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최고의 부모가 되지 말자"
최고의 부모가 되면 자기가 강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착각입니다.
이 착각은 아이가 없는 이들에게도 공유됩니다. 그들은 자기가 속한 장에서 실제의 아이 대신에 사람들을 아이처럼 돌보며 부모의 역할을 하곤 합니다.
특히 심리학을 빙자한 인터넷 자기계발모임 등에서는 이러한 부모연이 적극적으로 권장되기도 합니다.
마치 엄마가 장보러 간 사이에 외롭게 방치되어 있던 아이를 알아주듯이, 마음에 대한 부모가 되어 모든 마음을 우리가 알아주는 일이 심리학적 비결인 것처럼 말합니다.
모든 마음의 온전함을 알아주는 일이니, 이야기 밖의 시선이 되어 이야기 안을 들여다보며 이야기 속 주인공아이에게 상냥해지는 일이니, 메타인지를 통한 자기객관화로 자기 마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니 등은, 전부 다 마음에 대한 부모가 되라고 주장하는 얘기들입니다. 그것도 최고의 부모입니다.
이런 것들은 다 자기투사입니다.
어떤 이가 주장하는 최고의 부모란 그저 자기가 갖고 싶었던 부모의 모습일 뿐입니다.
자기의 성장기에 그러한 부모를 갖지 못한 것 같아 이제는 자기가 직접 그 부모의 모습이 되려 하는 것이며, 또 사람들에게도 자기처럼 되라고 하고 있는 일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최고의 부모가 되려 한 그 결과는 반드시 미칠듯한 화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알아주고, 어떤 상황에서든 상냥하게 대해주며, 아이가 진정한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라고 무한허용하는 동시에, 다만 신뢰로 지켜보기만 하는 최고의 부모의 모습, 그것은 바로 신입니다.
최고의 부모가 되려 하는 이는 자기가 신이 되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이 신이 되는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다고 하고 있으면 미칩니다. 어떻게든 미치지 않으려고 미친 듯이 화만 내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그 화를 풀 곳이 없어, 정치가 잘못되었네, 거대한 악의 세력이 있네, 자기가 남들의 화를 받아 대신 알아주고 있네 등과 같이, 애먼 대상들에게 화의 원인을 전가하려고 하게 됩니다.
자기가 신이 되려고 해서 생긴 화를 남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기와 자기 자식만은 온전하고 선량한 것으로 남깁니다. 이러한 꿈을 꾸는 이는 자식에게만은 화내선 안됩니다. 그러면 신의 자격이 상실됩니다. 자식은 최대치로 만족시켜주어야 하고, 무수한 대상들에게 화를 전가해야 합니다. 자기가 계속 신인 척하려면 이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신이 되고자 하는 이로 인해 인류는 언제나 그 화를 대신 뒤집어써야 하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이러한 이들이 오늘날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다들 최고의 부모를 꿈꾸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치 육성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듯이, 부모의 입장에서 자기라는 캐릭터를 키우려는 발상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 일을 아무리 해봤자 최고의 부모는 실현될 수 없습니다. 해가 서쪽에서 뜰 때만 가능합니다.
최고의 부모에 대한 추구는 단지 영원히 그치지 않을 화에 다름아닙니다.
그리고 화는 반드시 당신을 약하게 만듭니다.
특히나 최고의 부모를 꿈꾸고 있기에 나는 화는 당신을 가장 약하게 만듭니다.
왜인지는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최고의 부모처럼 행세하고 있는 이에게 그가 알아주고 돌봐주고 있는 대상들은 결코 최고의 아이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대상들은 좀 찌질하고 모자라게 경험됩니다.
이러한 대상들에게 자신이 모든 것을 허용하고, 그들이 어떤 행위를 하든 다 잘했다고 우쭈쭈 해주며, 그 마음이 참 온전하다고 칭찬만 하고 있는 일은 무척이나 힘든 노동입니다. 비위도 많이 상합니다.
