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전문가를 존중하자"
전문가를 무시하는 오늘날의 풍조는 크게 두 요인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가짜전문가에게 많이 속았거나, 자아팽창이거나.
그리고 이 요인들은 서로 연합되어 전문가 무시의 풍조를 더욱 강화해갑니다.
흡사 전문가는 잠정적인 투쟁대상입니다. 전문가의 말에 대해 우리는 "나도 할 수 있어."를 충돌시키려 합니다. 그리고는 그 수행력이 현재에도 전문가에 크게 뒤떨어지지는 않으며 시간만 들이면 얼마든지 전문가급으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가짜전문가들 때문에 생긴 나쁜 버릇입니다.
가짜전문가들이 전문성을 얻는 방식은 매우 단순합니다.
누구나 아는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상대적으로 덜 친숙한 용어로 포장만을 합니다.
그러면 그 소비자들은 일견 낯선 용어에 담긴 실제적인 내용이 쉽게 이해가 가니, 자기가 대단히 똑똑하다는 착각을 향유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는 자기를 똑똑하게 만들어준 그 대상을 이제 전문가로 인정해주기에 이릅니다.
이처럼 오늘날에는 실제 그 분야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다 바친 이가 전문가로서의 지위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똑똑함의 착각을 서비스해주는 이가 전문가의 지위를 얻습니다.
그러니 하나의 심대한 착각이 생겨납니다.
전문가가 말하는 내용은 애초 자기가 이해할 수 있어야 당연하다는 착각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진짜 전문성에서 나온 조금 낯선 내용은 이제 나쁜 것이 됩니다. 오히려 진짜 전문성은 악하기 짝이 없는 가짜 전문성으로 매도되는 지경에 처합니다.
자기가 원래 갖고 있는 인식틀을 통해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면 나쁜 것이라는 이 폭력성은 가짜전문가가 조장한 자아팽창에 의해 야기된 현상입니다. 자기는 다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한 상위의 주체라는 착각이 여기에는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전문가의 전문성이란 원래 기존의 인식틀을 깨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문가들은 밥먹고 그 일만을 합니다. 어떻게든 자신이 알아온 세계의 그 너머를 드러내고자, 그렇게 기존의 인식틀을 넘어서고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다 바칩니다.
남들이 밥먹고, 게임도 좀 하고, 만화책도 좀 읽고, 유튜브도 좀 보고, 그러다가 19금 활동도 한 번 한 뒤, 밥도 좀 더 먹고 할 시간 동안, 전문가들은 집중된 하나의 일만을 합니다.
그 분야에서 당연히 맞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이상합니다.
자아팽창된 이가 아무리 자기를 축구천재라 믿는다 해도, 20년간 현역으로 뛰어온 한 축구선수가 넣은 통산 500골을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그 축구천재가 하라는 축구는 안하고 유튜브에서 공으로 재롱부리는 장면만을 업로드하며 좋아요를 수집하는 일에만 매진하고 있는 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전문가는 천재이기 이전에, 자신의 시간에 전적으로 헌신한 이들입니다.
전문가를 무시하는 풍조는 결국 자기의 자아로 남의 인생을 무시하는 행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아의 메시지는 언제나 "나도 할 수 있어."입니다.
자아는 늘 상대들과 비교하며, 상대들과의 투쟁 속에서만 자기 자신을 확보합니다.
가장 약한 이들이 강한 척 의태하기 위해 만들어낸 껍데기가 자아인 까닭입니다.
"나도 할 수 있어."는 "나는 지지 않아."입니다.
투쟁하고 있는 것은 투쟁의 대상에 기생하고 의존해서만이 자기 자신인 척하고 있습니다.
진짜 약해보입니다.
강한 존재는 타인의 인생을 존중하며, 그 인생이 맺은 결실에서 도움을 받습니다. 그러니 더 강해집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충분히 눈치챌 수 있습니다.
당신이 다 안다고 생각하던 것을, 곧 당신이 갖고 있던 기존의 인식틀을 깨는 얘기가 진짜 전문성에서 비롯한 얘기이며, 이것이 바로 당신을 강해지게끔 돕는 것입니다.
반대로 가짜전문가가 당신을 속이는 방식은, 자기가 말하는 것은 엄청 대단한 것인데 당신은 이 정도의 대단한 것도 이해하는 천재라고 속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의 영혼에만 안좋은 것이 아니라, 실은 당신의 귀에도 안좋습니다. 섬세히 들어보면 실은 바보취급 당하는 느낌이 팍 드는 울림입니다. 좋아하는 것은 허구적인 자아뿐입니다.
그리고 허구적인 자아가 좋아할수록 당신은 사실적으로는 한없이 약해져갑니다.
딱딱한 껍데기만 붙잡고 늘 예민하게 강한 척만 하게 됩니다.
자기가 자기를 이 단단한 자아의 껍데기로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자기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먼저 타인의 인생을 존중하지 않았기에 생겨난 두려움입니다.
어쩌면 이 시대의 우리가 전문가들을 무시하게 된 것은 실은 전문가들이 두렵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져서 비단 특정한 전문분야에 투신하지 않더라도 해당의 정보를 획득하기에 수월해졌고, 전문가에 대한 경시는 여기에서 시작되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어떠한 분야에 접촉하고 나면 그 분야의 장대한 깊이를 감지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우습게 보았던 만큼 그 심대함은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두려움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다시 무시를 발동합니다. 결과적으로 두려움과 무시만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끊임없이 펼쳐지게 됩니다. 갈등을 먹고 사는 자아만이 신납니다.
애초에 전문성이라고 하는 것을 정보보유의 문제로 오해하기에 이러한 일은 생겨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전문성은 정보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입니다.
전문가는 더 많이 그것을 안 이들이 아니라 더 많이 그것을 산 이들입니다.
우리가 존중하는 것은 그들이 아는 정보가 아니라 그들이 살아온 인생입니다.
자신을 다 바친 그 인생이 얼마나 강한지에 대한 존중입니다.
이 존중과 함께, 당신이 열심히 살아온 인생도 정말로 강하고 귀한 것으로 존중받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