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상담자로 살기 #23

"현대의 신화들을 가로질러"

by 깨닫는마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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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신화들을 대체하기 위해 현대에 만들어진 신화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기술신화(techno myth)'라고 부릅니다. 빨간마스크와 같은 도시전설(urban legend)이나 세상을 조종하는 사악한 비밀조직에 대한 음모론 등이 이러한 기술신화에 속하는 대표적인 예들입니다.


신화의 기능은 윤리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윤리적 모델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 모델은 언제나 극복의 기제로 형상화됩니다.


신화란 곧 인간이 장애물을 극복하고 똑바로 살아나가는 모습을 묘사하는 이야기인 셈입니다.


과거의 장애물이란 자연이었습니다. 자연현상이 신들로 은유되었습니다. 이러한 신들이 부여하는 운명적 시련을 극복하고 자기를 영광되게 만든 이를 영웅이라고 부릅니다. 신화는 이 영웅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과거의 장애물은 인간의 외부에 주로 위치했습니다. 외적 환경을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것이 소위 말해 '똑바로 사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장애물은 내부에 있습니다.


인간은 외부의 자연이 아니라 내부의 마음을 극복하려고 합니다.


곧, 인간은 자기 자신을 극복해서 자기 자신에게 승리하는 영웅이 되고자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기술신화들의 양상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에 가장 만연한 기술신화는 바로 '자수성가의 신화'입니다.


과거와는 다르게 외적 환경 자체는 더는 문제가 아닙니다. 외부의 요소들이 제약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만이 문제입니다. 돈만 있으면 화성에도 갈 수 있습니다. 식자재를 획득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화려한 진수성찬이 차려진 식탁은 펼쳐져 있고 다만 자신이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되는가만 중요할 뿐입니다.


그래서 다들 자기계발을 하고 끝없이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한 활동에 매진합니다.


왕의 식탁에 앉을 수 있는 자격을 자신의 능력으로 증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 쉽게 말해, 다들 왕이 되고자 투자의 협곡과, 부동산의 늪과, 유튜브의 사막으로 뛰어듭니다.


오늘날의 신화에서는 더는 영웅이 용을 죽이지 않습니다. 용을 다스리려고 합니다.


'드래곤슬레이어'가 아니라 '드래곤테이머'의 시대입니다.


그 용의 표면적인 이름은 대중입니다.


대중을 효과적으로 배불리고, 양육하며, 길들일 수 있는 이가 성공적인 영웅이 되어 왕의 자리를 얻을 수 있다고 믿어집니다.


그만큼 오늘날의 '자수성가의 신화'를 꿈꾸는 이들은, 대중을 어르고 달래며, 때에 따라서는 부드러운 협박도 가미하고, 그랬다가는 바로 빨간약도 발라주는 식으로, 각종 조련의 테크닉들을 체화해나갑니다.


이 시대에 범람하는 용어가 '가스라이팅'인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이 '조련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미디어에서 인기있는 프로그램을 봐도 다 조련의 소재를 다루는 콘텐츠입니다. 상담사는 아이와 엄마를 조련하고, 트레이너는 동물을 조련하며, 아이언맨은 스파이더맨을 조련합니다.


최대한 더 많은 대상들을 능숙하게 조련하는 것이 곧 '자수성가의 신화'를 실현하는 비법이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수성가에 성공했다고 믿는 이들은 그 자신이 강연자나 상담자가 되어 '조련법'을 강의하고 코칭하기도 합니다.


용을 다스리는 메뉴얼이 분명 이 시대의 인기상품입니다.


그런데 이 용의 표면적인 이름이 '대중'이라면, 그 실질적인 이름은 바로 '마음'입니다.


대중을 다스리고자 하는 이는 실제로는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자수성가의 신화'를 꿈꾸는 이는 대중에게 자신의 마음을 투사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 마음이 아닌 척합니다. 오히려 그가 자신의 정당한 입장으로 상정하는 것은 대중 위에서 대중을 인도할 수 있는 '목자'입니다.


자기는 절대 대중처럼 유치하고 맹목적이며 무식하지 않다고 간주하며, 이 영웅워너비들은 자기의 성숙한 인품과 역량으로 대중을 돌봄으로써 대중이 자기처럼 유능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마음의 문제로 옮겨오자면, 이러한 이들은 마음을 두 입장으로 나누어, 한쪽에는 목자, 다른 한쪽에는 어린 용들을 배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목자와만 동일시된 채, 모든 어린 용들의 온전함을 알아주는 일을 자기의 역할이자 임무로 설정합니다.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어린 양을 키우는 일에 헌신하는 '선한 목자'는 '도덕적 승리'를 거두고자 합니다.