의식적으로는 자신이 그러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억압하겠지만, 최고의 부모가 못난 자식에게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이 상태들은 어디 가지 않습니다. 그 자신을 좀먹어 갑니다. 피폐해지며 전적으로 소진됩니다.
나아가 최고의 부모가 뒷바라지하는 자식으로서의 대상들은 영영 최고의 자식이 될 수는 없는 운명 속에 있습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최고의 자식이라면 애초 최고의 부모를 필요로 하지 않는 까닭입니다. 또한 최고의 부모가 최고의 부모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못난 자식만이 함께 지속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최고의 부모는 최고의 부모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최고의 부모는 아무리 해도 자식을 통해 만족할 수 없는 입장에 서게 됩니다. 그렇다고 자식이 만족하는 것도 아닙니다. 자식은 자기에 대한 최고의 부모의 불만족을 직감하며 그 자신도 무기력에 쉬이 빠집니다. 갈수록 형편없어집니다.
이 지점이 이제 최고의 부모의 화가 절정에 달하는 지점입니다.
자신은 최고의 부모로서 자식을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자식은 더욱더 못나지기만 합니다. 자신에 대한 커다란 무능력감이 밀려듭니다. 스스로가 하찮아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무너지지 않기 위해 늘 화만 내며 자신을 화의 기운으로 강하게 부풀리려는 일만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것이 가장 약한 상태입니다.
최고의 부모가 되려는 일은 이처럼 그 시작부터 가장 약한 상태로 결과지어진 일입니다.
당신이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부모가 되면 강해진다는 착각부터 해지하면 편합니다.
약한 이가 부모가 된다고 강해지지는 않습니다. 더 약한 이가 됩니다.
강해지는 것이 우선입니다. 강한 존재로 드러나면, 부모 역할도 잘 하게 됩니다.
강한 이가 부모의 역할을 하게 될 때의 그 모습은 적당히 좋은 부모입니다.
적당히 좋은 것과의 사이에서는 친밀감이 넘칩니다.
집밥을 떠올리면 그 감각이 아주 분명합니다.
대단할 것은 없지만 인생에서 늘 생각나며, 결정적인 순간에는 더욱 생각납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적당히 좋은 것과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최고의 것과는 가끔만 보냅니다. 최저의 것과는 함께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적당히 좋은 부모는 자식과 실제적인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부모입니다. 함께 보내는 그 시간 동안 서로의 삶이 자연스레 엮이며 하나의 태피스트리가 직조됩니다.
그렇게 적당히 좋은 부모는 사람과 어떻게 친해져가는지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자식에게 전하게 됩니다.
그걸 전했으면 다 전한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전했으니 부모로서의 역할은 완벽하게 완수됩니다.
자식에게 휴대폰 게임을 시켜주거나, 넷플릭스에서 초능력자들이 나와 광란하는 미국드라마를 보여주는 이는 자기 자신을 자식이 좋아하는 것을 존중하는 최고의 부모라고 생각할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식은 친밀감의 시간을 함께 향유했던 적당히 좋은 부모를 기억합니다. 게임기 전원을 끈 뒤 놀리다가 같이 메로나를 사먹으러 나가던 그 부모의 얼굴만이 생생합니다.
아빠가 어렸을 때 너무 놀려서 트라우마가 생기고 자존감이 떨어져 애정결핍이 되었다며 나중에 자식은 상담소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가 상담소에 와서 정말로 하고 싶은 얘기는 다시는 먹을 수 없게 된 그때의 메로나의 맛입니다. 그 맛을 다시 기억하고 싶어 그는 상담소에 왔습니다.
강한 존재는 강한 기억으로 남습니다.
이제는 기억이 되어, 자신이 사랑했던 것을 그 내면에서 지켜줍니다.
당신에게 전해진 것도 이러한 것이고, 당신이 전하게 될 것도 이러한 것입니다.
당신은 메로나처럼, 또 집밥처럼, 적당히 좋은 사람이고, 그래서 아주 강합니다. 당신이 사랑한 것들에게 그 기억이 아주 생생합니다. 강한 당신은 그렇게 영원히 최고의 사랑으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