.


하이데거는 분명 이 지점에서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별하고자 시도합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존재하면서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물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존재를 향해 질문할 수 있다는 바로 이것이, 실존주의적 인간이해입니다.


이러한 이해를 반영하여, 미국의 대표적인 실존상담자들인 롤로 메이와 커크 슈나이더는 인간을 위한 심리학의 이름을 제안한 바가 있습니다. 그들의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


'존재의 심리학'


이것이 인간을 위한 심리학입니다.


자신이 왜 사는지, 왜 태어나서 존재하는지, 그리고 존재하는 이 모든 것은 왜 이러한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그 '존재물음'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인간을 약하게 보며 덮어놓고 "모두가 다 불쌍하면서 온전해."라는 연민의 이야기를 뒤집어 씌우는 일은, 그리고 그럴수록 우리가 인간답게 성장한다고 주장하는 일은, 이 '존재의 심리학'과 전적으로 배치되는 '동물의 심리학'의 일입니다.


인간, 약하지 않습니다.


왜 존재하는지도 모르면서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그 실존의 사실을 살고 있는 것만으로, 모든 인간은 엄청나게 강한 존재입니다.


단적인 예를 들어볼 수 있습니다.


아무런 목적과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누군가가 우리를 강당에 앉힌 뒤 시간만 보내게 하는 장면을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대체로 예비군 훈련장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단 1분도 대단히 참기 어려워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처럼 존재해왔습니다.


왜 태어났는지도 모른 채, 우리의 존재함에 대한 아무런 목적과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 채, 우리는 그저 존재하기만 해왔습니다. 그리고 매우 성공적으로 존재해왔습니다.


생각해보면 1분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수 있는데, 우리는 지금껏 평생을 이 일을 당연하다는 듯이, 조금도 어렵지 않다는 듯이 아주 의연하게 해내왔습니다.


인간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강한 존재입니다.


이 우주에 아무 것도 없는데 얼떨결에 있게 되었다는 이 엄청난 존재론적 사실을, 너무나 당연하게 해내고 있는 존재의 걸작입니다.


'얼떨결'이라는 표현만큼 인간 존재의 위상을 잘 나타내주는 표현이 없습니다.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충격과 전율인데, 이를 다른 말로는 '경외감'이라고 묘사합니다.


인간은 이 경외의 존재입니다.


실존상담자는 인간을 위한 심리학, 바로 '존재의 심리학'을 통해 인간이 바로 이러한 존재라는 사실을 노래하고자 합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약한 것에 상냥하고, 이야기패턴을 잘 학습하며, 다른 동물을 연민할 줄 아는 '더 동물다운 동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약하지 않고, 그 자신으로 존재하는 데 이야기가 필요없으며, 타자의 존재를 존중할 줄 아는 '가장 존재하는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소개합니다. 이것이 실존상담자가 이 우주에서 가장 사랑하는 인간입니다.


바로 당신의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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