신화의 기능이 윤리라는 것을 다시 기억할 수 있습니다. '자수성가의 신화'는 반드시 이 '도덕적 승리'와 연결되어야만 비로소 신화로 완성됩니다. 윤리적으로 보이지 않고 다만 자수성가의 속성만 갖고 있을 뿐이라면 그것은 아직 '영웅의 신화'가 아니라 '졸부의 일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대중을 향해 자신의 목자로서의 참된 가치를 주장하고 있는 모든 이는 다 자신의 '선한 영향력'을 강조하곤 합니다. 돈을 좀 번 이들이 자기 사업보다는 강연을 하러 다니고, 상담 및 코칭 활동에 더 주력하는 것 또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현대의 신화들이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과거의 신화들이 '자연 대 인간'이라는 이분법으로 분열되어 있었다면, 현대의 신화들은 '어린 용 대 목자'라는 이분법으로 분열됩니다. 그것은 '대중 대 자신'이자 '마음 대 자신'의 분열이기도 합니다.


대중에게 친절하고, 마음에 대해 상냥하다고, 분열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렇기에 더 확실한 분열입니다.


아주 효과적인 예를 들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토성에게 친절한가요? 또는 안드로메다 성운에 대해 상냥한가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말도 안되는 말입니다.


토성이나 안드로메다 성운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거기에 임의적인 판타지를 가미해서 볼 때만 성립될 수 있는 언술입니다.


이처럼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 것'이 분열의 전형적인 증세입니다.


자기의 아버지를 악의적으로 죽이고 그 재물을 취한 이에 대해 "그 아이가 부당하게 대우받으면 안되는데, 다른 사람에게 착취되려고 태어난 게 아닌데, 그 아이 참 온전한 존재인데."라고 말하는 '진짜 정신병'은, 있는 그대로를 보지 않으려는 이 분열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신화는 원래 분열을 위해 기능합니다.


분열을 전제한 뒤 그 분열을 영웅의 힘으로 극복하려는 '통합'을 기획하는 것이 신화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방적인 통합은 더 큰 분열을 만들어냅니다.


분열되어 있어서 통합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하려 하기에 분열되는 것입니다.


분열은 반드시 갈등입니다.


어린 용을 다스리려는 조련의 행위는 부드러운 언행으로 위장만 했을 뿐 실은 용과 싸우는 일입니다. 용을 굴복시켜 자기의 뜻대로 하겠다는 폭력의 행위입니다.


신화가 언제나 쌈박질의 이야기라는 것을 기억하는 일은 유익합니다.


모든 이야기는 갈등이 그 핵심요소입니다. 갈등을 만들어내야만 이야기는 생명력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고로, 이야기는 언제나 인간을 갈등 속에 밀어넣습니다.


신화는 이야기의 원형입니다. 가장 갈등으로 점철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신화의 창출 및 소비가 아닙니다.


인간은 신화들을 가로질러야 합니다.


자연과 싸워온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 마음과도 싸우고 있는 섀도우복싱을 멈출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이제 자기 자신을 적으로 상정하는 그 모든 신화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동일한 의미로, 인간은 이제 자기 자신을 상냥하게 다스리려고 하는 그 모든 신화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마음은 인간에게 발견된 내적 자연입니다.


외적 자연과 싸움으로써 과거의 신화들이 만들어진 것처럼, 오늘날에는 이 내적 자연과 싸움으로써 현대의 신화들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자연은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감의 동반자입니다.


인간도 자연이기 때문입니다.


용이 두려운 이들은 용과 싸우며, 용이 가장 두려운 이들은 용을 다스리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이 두려운 이들은 자기 자신과 싸우며, 자기 자신이 가장 두려운 이들은 자기 자신을 다스리려고 합니다.


마치 투쟁처럼 보이지 않는 부드러운 다스림의 형태로 실은 가장 격렬한 투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소리없는 전쟁터를 가로질러, 인간은 자기 자신을 향해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에 인간을 위해 차려진 가장 경외로운 식탁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신화가 아니라, 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자기 존재의 경외감입니다.


다스려야 할 용들이 사라진 하늘 아래에서, 인간이 알아보는 것은 인간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알게 되는 것은 어린 용과 같은 허구의 마음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하는 사실적 존재입니다.


서로가 비로소 서로를 만나게 될 그 환희의 순간을 위한 인간의 식탁은 실존상담자가 성실한 인간의 일꾼으로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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