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버티며 살지 말자"
버티는 데는 단 하나의 이유만 있습니다.
울지 않으려고 버팁니다.
울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안줍니다. 그러면 자신은 저주받은 존재입니다. 똑바로 살지 못한 나쁜 아이입니다. 모두가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며 외면합니다.
울면 그렇게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약한 이의 입장으로 추락하게 될 것 같아 두렵습니다.
그래서 울지 않으려고 버팁니다.
버팀으로써 자기가 강한 존재임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치만 그 모습이 제일 약해 보입니다.
약한 이들은 버티려고만 합니다. 약한데 약하지 않은 척하려고 버티며 삽니다. 약한 것을 그렇게 싫어하면서 왜 가장 약한 모습으로 사는 일을 그토록 고집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버티고 있을 때 실제로 우리가 버텨내는 것은, 우리를 괴롭히는 외부의 현실이 아닙니다.
그 현실 앞에 무력하고 약한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러한 우리 자신의 모습이 미치도록 꼴보기 싫어, 우리는 이를 악물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지금 인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약한 우리 자신에게 화가 아주 많이 나있습니다.
그 화의 표현이 바로 버티는 일입니다.
그런데 버틴다는 것에는 반드시 특정한 상태를 지속하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약한 자신을 버텨내는 일은 곧 약한 자신을 지속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버팀으로써 우리는 약한 자신을 극복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속 약한 자신으로만 지속됩니다.
어떤 마음을 경험하든 간에, 그것이 아무리 괴롭더라도 "그래 이게 내 마음이야."하며 그 모든 마음을 다 버텨내면 결국에는 마음이 아주 편해지고, 자신이 그 마음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자신은 마음을 메타인지적인 제3의 입장처럼 초월해서 더는 마음 때문에 고통스럽지 않게 되고, 오히려 마음에 대해 상냥해질 수 있다고 이들은 주장합니다.
버팀을 심리학의 원리인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은 심리학과 아무 관계가 없으며, 심리학이 아닙니다.
심리학에서 이러한 증세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이 단지 해리상태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원래 버티고 있으면 정신의 해리가 일어납니다. 괴로운 것을 지속하면 몸이 견디지 못해서 뇌는 화학물질을 분비합니다. 이 화학물질이 작용한 결과로 갑자기 모든 것이 이완되며 지복의 상태를 경험하게 됩니다. 마라토너들이 경험하는 러너스 하이와 같은 현상입니다.
이러할 때, 그 경험자는 자신의 정신이 육체에서 벗어났다고 경험합니다. 정신적 초월자가 된 것 같습니다. 몸의 고통에서 벗어나 이제는 고통스럽지 않고 자기 자신이 아주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자신이 버티는 행위를 통해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자기 자신에게 승리하는 일에 성공했다고 믿게 됩니다.
버팀으로써 더 큰 고통 속으로 자기 자신을 몰아가는 이 주체의 폭력으로부터 몸이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실행한 일이 역으로 이 주체에게는 자신의 승리경험인 것처럼 인식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심대한 착각입니다.
이 상태가 주체의 승리경험과 연합되기에, 이제 해리는 중독의 소재가 됩니다. 조금 힘든 일이 있으면 주체는 습관적으로 해리상태로 빠져듭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지금 초월적으로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상위의 지위를 가진 것처럼 굴곤 합니다. 자기가 고통의 이야기 밖에서 이야기를 구원하는 초월적 작가인 척 자주 행세하곤 합니다.
자기는 고통의 원인일 뿐이면서, 자기를 고통의 구원자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이제 약한 피해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구할 수 있는 강한 구원자라고 착각하는 이 상태에서 글을 쓰면, 유치한 자아도취의 글들만이 쏟아집니다. 그 모든 주제는 단 하나입니다.
"그러니까 당신도 나처럼 살아."
여기에서 '나처럼'의 뜻은 '버티며'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약함을 버팀으로써 약함이 지속되기에 가장 약하게 살게 되는 방법론이 사회 곳곳에 전염되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약한 상태를 지속하는 일에는 이득이 있습니다. 그래야 정신적 자기를 강한 주체인 것처럼 계속 자신의 몸으로부터 해리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정신승리의 목적으로 이 분열의 양상은 지속됩니다.
이를 쉽게 말해, 자기 몸과 싸우고 있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기 몸에게 각종 이상한 짓을 하며 자기 몸을 과잉되게 돌보려는 상태는 무엇보다도 자기 몸과 싸우고 있는 상태입니다. 건강염려증은 실제로는 자기 몸에 대한 투쟁의 표현입니다.
이것은 몸에 대한 근본적인 혐오감을 함축합니다.
자기의 똑똑하고 고결한 정신이 진짜 자기이며, 그것은 자기의 허약하고 비루한 몸보다 당연히 높고 진정한 것이어야 한다는 집착이 여기에서는 드러나 있습니다.
자기 몸에 대한 열등감이 낳은 집착입니다.
버티며 사는 일은 이 몸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한 행동양식입니다.
버틴다는 것은 곧 몸으로부터 버틴다는 것이고, 잘난 정신적 자기가 못난 육체적 자기를 버틴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사는 이들은 몸으로서의 자신이 바로 약한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그 생각으로서의 자신이 가장 약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버티며 살지 않는다는 것은 몸에 대한 쓸데없는 투쟁을 멈추고 자신의 몸에 항복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에 항복할 때 우리에게서는 반드시 눈물이 흐릅니다.
당신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항복은 그것을 정말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현재의 자신의 상태, 곧 몸의 상태를 정말로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당신은 반드시 울게 됩니다.
이 울음은 당신이 끝까지 버티지 못해서 결국 약한 것이 될 수밖에 없는 패배의 증표를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당신이 진짜로 승리했음을 알려주는 그 훈장입니다.
당신은 이제 사람입니다.
그 몸으로 있는 그대로의 사람이라, 당신은 강한 사람입니다.
또 당신은 이제야 당신 자신입니다.
당신이 지금껏 싸워온 것은 약한 자신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었습니다. 곧, 있는 그대로 강한 자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싸움은 끝났습니다.
당신은 이제 당신 자신이며, 원래 있는 그대로 강한 당신 자신입니다.
당신이 그동안 무엇과 싸워왔으며, 무엇을 그렇게 악착같이 버티려 해왔는지를 알면, 당신은 반드시 울다가 웃을 것입니다. 중요부위에 털이 날 것이고, 당신은 어른입니다.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은 못받겠지만, 산타할아버지가 일을 다 마치고는 소주 한 잔 하고 싶어 늘 생각나는 그의 소중한 친구가 될 것입니다.
이런 꽃같은 일쯤은 얼마든지 당연하게 당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을 삶이라고 합니다.
사람이라는 강한 존재가, 바로 당신이, 그 눈물과 웃음으로 더욱 펼쳐가게 될 기적입니다.